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시리즈의 일본어 고유명사 표기는 나무위키 표제어에 등록된 표기법을 따릅니다. 다만 몇몇 예외가 있을 수 있습니다.
『 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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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 여행의 2일차가 밝았습니다. 글의 시점은 4월 14일 월요일입니다. 여행 2일차는 아침에 눈을 뜰 때 꽤 긴장됐습니다. 왜냐하면 여행 기간 내내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일기예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일차 날씨가 정말 안 좋기도 했고요.
(긴장...!)
그런데 1일차 저녁부터는 일기예보를 볼 때마다 2일차의 날씨가 계속 바뀌더라구요? 비와 바람이 강할 거라고 했다가, 흐리기만 할 거라고 했다가, 오전 중에는 잠깐 맑을 수도 있다고 하다가, 일기예보가 아니라 가챠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심지어 바로 옆동네 날씨끼리도 서로 다를 거라고 예보가 뜨더군요. 2일차인 오늘 갈 곳은 나고야 인근의 이나베라는 동네인데, 나고야 날씨 예보와 이나베 날씨 예보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시간대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마저 믿을 수 없는 지경이었고요.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건 숙소에서 나와 나고야역까지 오는 길엔 드문드문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과연 이나베의 날씨도 맑을지...!? 날씨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번 여행 중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장소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2일차 시작은 킨테츠나고야역에서 시작합니다. 어제(1일차)는 메이테츠와 함께했다면, 오늘은 킨테츠(近鉄)와 함께 달릴 거예요.
킨테츠나고야역 승강장으로 들어와 몇몇 열차 사진을 담습니다. 킨테츠의 열차 분위기는 또 메이테츠랑은 확 다르죠?
지금 이 킨테츠의 분위기, 나라에 가본 적 있는 분이라면 아마 어디선가 맛본 익숙한 맛이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오사카, 교토에서 나라에 갈 때 높은 확률로 이용하게 되는 게 이 킨테츠의 노선이거든요. 저는 지금 나고야에 있지만, 멀리 오사카, 나라에서부터 킨테츠의 노선망이 이어져 꼭 간사이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킨테츠나고야역에서 열차를 타고 20분 정도를 달려야 합니다. 과연 2일차의 날씨 운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날씨 가챠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나고야에서 멀어질수록 오히려 점점 더 파랗게 맑아지는 하늘!
나고야에서 20여 분 정도 달려 하차한 이곳은 쿠와나역으로, 나고야가 있는 아이치현을 넘어 미에현으로 들어왔습니다. 쿠와나역은 JR도카이의 간사이 본선, 킨테츠 나고야선, 요로 철도 요로선, 그리고 산기 철도 호쿠세이선이 교차하는 상당히 복잡한 역입니다. 음, 사실 정확히 말하면 호쿠세이선은 쿠와나역에서 바로 환승이 되는 건 아니고, 환승하고자 한다면 쿠와나역 동쪽에 위치한 니시(西)쿠와나역까지 걸어가 타야 합니다. 간접환승 방식입죠.
쿠와나역에서 몇 걸음 걸으면 산기 철도 호쿠세이선의 니시쿠와나역이 이렇게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쿠와나역의 동쪽에 있는데 왜 역 이름은 니시(西)쿠와나역이람...?
산기 철도 호쿠세이선의 니시쿠와나역으로 들어왔습니다. 오늘 다행히 일기예보와는 다른 맑은 하늘이 펼쳐진 관계로 이번 여행 중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장소에 그대로 가도 좋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철도무스메 중 한 명인 소하라 렌게가 반겨주네요 ㅋㅋㅋ 호쿠세이선에 있는 렌게지역과 소하라역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작명 같습니다.
승강장의 고객 대기실
산기 철도는 호쿠세이선과 산기선 고작 두 개의 노선만을 운영하고 있는 미에현의 군소 철도 사업자입니다. 이쪽 지역은 킨테츠가 압도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는 지역이지만, 용케 살아서 철도 운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방 군소 철도 회사 특) 자사 굿즈 홍보함. 아무래도 철도 덕후들의 마음을 자극하여 한 번이라도 더 찾아오게 하려는 전략 같습니다. 일본의 지역 철도 회사 중에는 이런 전략을 쓰는 곳이 실제로 많습니다.
JR도카이와 킨테츠의 쿠와나역은 우리네 구로역처럼 규모가 거대합니다. 그에 비해 산기 철도 니시쿠와나역은 구석에 방 하나 간신히 얻어 쓰는 것처럼 승강장과 선로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마침 알록달록한 전동차가
지나가길래 슬쩍~
선로도 한 번 찍어봅니다. 혹시 특이한 점을 알아보시겠나요? 힌트는 궤간입니다.
'궤간(軌間)'이란 철도에서 양쪽 레일 안쪽 면 사이의 거리(정확히는 레일 윗면으로부터 14mm 아래 지점 사이의 거리)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궤간이 1,435mm인 표준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궤간이 넓으면 광궤라 하고, 이보다 궤간이 좁으면 협궤라 부릅니다. 일본은 사용하는 궤간이 다양한데, 고속열차(신칸센)는 표준궤를 쓰지만, 재래선은 주로 궤간이 1,067mm인 '케이프 궤간'을 사용합니다. 재래선에서는 협궤가 제일 많이 쓰인다는 뜻이죠.
그런데 이곳 산기 철도 호쿠세이선은 일본 재래선 주력 궤간인 케이프 궤간보다도 더 좁은(!!) 762mm 궤간을 쓰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선로 폭이 좁다는 게 느껴지시나요? 762mm 궤간은 우리나라에서도 쓰인 적이 있는데,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으로 편입되기 한참 전에 존재했던 수인선 협궤열차가 사용하던 궤간입니다. 더 옛날에는 수원과 여주를 잇는 철길 수려선에서도 762mm 궤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762mm 궤간을 쓰는 노선이 존재하지 않고, 북한의 산악 지역에는 아직 몇 곳 남아 있다고 합니다.
762mm 초미니 궤간을 달리는 열차는 과연 어느 정도의 사이즈일 것인가, 설레는 맘으로 열차를 기다립니다. 아무래도 사진에서 궤간이 좁다는 걸 바로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고, 열차를 보여드리고 싶네요.
평일 낮 시간대라서 그런지 승강장에 사람이라곤 저 혼자였습니다. 곧 들어올 열차를 기다리면서 니시쿠와나역의 모습을 한 컷
자, 시간이 되니 니시쿠와나역으로 산기 철도 호쿠세이선 열차가 들어왔습니다! 워낙 강렬한 노란색 도색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열차가 역에 들어오니 승강장이 반사광에 의해 노랗게 물들더군요.
열차 진입하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진짜 열차가 맞아? 싶을 정도로 작은, 버스보다도 작은 것 같은 무엇인가가 굴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승강장에 진입한 승객과 비교해 봅니다. 열차의 덩치가 매우 작다는 게 느껴지시나요? 사람이 큰 건지, 기차가 작은 건지!
열차와 함께 셀카를!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열차의 거대한 덩치에 압도되는 기분인데, 지금 이 762mm 협궤 꼬마열차는 만만한 친구 같습니다.
운전실도 딱 있을 것만 간신히 갖춘 느낌입니다. 매우 비좁은 이 느낌! 역시나 정보를 띄워주는 디스플레이도 하나 없습니다.
혹시 고파스에 옛날 협궤 수인선을 타봤던 분이 계실까요? 기억을 더듬어 협궤 수인선 꼬마열차의 객실 분위기도 이런 느낌이었는지 기억을 나눔 받고 싶습니다. 농담 조금 보태서 키 큰 사람 둘이 마주 보고 앉으면 무릎과 무릎이 닿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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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호쿠세이선 협궤 열차는 봄이 막 찾아온 들판을 달립니다. 일본의 주력 협궤 1,067mm보다도 훨씬 좁은 762mm 궤간이라서 그런가 속도를 높게 내지 못 하는 것 같았고, 소음과 진동도 컸습니다.
그래도 나름 전동차라서 우리네 옛~~날 수인선 협궤 꼬마열차보다는 훨씬 쾌적하지 않을까 합니다. 냉난방 되고, 문 자동으로 열리고, 아무래도 전동차니까 주행 성능도 더 좋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재밌어서 사진을 하나 남겼습니다. 사진 속 흰색 모루 같은 물건은 '지상자'라고 하는 장치인데, 차량 하부를 향해 일정 주파수를 발생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 열차에서는 이 주파수를 수신하고, 지상자가 발신한 속도 코드보다 현재 속도가 더 빠르다면 열차는 자동으로 정지하게 됩니다.
보통은 이 지상자를 두 가닥 레일 사이, 즉 궤도 안쪽에 설치하는데, 여기는 레일 안쪽이 꼴랑 762mm라서 그런지 공간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지상자를 레일 바깥에 설치했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이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사진으로 남겨봤습니다.
단선 구간에서의 교행, 더 빨리 가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역설적인 진리죠. 맞은편 열차도 햇살을 닮은 노란색, 그리고 사진 어딘가에 숨어 있는 필자도 노란색 옷을 입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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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쿠와나역에서 호쿠세이선 열차로 30여 분을 달려서 드디어 오이즈미역에서 내렸습니다.
하차한 이곳은 미에현 이나베시(市)에 있는 작은 역인데, 잠시 후 제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알게 되실 겁니다, 후후후...
오이즈미역은 좁은 승강장 하나가 선로 사이로 덩그러니 놓인 작은 역이지만
ㄷㄷ... 종이 승차권은 취급하지 않고, 스이카/이코카/파스모 등 교통계 IC카드만 대응되는 최신형 개집표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아니, 이 작은 철도 노선이 JR도카이나 메이테츠, 킨테츠보다 훨씬 나은 것 같은데...?!
홋카이도에서 눈폭풍을 견디며 사진을 찍었던 것이 불과 한 달 전인데, 이제는 완연한 봄이라 봐도 될 것 같은 색감입니다.
봄의 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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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즈미역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어느 한 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이곳이 바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소인
창월초 군락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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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연한 말이지만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에서 언급되는 창월초라는 꽃은 아니고요, 네모필라라고 하는 꽃입니다. 네모필라를 철길 주변으로 심어 놓은 공간이 있어 매년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지상에 펼쳐진 바다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N년을 벼르다가 마침내 올 수 있었습니다.
넘실거리는 네모필라 위로는 선명한 노란색 꼬마열차가 지나갑니다. 일기예보를 있는 그대로 믿지 않고 시도한 날씨 가챠가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꽃만 확대해서 찍어봤습니다. 작중의 창월초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비주얼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작중의 창월초에 비해 현실의 네모필라는 꽃의 크기가 손가락 한 마디 사이즈는 될까 싶을 정도로 작았습니다.
이왕이면 꽃도, 배경도 전부 다 선명하게 찍고 싶었는데 허헣... 조리개를 무턱대고 조일 수도 없고, 틸트-시프트 렌즈 같은 특수 렌즈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워낙 낮게 피는 꽃이라 촬영 자세도 불안정하고 해서 전체적으로 선명하게 담기는 어려워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가까이 있는
네모필라에 초점을 두고
멀어지는 꼬마열차도 한 번 더
덩치 작은 꼬마열차라서 그런지 전차선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집전장치(팬터그래프)가 한껏 만세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간신히 철봉에 매달리는 어린 아이처럼요.
열차의 색이 하필 또 노란색이라서 더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지나가는 열차는 특별 도색인 모양입니다. 한 도색만 마주하다가 기습적으로 만나는 이런 변주는 촬영의 한 가지 즐거움입니다.
이번에는 카메라 말고 폰으로도 한 번 담아봤습니다. 그나마 열차와 꽃을 같이 담기엔 폰이 낫겠더라고요. 아무래도 카메라보단 센서 사이즈가 작으니 팬포커싱에는 더 유리하려나 싶어서 ㅋㅋ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2일차의, 아니 이번 여행 전체의 베스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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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용사 힘멜은 없었어도
타카기 양은 확실히 왔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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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나고야로 복귀하기 위해 오이즈미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이렇게 역무원 없는 역에서 사진을 찍어도 홋카이도에서처럼 추위에 떨 필요 없고, 눈 안 맞아서 얼마나 좋았는지 ㅋㅋㅋ
협궤 수인선 사이즈의 미니 열차여도, 수송량은 어마어마합니다. 시간이 늦은 저녁을 향해 가고 있어서 그런지 하교하는 학생들로 열차가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운전실의 기관사와 열차 정면 사이즈를 같이 비교해 보면, 이 열차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작은지 감이 약간은 더 올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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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니시쿠와나역, 이 특별 도색 차량은 꼭 60, 70년대 생각이 나게 하네요.
양쪽 선두칸 생김새가 다릅니다 ㅋㅋ
괜히 다음 열차까지 한 번 더 기다렸습니다. 아무래도 처음 만났던 노란차를 다시 만나야
마침 입고 있는 복장과
케미가 잘 맞을 것 같아서
얼굴은 차마 못 공개할 것 같네요 ㅠㅠ 대신 귀여운 타카기 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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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창월초를 보고 왔을 뿐인데 하루가 꼴딱 저물었습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군요~ 산기 철도 호쿠세이선에서 봤던 꼬마열차와 비교를 하고자 JR도카이의 전동차 사진을 몇 장 남겼습니다. 일본의 재래선 철도 차량은 우리나라의 철도 차량보다 절반 체급 정도 작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762mm 궤간 꼬마열차보다는 덩치가 훨씬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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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편 예고 >
『 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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