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의 지평에서 밀양 투쟁의 의미를 묻다”
최근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 책, 『밀양전쟁』이 발간됐다. 이 책은 10년 째 이어지는 밀양 투쟁의 원인과 조건들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한 뒤, 밀양 문제의 대안, 혹은 해결 단초로서 ‘공통자원’을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밀양에서의 갈등에만 집중하는 것을 넘어 ‘밀양 이전의 밀양’들을 살펴봄과 동시에, ‘밀양 이후의 밀양’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어떠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지를 제시한다. 이러한 지점은 밀양 투쟁을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보편적 지평 위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그렇다면 보편성의 영역에서 밀양 투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왜 유용하고 필요한 것일까. 저자 장훈교를 만나,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장소’의 고유성을 고립성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보편의 관점에서 밀양 투쟁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책을 쓰던 중, 고병권 선생께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과 관련해서 쓴 르포 『점거, 새로운 거버넌트』를 읽게 됐고, 거기서 굉장히 인상 깊은 구절을 만났습니다. 월가 점거 운동이 월가에서 일어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장소 자체에만 집중하게 됐을 경우, 모순적이게도 그 운동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밀양과 같이 특정 장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운동이나 투쟁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소 기반 운동의 고유성에만 지나치게 매몰됐을 경우, 역설적으로 그 고유성대신 고립성만이 강조될 염려가 생기는 것이죠. 고유성에 담긴 강렬한 내러티브는 또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고, 그랬을 경우 개별 투쟁들은 파편화되고 원자화될 가능성을 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연대의 방법을 모색하고 싶었습니다.
90년대 이후 많은 운동이나 투쟁들은 장소를 뺏기거나 그것을 다시 빼앗는 문제로서의 공통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밀양은 이러한 ‘점거’의 양상이 도드라지는 경우이죠. 한국전력은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서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밀양에 사는 분들은 삶의 장소를 빼앗길 수 없고, 때문에 점령과 점거의 문제는 이 투쟁을 바라볼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삶의 장소와 그곳에서 살아가던 인민이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했을 때, 인민들은 장소를 탈환하기 위한 점거를 하죠. 점거는 경찰이나 국가로 대표되는 세력에 대한 인민들의 핵심적인 저항 수단인 셈입니다. 전력 확보를 위해서 삶의 장소로부터 인민을 밀어내는 밀양 이전의 밀양들은 사실 수없이 많았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에코 페미니스트들이 자연을 지키는 투쟁을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껴안고 있는 것인데, 이 또한 밀양투쟁과 동일한 지평에서 사유되고 연대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적나라한 민낯
저자는 밀양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한국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찾고 있다. 국가주의와 자본주의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 가운데 밀양, 그리고 또 다른 밀양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여러 자료들을 찾다가 어느 일간지에, 초등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이 세워져 있고 그 주변에서 아이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는 사진이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90년대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송전탑이 삶의 공간에 들어왔을 때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전시하기 위한 목적의 사진이었겠죠. 이처럼 후발산업국가인 한국이 산업화의 추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것은 필수적 자원을 구축하는 것이었고, 그 가장 기본은 전력 생산 기반을 만드는 데에 있었습니다. 국가 전력망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돈과 기술이 필요한데, 국가는 그것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서 인민들을 국토건설단 같은 동원 단체에 차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가하면 공간 확보를 위해서 인민들의 삶의 장소를 조직적으로 빼앗기도 했던 것이죠. 삶의 장소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때에 인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국가에게 고려의 대상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전력하부구조를 만드는 과정은 인민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들의 장소를 빼앗는 과정과 맞물려 있습니다. 삶의 부를 국가의 부로 집중해내고 그것을 다시 자본의 부로 돌리는 방식으로 한국 자본주의가 만들어지고 발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1960년대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마르크스의 시초축적 개념을 활용하기도 한다. “보통 시초축적은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갖춰지는 자본주의 이전의 시기를 설명하기 위해서 쓰는 개념이지만, 후발산업국가인 한국의 경우 자본주의의 발전과 시초축적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전력이 전력하부구조를 만들기 위해 행해왔던 일들은 바로 이 개념을 빌어 설명될 수 있는 것이지요.”
‘공적자원’을 넘어서 ‘공통자원’으로
한편 저자는 밀양 투쟁의 원인과 문제를 찾는 것 뿐 아니라 그 대안을 마련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한국전력을 통해 독점되고 있는 중앙 집권적 관리체계가 ‘공적자원’개념에 기반 있고 그것이 밀양투쟁을 배태했다면, 저자가 그 대안으로 내놓고 있는 것은 ‘공통자원’이라는 개념이다. 그 개념의 사용에는 전력자원이 국가독점화, 나아가 상품화되는 과정을 막고, “자원의 생산자와 이용자가 일치하거나 함께 자원 관리에 참여”(260쪽)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새롭게 조직하고 구성하는 원리가 되기도 하는데, 저자는 그것을 “민주주의 급진화 기획”이라고 명명한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관점으로 밀양 투쟁을 바라보자는 입장에 대해서 질문했다. “밀양 문제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2005년 이후이지만, 이것이 잉태된 시기는 1997~8년 한국 전력산업계획이 수립되던 때로 올라갑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간이 ‘수평적 정권 교체’라고 일컬어지는 민주당 정부 계열이 정권을 잡던 때와 일치한다는 것이죠. 권위주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한국 자본주의의 산업화 구조가 민주화 이후에 밀양 송전탑과 같은 문제를 만드는 흐름으로 이어진 것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실상은 전력산업이 민주화된 것이 아니라, 민영화되는 방향으로 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말하자면 밀양은 공적 하부구조로서의 전력 계통을 민주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도 독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한국 민주주의의 관점으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 인터뷰·정리: 최은혜 기자
sinedoque@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