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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칼럼] 석사 과정생은 1인분(一人前)을 할 수 있을까?
[원우칼럼] 석사 과정생은 1인분(一人前)을 할 수 있을까?
대학원신문
대학원신문 | 등록일 : 2018-09-17 15:15:54 | 글번호 : 9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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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과정생은 1인분(一人前)을 할 수 있을까?

     

일제시대 석사과정 윤서인

     

석사 3학기를 마치고 첫 번째 논문 구상발표를 얼마 전 막 끝냈다. 데드라인이 정해졌으니 글을 써야 했다. 발표문을 쓰면서 이 글을 쓰고자 하게끔 만들었던 문제의식의 근저까지 내려가 고민해보려 했고, 소재에 관련된 연구사들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보아도 단 한 문단조차 쓸 수 없었던 여러 날들이 허송세월처럼 느껴졌다. 결국 내놓았던 글은 스스로가 봐도 참 별로였다. 첫 번째 구상발표니 괜찮다, 다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들을 듣곤 했지만 이와는 별개로 엉성하고 억지스러운 전개와 논리를 선배들이 몰라볼 리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결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발표가 끝나고 나니 첫 번째 관문 하나 넘은 것 같아 되려 후련하기까지 했다.

  복되고 타고난 몇몇을 제외한다면, 어떤 연구자든지 문제의식을 다듬고 자료를 수집하고 논리를 구축하고 글을 작성하는 과정의 고됨을 이해할 것이다. 다만 석사 과정생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애매한 정체성이다. 한 사람의 연구자가 빚어지는 과정은 꽤나 지난한 시간을 동반한다. 그리고 이제 막 예비 연구자로서의 길에 들어선 말 그대로 석사 과정생들은 이리 부딪히고 저리 깨지고 하면서 논문쓰기의 문법을 익히고 세미나와 토론에 적응해나간다. 그 과정 끝에 나오는 하나의 학위논문은 일련의 훈련이 만들어낸 최초의 완성형이자 연구의 시작점이다. 즉 석사 과정생은 일종의 직무훈련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연구자 역할을 기대할 필요 자체가 없는 것이다.

  직무훈련 중에 있기 때문에 적절한 경제적 보상도 기대하기 어렵다. 인문사회계 전업 대학원생에게 경제인으로서의 1인분은 감히 꿈꾸기 힘든 것이다. 조교 일을 하거나 장학금의 수혜를 받는 경우는 개중에도 운이 좋은 편이고, 페이가 괜찮은 프로젝트가 얹히면 가족들의 지원 없이도 조금은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너 좋아서 하는 공부이라는 시선은 보통 감내하라는 폭력을 동반한다. 취업해서 이미 1인분을 하고 있는 친구들 말마따나 대학원생은 졸업할 때 까지 취준생이라지만, 논문을 쓰고 나서도 취준생인 것은 매한가지다. 학생도 취준생도 아닌, 사회인이나 경제인도 아닌, 그렇다고 연구자도 아닌 애매한 경계 어딘가에 석사 과정생이 있다.

  첫 번째 구상발표를 마치고, 소재에 매몰되지 말고 문제의식부터 다시 넓게 잡으라는 선배들의 코멘트를 받아 안고선 고민만 많았다. 연구서를 찾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밀려들었지만 다시 소재에 파묻힐 것 같고, 지겨운 마음도 컸다. 수업과 세미나에 우선순위가 밀려 사놓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이것저것 뒤적거리던 어느 날, 오래 못 보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도 대학원생이었다.

  한 사람 몫을 하는 게 참 어려워.” 이런 내 말을 들은 일본에서 오래 살다 온 친구가 묘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신기하다. 그거 일본에 있는 표현이야. 一人前(いちにんまえ)라고.” 그런가, 싶었다. 그리고 언제쯤 우리가 1인분을 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논문 써야지, 라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지만 친구는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거 되게 폭력적인 말이야. 전체 안에서 한 사람이 한 사람 분의 역할을 못하면 기계의 톱니가 빠진 것처럼 다 고장 나게 되어버린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말. 1인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되어야 할 필요도 없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문제인거지.”

  여기저기 치여 가며 허덕거리는 것이 피도 안 마른 석사 과정생의 일이라는 점은 저 이야기를 나누기 전이나 나눈 뒤나 별다를 일이 없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생긴 의문, 우리가 1인분을 할 수 없다는 현실과는 별개로 그것이 왜 요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예비 연구자라는 애매한 정체성에서 비롯된 자괴감을 덜 느끼게끔 했다. 일정한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어디까지나 자위에 불과하다고는 해도 이것이 스스로를 조금 덜 괴롭히는 방법이라면, 석사 과정생이 할 수 있는 한에서 크게 손해 볼만 한 생각은 아니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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