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책이 있길래 추천하려고 처음으로 벼룩시장이 아닌 곳에 글을 써봅니다.
“안녕들 하십니까”가 처음 기사로 떴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별 것도 아닌 것이 이슈화 되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사건 자체가 별 것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고 이러한 시도는 결코 처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지금껏 별 반응을 얻지 못하고 묻히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중요 아젠다로 떠올랐기에 한편으로는 다행이지만,
지금껏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혔던 것은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제가 소개하려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 책에서는 희망적으로 볼 수 없는, 굉장히 비관적인 그런 대학생 모습이 나옵니다.
이 책에 우리 학교 이야기도 나오는데, 좀 씁쓸하기도 흥미롭기도 하네요.
고려대 다니는 학생이 같은 6호선 라인에 있는 동덕여대를 무시하고 얕잡아 보기도 한다는 등...
좋은 학교, 좋은 과일수록 과잠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닌다는 등...
뭐 그런 경우가 있기는 한데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합니다만,
내부인과 외부인이 느끼는 온도 차이가 분명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입학 후 몇 년이 지나서까지 수능점수 가지고 비교하는 모습 같은 일반적인 경향 설명은 꽤 재밌었어요.
한번쯤 읽어보시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새롭게 되돌아보게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빠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던 책이었습니다.
이건 책 소개글인데... 그냥 첨부해 두겠습니다.
장면1. 어느 대학 강의실.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놓고서 강사와 학생들이 토론을 벌인다.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한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다른 학생들도 이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다. 이에 힘입은 그는 계속 말한다. “입사할 때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인 것 같습니다.” 수강생의 3분의 2 이상이 이 의견에 동의했다.
장면2. 지방대 출신이 취업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룬 영화를 보고 일단의 학생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주인공의 처지에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모임을 주관한 강사는 그들에게 지방대에 대한 차별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학생은 언제 울었냐는 듯이 “지방대는 저희 학교보다 대학서열이 낮아도 한참 낮은 곳인데, 제가 그쪽 학교의 학생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을 받는 건 말이 안 되죠!”라고 답했다. 여기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이들은 모두 ‘인서울’ 대학 학생이었다.
장면3. 학교에서 가장 잘나가는 학과인 경영학과에 다니는 한 학생은 자기 학과가 다른 학과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겨우 턱걸이”해서 학교에 들어온 철학과나 사학과 학생들을 “개무시”한다. 수능을 보지 않고 들어온 수시생들을 ‘수시충’이라 비하하며 부르고, 재외국인 전형, 사회통합 전형 같은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우들을 낮춰본다. 최근 몇몇 대학들에서는 지역균형, 기회균등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을 ‘지균충’ ‘기균충’이라 부르며 무시한다고 한다.
이것이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지금의 이십대다. 이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다. 바로 차별의 벽을 쌓고 상대를 밀어내는 태도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 방어와 타인에 대한 공격이 동전의 양면처럼 쌍을 이룬다. 즉 이들은 현 사회의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많은 이십대 담론은 이십대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그들의 사회경제적 처지, 그리고 그 해결책에 대해서 논했다. 이십대들이 문제에 부딪혀 있으니, 이를 해결하여 이십대들이 ‘제대로’ 살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러 이야기들은 상시적인 불안에 내몰린 이십대들이 그 결과로 어떤 존재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이십대들은 ‘정상적인 삶’과 ‘윤리’와 ‘공정’ 등에 대한 개념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 예전의 ‘진보적 이십대’를 놓고 생각한다면 이들은 매우 뒤틀려 보이기까지 한다. 이십대 자체가 문제적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이십대들은 마냥 고통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 찬성하기까지 하며 스스로도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이런 기묘한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십대 문제를 결코 풀 수 없을 것이다.
더 자세한 소개는 다음 주소에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http://www.yes24.com/24/Goods/11655270?Acode=101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5-08-17 00:5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