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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익명
2025-03-20 17:43:06
7/ 저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내용이 어려워서 gpt에게 정리시켰습니다.
① 사건의 배경 및 초기상황
1397년(태조 6년)에 명나라 홍무제(주원장)는 조선이 보낸 표문(외교문서)에 무례한 표현이 있다며 사신 정도전을 압송하라고 요구함.
정도전 대신 권근, 정총, 김약항, 노인도 등이 사신으로 명나라 남경에 갔으나, 문제를 제기한 주원장의 분노로 인해 억류됨.
② 죽음에 대한 두 가지 설의 등장
첫 번째 설(참수설) : 실록의 한 기록과 드라마 《정도전》에서 표현된 바에 따르면, 정총이 현비(고려 공민왕의 왕비) 상사(喪事)로 인해 흰옷을 입었다가 명 황제의 노여움을 사 참수형에 처해졌고, 김약항과 노인도도 연루되어 함께 처형당했다는 내용임.
두 번째 설(유배설) : 《연려실기술》, 《용재총화》, 《해동잡록》 등에 따르면, 정총, 김약항, 노인도는 참수되지 않고 운남 등 멀리 오랑캐 땅으로 귀양 갔으며, 이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이후 전해짐.
③ 조선의 대응 및 공식 확인 절차
명에서 이들의 사망설이 전해졌으나, 태조 이성계는 명나라의 공식 통보(자문)가 없었다는 이유로 이들의 사망을 즉각 공식화하지 않았음.
1402년(태종 2년), 영락제가 황제가 되자 그의 사신 양영이 전하기를, “김약항은 살아있으나 정총과 노인도는 병으로 죽었다”고 했으나 이 또한 비공식이었음.
1403년(태종 3년), 성석린이 사신으로 가서 영락제를 만나 억류된 사람들의 송환을 요청했고, 명나라 영락제는 “주원장이 사신들을 죽이지 않고 먼 곳으로 귀양 보냈으며, 풀어주려 했으나 건문제(영락제의 조카)가 방해했다”고 설명함.
④ 귀국자 명단을 통한 최종적 생사확인
1404년(태종 4년) 이빈이 돌아왔을 때, 명에서 억류된 인원 중 조서, 곽해룡, 송희정, 오진, 권일송만 돌아왔음.
정총, 김약항, 노인도는 명단에서 빠져 있었으며, 조선에서도 이들의 죽음을 사실상 인정하게 됨.
⑤ 조선 내 최종 정리 및 사망 공식화
1409년(태종 9년)에 실록을 편찬할 때쯤에는 정총의 이름 앞에 '고(故)'자가 붙으며 사망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됨.
결국 이들은 명나라에 의해 처형되었든, 유배지에서 병사하였든, 귀국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최종 정리됨.
✅ 결론
정총, 김약항, 노인도 등은 명나라에서 처형되었다는 설과 먼 곳으로 귀양 갔다가 병사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조선은 수차례 공식 확인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이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기록에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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