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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우는 부산고 3학년이던 지난 1985년 봉황대기 대회에서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로 다섯 경기에서 10안타만을 허용, ‘방어율 0’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본교에서도 1, 2학년 정기고연전 때 완투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국가대표 에이스로 맹활약하며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하고 당시 최고 계약금을 받으며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박 교우는 롯데 입단 2년 만에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고 지난 1992년에는 팀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삼성으로 이적한 후 그 동안의 무리한 투구로 인한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 결국 2002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재학 시절 박 교우와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본교 야구부 코치 박철홍 씨는 “박 교우는 당시 대학 최고의 투수였고 후배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남자다운 선수였다”며 그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길홍규 코치 또한 “박 교우는 성실히 운동하며 항상 겸손한 모습을 보여준 훌륭한 선수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특히 1987년 정기고연전 때 완투하며 11대 0의 완승을 이끌었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선수 생활 마감 후 개인사업을 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꿈을 밝히기도 했던 박 교우의 사망 소식은 많은 야구팬들과 본교 교우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5-08-01 19:2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