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았던 왕하면 대표적으로 장수왕이 떠오를 것입니다. 장수왕은 98세까지 살았는데 그 수명이 교차검증까지 되며, 심지어 80대의 나이에 직접 백제에 친정을 떠나 개로왕의 목을 베는 기염을 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장수왕보다도 오래 살았다고 기록된 왕이 있으니 바로 고구려의 태조왕입니다. 사실 태조왕으로 으레 알려져 있지만 실제 기록 상에는 태조대왕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직후 왕들도 차대왕, 신대왕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그 시기에 대왕이라는 표현이 쓰여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삼국사기 기준으로 태조대왕은 한국 나이 119세까지 살다가 죽습니다. 더 미스테리한 것은, 100세 때 '동생'이던 차대왕에게 스스로 왕위를 넘겨주고 그 후로도 무려 19년을 더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서 동모제, 즉 어머니가 같은 형제라던 차대왕은 태조대왕과 무려 24살이 차이 납니다. 더욱 갸웃하게 되는 것은, 태조대왕과 신대왕 역시 형제라고 나오는데(동모제 X) 무려 42세 차이가 난다는 점입니다.
이 3명의 왕들은 관계가 무척이나 미스테리합니다, 중국 사서 중 <후한서>에는 태조대왕의 아들이 차대왕, 차대왕의 아들이 신대왕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정사 삼국지에는 태조대왕의 아들이 신대왕이라고 나옵니다. 삼국사기, 삼국지, 후한서 제각각 기록이 다 다른 것입니다.
숫자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삼국사기에서 태조대왕이 75세이던 시기에 이미 군권을 비롯한 실질적인 권한을 그 동생인 수성, 즉 훗날의 차대왕에게 넘겼다고 되어있고, 25년 후에 아예 왕 자리를 물려줬으며, 그 19년 후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실질적인 권한을 넘겼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다음은 태조대왕이 실권을 넘겼다는 시기의 삼국사기 기록입니다.
11월에 군권을 아우에게 남겼다는데 12월에 임금이 1만여 기병을 거느리고 싸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상당히 의문스러운 기록입니다. 이미 군권을 넘겼는데 임금이 군사를 몰고 가는 것이 이상하죠. 이에 관한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이미 이 때 태조대왕이 죽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때 죽었다면 75세 정도에 죽은 것이므로 어느 정도 합리적인 나이이기도 하고, <후한서>의 기록과도 합치됩니다.
그런데 만약 이 가설을 따른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75세에 죽은 태조대왕이 119세까지 산 것으로 와전되었는가?입니다. 이 가설을 취하는 사람들 중에서 '신대왕이 기록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대왕은 쿠데타로 차대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는 차대왕을 당시 재상이던 명림답부가 몰아내고 신대왕을 옹립합니다(단순 옹립인지 동맹이었는지는 설이 갈림). 그렇기 때문에 신대왕 입장에서는 차대왕의 정통성을 훼손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원래 태조대왕의 아들이던 차대왕을 태조대왕의 동생으로 비틀었다는 가설입니다. 이렇게 정통성을 한 단계 훼손한 후, 더 나아가서 75세에 사망했던 태조대왕을 119세까지 살려두면서 '선왕이 살아있는데 폐위시키고 본인이 왕위를 찬탈한 차대왕' 이미지를 확립했다는 내용입니다. 정리하자면, 원래는 태조대왕이 75세에 사망했고, 그 아들인 차대왕이 51세에 왕이 된 것인데, 이후 신대왕이 쿠데타를 일으켜 차대왕을 죽이고 역사를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태조대왕의 수명을 비정상적으로 늘려놓고, 차대왕은 태조대왕의 동생으로 바꾼 후, 차대왕이 형의 왕위를 찬탈한 것처럼 기록을 조작했다는 가설입니다.
기본적으로 태조대왕의 진짜 사망은 75세 시점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가설이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제가 방금 소개한 조작설 이외에도 '병합설'이 존재합니다. 삼국사기와 광개토대왕릉비가 소개하는 고구려 왕의 숫자가 다르기 때문이죠. 대왕릉비에서 광개토대왕은 17세손으로 나오는데 삼국사기 기준으로는 13세손입니다. 여기서 태조대왕의 아들을 차대왕, 차대왕의 아들을 신대왕이라고 가정하더라도 15세손이 될 뿐입니다. 이러한 계산 차이를 두고 '여러 명의 왕이 한 명으로 병합되었고, 이 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수명이 늘어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다만, 이와는 달리 대왕릉비와 삼국사기의 차이를 두고 '고구려가 사실 삼국사기 기록보다 더 이전에 세워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처럼 태조대왕의 수명은 큰 논쟁거리가 되기 때문에 교과서에 그 수명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장수왕의 수명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장수왕의 수명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잘 모르셨을 태조대왕의 나이 미스테리에 관하여 소개하였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5-08-11 16:2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