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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등록일 : 2025-03-20 16:50:16 | 글번호 : 414151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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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동기를 잘 만나야 하는 이유




첨부 이미지 : 1개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5-05-26 10:28:40:


댓글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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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댓글 1 익명 2025-03-20 16:57:58

약간 곽철용 느낌나네요...

자기보다 등수 좋은 10명 중에 멀쩡한건 자기 편든 5등 유염뿐이고

아래도 멀쩡하게 죽은 사람이 몇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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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댓글 2 익명 2025-03-20 16:53:59
유배 참수 참살 사사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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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익명 2025-03-20 16:52:11
절반 이상이 조선조에서 한가닥했네요 ㅋㅋㅋ :


댓글 2 BEST 익명 2025-03-20 16:53:59
유배 참수 참살 사사의 향연 :


댓글 3 BEST 익명 2025-03-20 16:57:58

약간 곽철용 느낌나네요...

자기보다 등수 좋은 10명 중에 멀쩡한건 자기 편든 5등 유염뿐이고

아래도 멀쩡하게 죽은 사람이 몇 안되네요.... :


댓글 4 익명 2025-03-20 17:00:38
피비린내 장난 아니네 :


댓글 5 익명 2025-03-20 17:04:18
킬방원 어디 안가네 :


댓글 6 익명 2025-03-20 17:08:10
사직하고 출사거부가 정배네 :


댓글 7 익명 2025-03-20 17:20:35
주원장한테 참수당한건 무슨 일이죠..? :


댓글 8 익명 2025-03-20 17:20:44
6/ 고려에는 벼슬시켜달라고 과거 급제까지 한 사람이 조선에는 출사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면... :


댓글 9 익명 2025-03-20 17:24:02
8/ 아앗, 두문불출 설화로 이어지네요 이게 ㄷㄷㄷㄷ :


댓글 10 익명 2025-03-20 17:43:06
7/ 저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내용이 어려워서 gpt에게 정리시켰습니다.

① 사건의 배경 및 초기상황
1397년(태조 6년)에 명나라 홍무제(주원장)는 조선이 보낸 표문(외교문서)에 무례한 표현이 있다며 사신 정도전을 압송하라고 요구함.
정도전 대신 권근, 정총, 김약항, 노인도 등이 사신으로 명나라 남경에 갔으나, 문제를 제기한 주원장의 분노로 인해 억류됨.

② 죽음에 대한 두 가지 설의 등장
첫 번째 설(참수설) : 실록의 한 기록과 드라마 《정도전》에서 표현된 바에 따르면, 정총이 현비(고려 공민왕의 왕비) 상사(喪事)로 인해 흰옷을 입었다가 명 황제의 노여움을 사 참수형에 처해졌고, 김약항과 노인도도 연루되어 함께 처형당했다는 내용임.
두 번째 설(유배설) : 《연려실기술》, 《용재총화》, 《해동잡록》 등에 따르면, 정총, 김약항, 노인도는 참수되지 않고 운남 등 멀리 오랑캐 땅으로 귀양 갔으며, 이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이후 전해짐.

③ 조선의 대응 및 공식 확인 절차
명에서 이들의 사망설이 전해졌으나, 태조 이성계는 명나라의 공식 통보(자문)가 없었다는 이유로 이들의 사망을 즉각 공식화하지 않았음.
1402년(태종 2년), 영락제가 황제가 되자 그의 사신 양영이 전하기를, “김약항은 살아있으나 정총과 노인도는 병으로 죽었다”고 했으나 이 또한 비공식이었음.
1403년(태종 3년), 성석린이 사신으로 가서 영락제를 만나 억류된 사람들의 송환을 요청했고, 명나라 영락제는 “주원장이 사신들을 죽이지 않고 먼 곳으로 귀양 보냈으며, 풀어주려 했으나 건문제(영락제의 조카)가 방해했다”고 설명함.

④ 귀국자 명단을 통한 최종적 생사확인
1404년(태종 4년) 이빈이 돌아왔을 때, 명에서 억류된 인원 중 조서, 곽해룡, 송희정, 오진, 권일송만 돌아왔음.
정총, 김약항, 노인도는 명단에서 빠져 있었으며, 조선에서도 이들의 죽음을 사실상 인정하게 됨.

⑤ 조선 내 최종 정리 및 사망 공식화
1409년(태종 9년)에 실록을 편찬할 때쯤에는 정총의 이름 앞에 '고(故)'자가 붙으며 사망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됨.
결국 이들은 명나라에 의해 처형되었든, 유배지에서 병사하였든, 귀국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최종 정리됨.

✅ 결론
정총, 김약항, 노인도 등은 명나라에서 처형되었다는 설과 먼 곳으로 귀양 갔다가 병사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조선은 수차례 공식 확인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이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기록에 남겼다. :


댓글 11 익명 2025-03-20 17:51:46
김한로는 순수 양녕대군 트롤짓에 휩쓸린거 같아 태종 탓은 아니고 좀 불쌍한거 같아요.
자기 처가랑 세종 처가 다썰어제낀 그 태종 이방원이 당시 세자의 사돈 삼은거 보면, 애초에 외척 짓 할 세력이나 야심 없다 검증 끝난거라 봄. 근데 태종에겐 내 동기 중 얘가 1등이었어 라는 명분과 친분이 있었으니 세자 사돈 까지 하고 그에 맞는 벼슬 잘 누리고 있었을거 같은데 세자가 양아치짓으로 폐위되고 사돈은 뭐했냐 너도 유배야 해버리면 할말이.. :


댓글 12 익명 2025-03-20 17:54:07
7/ 표면적 이유는 주원장이 사신들에게 입을 옷을 줬는데, 권근도 그 옷 잘 입고 나왔는데 정총은 신덕왕후(이성계의 계비, 자녀로 이방석) 국상이라는 이유로 상복을 입고 나왔다는 괘씸죄고

정치적 이유는 이방원 파벌인 권근에게만 표전문 문제를 해결한 공로를 몰아주고 정도전 파벌인 정총은 처형해서 정도전의 입지를 깎으려는 의도입니다

이인도는 정총과 같이 죽었고 실록에서도 (정)총의 일로 같이 죽은 것이라고 쓰는 걸 보면 아마 정도전계로 분류되어서 같이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


댓글 13 익명 2025-03-20 18:08:38
장원이 만 16세
이방원도 만 16세 :


댓글 14 익명 2025-03-20 18:28:33
최영도 한가닥했네 멸족이 기본…

황희는 살아남아서 명재상이 된 느낌 :


댓글 15 익명 2025-03-20 18:31:10
이제 민무구도 동기였군요 :


댓글 16 익명 2025-03-20 18:35:03
황희는 저시절에 장수했네요 :


댓글 17 익명 2025-03-20 18:58:58
검색해보니 표가 좀 이상한거 같아요. 황희는 저때 명단에도 없었대요
https://m.fmkorea.com/5832434679 :


댓글 18 익명 2025-03-21 08:20:29
왕의 아들도 과거 시험따위를 준비하나?
했는데
고려 과거시험이군요 ㅋㅋㅋ :


댓글 19 익명 2025-03-21 13:30:02
민무구 황희 킬방원이 과거 동기인게 웃기네 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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