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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정우의 축구는 계속된다 감독으로 새출발하는 월드컵 스타 김정우
뼈정우의 축구는 계속된다 - 감독으로 새출발하는 월드컵 스타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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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KU | 등록일 : 2019-03-23 12:31:04 | 글번호 : 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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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정우의 축구는 계속된다

감독으로 새 출발하는 월드컵 스타 김정우

[SPORTS KU= 글 오세운 기자, 사진 이영은 기자] ‘뼈정우’가 돌아왔다. 지난 3월 5일 2019시즌을 맞아 인천유나이티드는 유소년 코치진을 새롭게 개편하며 U-18 팀 대건고등학교(이하 대건고) 감독으로 김정우(체교01)를 선임했다.

김정우는 선수 시절 유난히 말라 뼈밖에 없는 것 같다며 팬들로부터 ‘뼈정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고려대학교(이하 고려대) 시절부터 미드필더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K리그에서는 울산현대의 2005년 리그 우승 주역으로 떠오르며 국가대표로도 성장했다. 독일월드컵 대표팀에 탈락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맹활약하며 모든 비판을 지워내고 월드컵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후 부상으로 그라운드로 떠나 소리 없이 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던 김정우가 감독으로 돌아왔다. 고려대 재학 시절의 뒷이야기부터 앞으로 지도자로서 김정우의 이야기까지, SPORTS KU가 직접 들어 봤다.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01학번 김정우

KU: 고려대에서 2년의 대학 생활을 경험했는데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김: 우선 축구 외적으로 자유로웠던 것 같다.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친했지만, 지금도 대학 동기 및 선배들인 김영삼(체교01, 울산현대 스카우트), 박동혁(체교98, 아산무궁화 감독), 차두리(신방99), 이천수(체교00, 인천유나이티드 전력강화실장) 등과 이따금 만날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 자유롭게 대학 생활을 즐기다 보니 축구도 마음껏 즐기면서 했다.

KU: 언급한 것처럼 이천수, 차두리 등 어마어마한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그때 당시 이 선수들과의 호흡과 사이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 그때 우리 1학년에 청소년대표가 5명 정도 있었다. 그래서 1학년이 선배들 경기에 많이 뛰었다. 선배들이 크게 엄하게 대학지도 않아서 대학 생활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KU: 그때 당시 고려대 축구는 어떤 축구를 했으며, 본인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궁금하다

김: 기억하기에 상당히 공격 중심의 축구를 했다. 공격 쪽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상당히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어떤 경기든 주도적이고 공격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나도 프로 무대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주로 맡았지만, 대학 무대에선 공격형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이었다.

KU: 두 번의 정기전에서 1승 1패를 경험했다. 본인에게 정기전이란 무엇인가

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많은 관중 앞에서 뛰기 쉽지 않다. 정기전은 가득 찬 경기장에서 축제 같은 분위기지만 치열한 라이벌전이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인 부분이 많이 중요시되고 경기 내용보다 결과를 내야 하는 경기였다.

KU: 현재 고려대 축구선수들에게 전 축구선수로서 조언하자면?

감: 우선 우리 때보다 (축구하는 환경이)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다. 그러한 자유 속에서 목표를 가지고 성장해나가야 한다. 프로에 가서도 중심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교에서 노력해야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

Behind: 김정우에게는 따뜻했던 이천수?!

김정우의 부평고, 고려대 1년 선배이자 울산현대 시절 팀 동료이기도 했던 이천수 인천유나이티드 전력강화 실장은 선수 시절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톡톡 튀는 언행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악동 이천수도 후배들에게만은 따뜻했던 모양이다. 김정우는 이천수에 대해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천수 선수의 성격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평가하지만, 오히려 그런 성격 덕분에 그 뛰어난 축구 실력이 발휘된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배이고 대학 때도 나한테 아주 잘해줬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 K리그와 J리그의 스타 김정우

KU: 고려대 진학 후에도 프로팀들의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질 정도였다는 후문이 있다. 그 가운데 울산에 입단하게 된 계기가 있나

김: 그 당시 울산에 이천수 선수가 있었고, 이천수 선수가 팀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줬다. 그래서 그 팀에 가서 적응하기 더 쉽지 않을까 생각했다.

KU: 프로 입단 후 어떻게 적응을 했는지 궁금하다

김: 우선 TV에서 보던 선배들이랑 경기하는데 매우 긴장됐다. 이후에는 긴장을 떨쳐내고 나서 편한 마음에 경기하다 보니까 제 경기력이 나온 거 같다.

KU: 선수 시절 초기에 거친 플레이로 카드를 많이 수집한 선수로 기억하는 팬이 많은데

김: 신체적인 부분이 약하다 보니까 큰 선수들하고 몸싸움할 때 밀리는 게 싫어서 거칠게 플레이를 했다. 그러다 보니 카드를 받을 만한 플레이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

KU: 울산에 입단해 첫해부터 34경기를 뛰며 주전으로 뛰었고 3년 차에는 우승 주역이었다. 김정남(법학61) 감독이 이끌었던 당시 울산의 축구와 그 축구 안에서 김정우의 역할이 궁금하다

김: 공격적인 축구를 했던 고려대와 달리 울산은 선수비 후역습이었다. 그래서 대학 때와는 달리, 팀에 더 필요한 수비적인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역할은 수비 진영에서 상대 공격을 차단해 이천수 선수처럼 앞에 있는 좋은 공격수들에게 패스를 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 수비형 미드필더로 잘 적응한 덕분에 그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잘한 것 같다.

Behind: 현영민의 경운기 드리블은 김정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정우와 함께했던 울산현대 우승 주역 중에는 선수 시절 ‘경운기 드리블’과 긴 스로인으로 유명했던 현영민 現 JTBC 해설위원도 있었다. 김정우는 현영민 위원에 대해 “그 당시 울산에서 현영민 위원이 왼쪽 윙백, 내가 왼쪽 중앙 미드필더라 현영민 위원이 공격에 나가면 그 뒷공간을 내가 다 커버했다. 아직도 현영민 위원을 만나면 ‘형은 나 없었으면 안 됐지’라고 농담을 하곤 한다”며 웃었다. 현영민 위원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하는지 최근 칼럼에서 자신의 베스트11에 김정우를 지목했다.

KU: 리그 우승 후 해외 진출을 모색했고 일본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했다. J리그에서 뛰면서 K리그와는 다른 점을 느꼈다면 무엇인가

김: 일본에서는 출퇴근을 처음 하다 보니까 생활면에 있어서 K리그 프로팀보다 더 자유로웠다. 나만의 시간도 많고 하다 보니 훈련을 더 즐겁게 나갈 수 있었다. 축구적으로 제일 도움이 많이 된 시기다. 울산 때와는 달리 공격형 미드필드에 섰는데 (내가) 외국인 선수이다 보니까 하고 싶은 플레이를 다 했다. 자신감을 많이 발휘하고 성장한 시기였다.

KU: 성남으로 이적 후 공격 포인트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감독의 요구가 있어서 플레이 스타일 변화를 시도한 것인가?

김: 원래 예전부터 동경하던 선수가 지네딘 지단일 만큼 공격적으로도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했다. 성남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면서 일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를 공격적으로 풀어갔다. 그리고 성남에 좋은 선수가 많아서 골 넣을 수 있는 상황도 많이 찾아왔다.

KU: 성남 시절 주장까지 역임했는데, 주장 완장을 달면서 달라진 점이 있었다면

김: 김학범 감독님이 나가시고 신태용 감독님이 오실 때 계약 기간이 1년 남았었다. 다른 팀으로 갈수도 있었는데 신태용 감독님이 제 에이전트를 통해서 너를 주장으로 임명할 것이고 네가 중심이 되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따로 미팅을 가지기도 했는데 감독님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져 팀에 남기로 마음먹었다.

KU: 상무 입대 후 일명 공격 ‘포텐’이 터졌다. 공격수로 나서서 18골이나 기록했다. 뼈트라이커 라는 별명도 이때 얻었는데, 공격수 역할에 적응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김: 원래 초등학교 때 스트라이커로 활약했긴 했다. 이때 상무에 선수가 부족해서 당시 상주 상무 감독님이 저보고 공격수로 서라 하셨다. 처음엔 제가 하고 싶은 드리블도 하고 동계훈련 때 골도 넣으니까 (공격수 역할이) 재밌었다. 그 이후로도 감독님이 (저를) 믿어주셨다. 그러고 나서 리그가 시작됐는데 리그에서도 골이 잘 터지니까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KU: 전역 후 전북으로 이적하게 됐는데, 잔부상과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폼이 절정에서 내려왔다는 평가를 들었다.

김: 그때 부상으로 인해서 마음이 급해진 면도 있었다. 사실 주 포지션은 여전히 수비형 미드필더였는데 상무에서 골을 많이 넣다 보니 공격적인 부분에서 주변의 기대가 높아졌었다. 솔직히 내가 전북에서 내 역할을 못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변에서의 기대치가 높아져서 거기에 못 맞췄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그 자리에 맞게끔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KU: 그 후 아랍에미리트와 태국 클럽에서 보냈는데, 부상에 자주 시달렸다. 몸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면서 은퇴를 생각하게 된 것인가

김: 중동에서는 (몸이) 상당히 좋았다. 리그 베스트11에 뽑히기도 했다. 그런데 태국으로 이적하고 2달 만에 십자인대를 다쳤다. 당시 나이도 많았는데 큰 부상을 당해서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KU: 최근 아시안컵에서 나타났듯이, 중동과 동남아 지역의 축구 상승세가 무섭다. 두 지역에서 프로 생활을 경험하면서 이들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김: 태국에서 2개월밖에 생활을 안 해서 동남아는 잘 모르겠다. 중동은 선수들이 기술적으로는 한국선수들이랑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아랍의 지단이라고 불리는 오마르 압둘라흐만 선수와도 뛰어 봤는데 확실히 뛰어났다. 그런데 중동 선수들이 멘탈적으로는 조금 약하다고 생각한다. 중동에서 훈련하면서 놀랐던 점이 선수들이 훈련을 가끔 안 나온다. 왜 안 나왔냐고 물어보니 오전에는 다른 일을 한다고 말했다. 중동 선수들은 축구를 업으로 느끼기보단 즐기면서 하는 거 같았다. 실제로 그 당시 내가 뛰었던 팀(알사르자) 단장은 경찰서장이었다. 중동은 다른 일도 하면서 축구를 병행하는 것 같았다.

Behind: 유럽 무대에는 서지 못한 뼈정우

K리그와 J리그의 스타였고 중동에서도 맹활약했던 김정우지만 아쉽게도 유럽에서 뛰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생활을 마치고 FA가 된 뒤 한 잉글랜드 팀과 같이 훈련을 하며 테스트를 받는 기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종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이후에도 군 문제 등으로 인해 유럽에서는 활약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김정우 본인도 “한 번쯤 도전해 볼 걸 하는 후회를 한다. 실패했더라도 그 이후의 축구인생, 지도자 생활까지도 유럽 무대에 있으면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았을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가대표 김정우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 명단은 지금도 회자 될 정도로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이름값이 높았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당시 월드컵에 출전한 모든 국가의 선수 중 소속 팀이 없는 선수를 제외하면 가장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한국선수였다는 것이다. 그 선수는 바로 ‘일병’ 김정우였다. 당시 상무 소속이었던 김정우의 연봉은 군인 월급을 기준으로 약 95만원 정도였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의 연봉이 김정우의 약 1만5천배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우는 월드컵에서 자신의 능력을 십분 보여주며 몸값이 전부가 아님을 전 세계에 입증해냈다. 김정우가 생각하는 국가대표의 자리는 무엇일까.

KU: 2003년 A매치 데뷔 이후 주전 경쟁을 벌였지만 아쉽게도 독일 월드컵 최종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당시 심정이 어땠나

김: 매우 아쉬웠다. 제일 아쉬웠던 부분이 국가대표팀 미국 전지훈련에 불참한 것이다. 원래는 홍콩에 들렀다가 미국으로 이동하는 거였는데 일본으로 이적하던 시기랑 겹쳐서 일본으로 가야 했었다. 그래서 홍콩까지만 동행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미국으로 갈 때 나는 일본으로 갔다. 미국 전지훈련에서 감독님께 나를 어필할 수 있었을 텐데 같이 못 간 것이 아쉽다.

KU: 이후 절치부심하여 허정무 감독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이 당시 허정무 감독이 본인에게 요구했던 플레이는 무엇이었나

김: 감독님께서 저에게 수비적인 플레이를 많이 요구했다. 그리고 감독님께서 저에게 자신감을 많이 심어주셨다. 저에게 특별히 주문한 점은 많지 않았다. 저를 믿고 넣어주시고 (저는) 감독님이 전술적으로 원하는 것을 하려 했다.

KU: 기성용 선수와 중원에서 호흡을 맞췄는데, 같이 뛰어본 소감을 듣고 싶다.

김: 기성용 선수는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좋은 의미로 겁이 없었다. 이때 기성용 선수는 항상 자신감이 있었고 플레이가 공격적이었다. 저는 기성용 선수의 그런 성향을 알고 기성용 선수가 공격 쪽으로 부담 없이 나갈 수 있도록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런 점에 있어서 호흡이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KU: 월드컵 전 강팀과의 평가전에서부터 자신 있게 중원에서 자신의 실력을 드러냈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하면서 배울만한 점이 있었다면?

김: 경기장에서의 여유가 우리나라 선수들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세계적인 선수들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르다. 볼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위치에서 움직임을 이어간다. 사비 같은 경우는 공을 정말 얄밉게 찼다. 좋은 포지션을 알고 그곳에서 패스를 주고 움직일 줄 아는 선수다. 이런 선수들은 현대 축구를 정확히 알고 이해를 하는 것 같다.

KU: 축구 팬들 중에는 아직도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한 그 당시 허정무호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수로서 기억하는 허정무호는 어땠나

김: 특별한 사건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항상 좋았다. 본선에서 뿐만 아니라 예선에서도 정말 분위기가 좋아서 편하게 축구 했던 것 같다.

KU: 남아공 월드컵 당시 해외 매체에서 선수 평점을 매겼는데 대한민국 선수 중에서 평점 1위를 기록했다.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 원래 나는 ‘늘 하던 대로 열심히 뛰어야지’ 생각하고 뛰면 내가 할 수 있는 플레이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타입이다. 반대로 뭔가 특별히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오히려 실수가 나온다. 남아공에서도 첫 월드컵이었지만 특별히 잘해야겠다 보다 그냥 열심히 뛰자는 마음을 갖고 경기했던 것이 좋은 활약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KU: 그렇다면 김정우에게 월드컵이란 무엇인가

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축구선수에게 월드컵은 꼭 한 번 뛰어 보고 싶은 무대로 생각한다. 선수로서 가장 큰 대회이기 때문에 가장 큰 목표가 아닌가 싶다.

KU: 양박쌍용 등 대한민국 황금 세대라고 평가받는 선수들과 월드컵에 나갔다. 축구 선수로서 이들과 함께 뛰며 배운 점이 있는가

김: 박지성 선수한테 배운 점이 있다. 나도 열심히 뛴다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열심히 뛴다고 느꼈다. 그 당시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있을 때인데, 보통 그 정도 빅클럽 선수라면 국가대표 와서는 화려한 기술을 부릴 수도 있다. 그런데 대표팀에서 항상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묵묵히 정말 많이 뛰어다녔다. 그렇게 모범을 보이니까 주위 선수들이 다 그렇게 뛸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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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 태극마크를 달고 뛴 경기중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김: 많은 경기가 기억에 남지만, 그래도 하나 뽑자면 2010 동아시안컵이다. 왜냐하면, 내가 주장을 달고 뛰었던 대회이기 때문이다(웃음). 주장도 달고 퇴장도 당하고 ‘사건’이 많은 대회였기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도자 김정우

KU: B급 지도자 자격증을 딴 것으로 알고 있다. 지도자의 길에 처음 발을 내딛었는데 수료(연수) 과정이 어렵진 않았나

김: 다른 지도자분들은 현장에서 경험이 있는 분들도 있고, 어떻게 지도자 공부를 할지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았다. 나는 지도자 경험도 없고 현장경험도 없는데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려 하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공부하는 중이다.

KU: 은사인 조민국(체교82, 청주대) 감독이 이끄는 청주대학교(이하 청주대)에서 지도자 수업을 배우고 있다고 들었는데, 조민국 감독이 선배 지도자로서 조언해준 점이 있었나

김: 조 감독님은 말이 없는 편이다. 조언보다는 감독님이 지도하는 스타일을 보고 느낀 점이 있었다. 감독님은 말을 별로 안 하시지만 하실 때는 선수들이 확 받아들이게끔 말씀을 하신다. 많은 말 없이도 선수들이 이해하기 편하게 지도를 하시는 능력을 본받고 싶다. 그런 점에 있어서 조 감독님이 감독으로서 제 롤모델이다.

KU: 인천유나이티드 U18 팀 대건고 감독으로 부임하게 됐다. 예상치 못한 행보였는데

김: 청주대의 시즌 첫 대회를 갔을 때, 이천수 실장님이 직접 통영으로 오셨다. 그리고 감독직 얘기를 먼저 꺼내셨다. 거기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조민국 감독님과 식사 자리에서도 이 이야기를 하셨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중에 통화로 나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오랫동안 인천에 살았고 초중고까지 인천에서 나왔으니 고민할 것도 없이 승낙했다.

KU: 이천수 실장의 제안이 어떻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나

김: 우선 이천수 실장님의 장점이 있는데 사람을 믿어주는 점이다. 이번에도 저에게 완전한 신뢰를 보내주셨다. 저뿐만이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자신감을 주다 보니까 선수들도 따르게 된다.

KU: 지도자로서의 철학이 궁금하다

김: 생각하는 축구를 하고 싶다. 수많은 지도자가 가르쳐도 경기를 하다 보면 경기장 안에서는 수많은 상황이 연출된다. 생각을 안 하고서는 그 많은 상황을 일일이 대처할 수 없다. 큰 틀 안에서 상황에 맞게끔 미리 생각할 수 있는 선수를 키워내고 싶다.

KU: 지도자로서 최종 목표가 있다면?

김: 목표라기보다는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목표는 내 수준에 맞게 설정해야 하는데 이제 지도자 생활을 막 시작했기 때문이다.

KU: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어디에 주안점을 둘 것인가

김: 나는 일단 인성을 중요시한다. 선수가 인성이 안 돼 있으면 경기장에서도 지도자가 얘기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생활면, 훈련 태도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볼 생각이다.

KU: 대건고는 2008년 창단 후, 최근 창단 첫 전국대회 우승을 거머쥐는 등 명문 팀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나 부담감은 없는지

김: 사실 전혀 없다고 그러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부담을 안 가지려고 한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성장하게끔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대한 부담을 안 느끼려고 노력한다.

혹시 나중에 고려대 축구부 감독직도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그 자리는 많은 분이 탐내는 자리라 힘들 것 같다며 웃는 김정우의 모습에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부담보다는 ‘하던 대로 열심히’ 또 다른 한 발을 내딛는 김정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수 시절에는 ‘뼈’가 들어가는 별명이 부담스럽고 싫었지만, 이제는 뼈정우로 팬들에게 기억될 수 있어 기쁘다는 김정우. 지도자로서 도전을 이어갈 그의 축구 인생이 계속되길 기대해 본다.




댓글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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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집에가고싶은데 2019-03-23 12:53:17
김정우도 선배님이었네


댓글 2 Crescendo1020 2019-03-23 16:51:02
좋은 인터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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