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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기획]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그들은 왜 여성을 혐오하는가
[쟁점기획]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 그들은 왜 여성을 혐오하는가
대학원신문
대학원신문 | 등록일 : 2013-10-16 13:00:06 | 글번호 : 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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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여성혐오

그들은 왜 여성을 혐오하는가



여성혐오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남성이 범죄를 저지르면 범죄자 개인을 비난하지만, 여성 개인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몰지각한 행위를 하면 ‘요즘 여자들’ ‘한국 여자들’을 싸잡아서 비난하곤 한다. 출산율이 낮은 것도, 취업 장벽이 높은 것도, 결혼 문제도, 육아 문제도, 교육 문제는 부도덕한 여성의 문제처럼 비춰진다. 최근의 여성혐오는 여성혐오 범죄자나 언어 성폭력을 즐기는 일부 사이트 이용자들만의 문제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왜 최근 들어 한국여성에 대한 혐오담론이 극단적으로 가시화되는 것일까. 그들은 왜 분노하고 또 혐오하는가. 왜 분노와 혐오의 대상이 유독 한국의 이삼십 대 여성에게 집중되는 것일까. 본지는 여성혐오담론의 현주소와 그 원인을 진단하고자 한다.


여성혐오의 정의와 최근 현상


여성혐오란 남성 혹은 여성이 여성에게 느끼는 증오와 공포를 의미한다. 여성이 지적으로 열등하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며, 어린애 같거나 관능적이라는 신념이다. 이러한 신념은 여성에 대한 비하나 멸시로 이어진다.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여성혐오를 국지적인 사건이나 태도라기보다는 사회적·의식적으로 만연해서 의식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드러내놓고 여성혐오를 말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여성과 남성 모두가 여성혐오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혐오를 ‘여성멸시’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시선이나 욕망은 그 자체로 여성혐오를 내재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담론은 엄밀히 말해 ‘한국여성 혐오’로 규정할 수 있다. 한국여성 혐오 담론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퍼져나가고 있으며, 그러한 혐오를 집단 정체성으로 삼는 사이트도 존재한다. 공적인 자리에서 이러한 담론이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고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으로 발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보다 일상적으로는 명백히 여성 혐오의 의미를 담은 언어가 조롱과 풍자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된장녀’를 필두로 이어지는 ‘김치녀’ ‘00녀’ 낙인찍기와 서툰 여성 운전자들을 이르는 ‘김여사’와 같은 말들은 일상적으로도 쓰이고 있다. ‘김치녀’나 ‘김여사’와 같은 말은 과거의 ‘양공주’로 여성 호명하기나, ‘여자는 집에서 솥뚜껑 운전이나 해라’같은 거친 성차별의 말들을 가볍게 희석시키면서도 내재된 의미를 지속시킨다. 또한 최근의 현상 중 하나로 가난한 20·30대 남성의 문제와 ‘개념 없는 여성’의 문제를 연상선상에 놓고 기사화하거나 공론화하려는 시도가 있다.


여성혐오의 논리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에서 볼 수 있는 ‘한국여성 혐오’의 논리는 무엇일까. 첫째, 한국여성이 한국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논리다. 서구권의 여성들은 경제적인 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개도국의 여성들은 가정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반해 한국여성들은 한국 사회에 경제적으로 기여하지도 않을뿐더러 가사노동이나 출산·육아의 의무를 방기한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여성들이 남성들을 통해 경제적인 이득을 보거나 자신보다 사회적인 계급이 높은 남성과의 연애 혹은 결혼을 통해 쉽게 계급상승을 하거나 이를 욕망한다는 것이다. 셋째, 역차별 담론이다. 한국 남성들이 징병․취업․결혼의 문제로 사회적인 압박을 받고 있을 때 여성들을 보다 쉽게 취업과 결혼의 장벽을 통과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여성의 권리를 대변하는 여성단체가 많고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위치 짓는 것은 명백한 역차별이라는 논리다. 넷째, 한국여성의 성적 방종에 대한 비난이다. 많은 수의 여성이 문란하고 성매매에 종사하며 백인 남성에게 ‘함부로 몸을 준다’라는 식의 논리다.


  개념녀, 예외적인 여자-되기


여성들 중에서도 여성에 대한 혐오 담론에 참여하는 이들이 있다. ‘나도 여자지만 남자들이 불쌍하다’ ‘나도 여자지만 요즘 여자들 문제다’라는 식으로 ‘요즘 여자들’과 자신을 경계 짓는 일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모습은 과거의 ‘명예남성’을 떠올리게 한다. 70·80년대의 여성 대학생들은 여성을 열등한 대상으로 규정하고 거부하며 ‘명예남성’으로 자신을 위치 지었다. 남성 선배를 ‘형’으로 부르며 여성의 정체성을 지우고 ‘남성 되기’를 열망했던 그녀들의 모습 뒤에는 여성에게 배타적이었던 대학 공동체가 있었다. ‘명예남성’은 여성을 동등하게 대우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여성들의 역할 놀이였다. 반면, 최근의 여성 혐오 담론에 동참하는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여성 정체성을 내세우며 ‘예외적인 여자’가 된다. 이러한 ‘예외적인 여자’는 남성들로부터 ‘개념녀’로 호명된다. 이와 같은 ‘개념녀-되기’는 남성들의 예외적인 여자가 됨으로써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히지 않고 남성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여성혐오 현상의 병리와 문제점


우리는 개개인이 가격표가 달린 물건처럼 거래되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노동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결혼이나 연애와 같은 사적인 관계에서도 스펙으로, 점수로 자주 평가된다.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가격표를 붙이고, 끊임없는 상대평가로 몰아넣는 경쟁구도 안에서 박탈감을 경험한다. 삶은 더 각박해지고 사회적 불평등은 가속화되고 있다. 학자금 대출 갚느라고 돈도 못 모으고 불안정한 일자리에서는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결혼이나 출산은 언감생심이다. 사회적 박탈감과 분노는 가득하지만, 사회는 언제나 그 원인을 개인의 무능으로 떠넘긴다. 왜 아무리 일해도 여전히 가난한지, 노력에 대한 대가는 왜 이렇게 야박한지,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지를 묻기 어려운 시대다. 부조리와 모순은 체감하면서도 자신을 억압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투쟁이나 저항은 과격하고 촌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자신을 억압하는 강자에 대한 문제의식은 저항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무엇이 자신을 억압하는지 모르는 상황은 약자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 약자에 대한 혐오는 나름의 해방감을 주지만 동시에 안전하기까지 하다. 부자들은 그들이 어떤 식으로 부를 축적했든지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부를 향유하는 여성은 ‘유한부인’으로, ‘된장녀’로 불리며 혐오의 대상이 된다. 연애관계에서 ‘스펙’을 요구하는 여자는 사회에서 내내 체감했던 박탈감을 소환한다. 인간을 물건처럼 주고받는 자본주의 사회의 야만에는 대적하지 못하지만 사적인 관계에서 실익을 따지는 여성에 대해서는 마음껏 분노할 수 있다.

젊은 여성들의 새로운 가치관과 그러한 가치관을 용인할 수 없는 가부장적인 시선 또한 여성 혐오의 바탕에 깔려 있다.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했던 어머니 세대와는 다르게 최근의 이삼십 대 여성들은 삶의 중심에 자기 자신을 둔다. 자신의 삶을 기꺼이 향유하는 여성,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여성상은 한국 사회에서 이 세대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도 유교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한국에서 이와 같은 여성상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김치녀’ 담론의 핵심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경제적 의존에만 있지 않다. 유구한 가부장제의 역사 동안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순전히 아버지와 남편에 의해서만 결정되었다. 문제는 젊은 여성들이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 즉 남편에 대한 순종, 가족에 대한 희생, 돌봄과 같은 역할들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밖에서는 고개를 숙여도 집 안에서는 권위를 보장 받았던 전통적인 가부장의 지위는 흔들리고 있다. 고통을 감당하지 않는 여성, 내가 우선인 여성은 미디어를 통해서 부정적인 여성 이미지로 반복 재생산되고 있기도 하다.

남성에게 의존적이며 경제적으로 기생하는 여성들은 개인으로서 존재한다. 기생적인 삶의 방식은 성별을 떠나 비판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여성 개인의 문제를 여성 전체로 일반화한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 산적한 모순들, 불평등 문제, 노동자 문제, 차별 문제, 언론 탄압의 문제, 민주주의 위기의 문제에는 분노하지 않으면서, 강자에게는 저항하지 않으면서 ‘정의’의 이름으로 ‘한국여자들’이라는 정체모를 집단을 혐오하는 모습은 그저 유치한 분풀이로밖에 볼 수 없다.

최은영 기자 euni153@naver.com



댓글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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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레이디JJ 2013-10-22 14:10:22
잘 읽었습니다!


댓글 2 아몬큐 2013-11-01 13:02:24
그러게요. 그 정도의 도덕적 잣대를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에게 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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