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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라 - <원더>
글쓴이 : 대학원신문 | 등록일 : 2018-05-16 14:08:51 | 글번호 : 9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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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라 - <원더>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친절함을 택하라.”

올바르기란 쉽다. 하지만 친절하기는 어렵다. 올바름은 언제나 정해진 기준에 따라 자신의 행동도, 삶도 맞추면 달성된다. 인류의 역사는 올바름의 기준을 부단히도 고쳐온 과정이자, 올바름의 폭력 아래 무수한 타자들을 굴복시켜온 시간이기도 하다. ‘올바른 것을 행한다’는 명분 아래, 그에 대한 손쉬운 복종 아래, 눈앞의 타인에 공감하고 그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사라졌다. 그 올바름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부드러운 마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순간, 편견과 차별 없이 일어나는 공명은 늘 ‘올바름’ 앞에 힘을 잃는다.

친절은 상대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순간에 대한 묘사다. 달리 말해, 환대는 타인을 향한 내 안의 ‘올바름의 기준’이 무너진 폐허에서 피어오른다. 진정으로 친절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무너져 있어야 하고, 열려 있어야 한다. 내 안에 쌓아올린 편견의 성벽을 따라 타인을 만나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살아 있는 채로, 매번 새로운 영혼으로, 갓 알에서 태어난 어린 새의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다. 친절 안에서, 가치의 기준은 매번 새롭게 탄생한다. 내가 환대한 자, 내가 사랑하는 자, 나와 시선과 육성을 있는 그대로 마주한 자가 새로운 기준이 된다. 그래서 친절은 역동성의 다른 이름이고, 새로움의 징표이며, 어려운 일이다.

영화 <원더>의 주인공 ‘어기’는 유전적인 문제로 남다른 외모를 가진 아이다. 태어난 이후로, 무려 스물일곱번의 성형 수술을 거쳤지만 여전히 일반인들과는 다른 외모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열 살이 넘도록 항상 우주인 헬멧을 쓰고 다니며 홈스쿨링만 해야 했기에, 친구 한 명 없는 어기가 처음 학교를 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처음 어기는 또래들에게 은근한 따돌림이나 노골적인 놀림을 당한다. 그러나 그에게 진정으로 다가오는 친구들을 알게 되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서서히 치유되어 간다.

마지막에 어기는 학생의 대표로 표창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가 “다른 이들에게 싸울 용기를 불어 넣었기” 때문이다. 그 용기란 차별을, 올바름의 폭력을 이겨낼 용기다. 처음에는 모든 아이들이 그를 낯설어했다. 그 이유는 아이 역시 어른 못지않게, 사회의 ‘일반적인’ 편견 혹은 기준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인간은, 일반적인 인간은, 정상적인 인간은 ‘저렇게 생겨서는 안 된다’라는 기준 안에서 항상 타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법이다. 아이들은 아직 그러한 기준으로 완전히 딱딱해진 존재는 아니다.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마음을 열 줄 안다. 올바름의 폭력을 가하기 전에, 마음으로 친절할 줄 안다. 가식이나 계산이 아닌 환대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 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이야기는 마치 동화처럼 아름답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나 사회 같은 것은 이 영화에 감히 침범하지 못할 것만 같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그러한 환대를 오래 전에 잃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자기 방어에만 급급한 채 살도록 강요받고 있어서, 용기를 내어 타인에게 환대하는 방법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결국 모든 행동, 모든 선의, 모든 말이 나를 지키고, 나를 보존하고, 나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게끔 살도록 프로그래밍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영화 <원더> 속의 아이들은 항상 친절을 염두에 둔다. 그들은 친절이 올바름보다, 이익보다, 자기방어보다 낫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기는 말한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어쩌면 우리 모두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힘겹게 하는지는 명백하지 않다.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부조리한 사회로 인해서일 수도 있고,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이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힘겨움 때문에 자신의 안으로만 매몰되어 간다면, 우리는 영원히 저 ‘환대의 세계’를 알지 못할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올바름의 기준에만 들고, 그를 통해 자신을 보존하고 방어하는 데만 몰두해서는,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에조차 영영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우리가 자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한 줌 손에 쥘 때, 그렇게 한 걸음을 내뻗을 때, 친절한 용기를 한 모금 들이킬 때, 세상은 온통 환대의 공간으로 내게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 세계는 분명 우리가 살아왔던, 우리가 올바르다 믿었던, 우리가 알던 세계와 다를 것이다. 그 세계 속의 나도, 그 세계 속의 타인도 내가 알던 것들보다 훨씬 나은 그 무엇일 것이다.

영화는 어기가 학교에 훌륭히 적응하고 난 뒤, 어기의 엄마인 이사벨이 십여 년 넘게 미뤄두었던 논문을 완성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녀는 어기를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해, 십년이 넘는 삶을 바쳤다. 어기가 맞이할 환대를 꿈꾸며, 그 지난한 세월을 견뎌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은 채, 세상이 열리며 맞아줄 날을 기다렸다. 아이를 손에서 놓고 학교로 보낼 때의 그 마음은 아이를 조각배에 태워 망망대해로 보내는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어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왔다. 그 세상에서 한 줌의 친절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wonder)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나 또한 그런 한 줌의 기적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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