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이거할려고 W를 폐지했나?

나는 왜 퇴임을 5분 남기고 대자보를 쓰고 있는가?

제27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학생회의 임기가 오늘로 마지막이다. 학우들한테 단체 문자도 보냈다가 쏟아지는 답장 러쉬에 다시 답장하기도 바쁘고, 수요일날 게시할 퇴임 자보에 무슨 말을 쓸지 고민하고 있기도 머리 아픈데, 도대체 나는 왜! 대자보를 쓰고 있는 것인가? 아니, 오히려 대자보를 쓰게 만드는 현실을 슬퍼해야 하나, 아니면 욱 할 때 할말을 하지 않으면 다음날 소화불량에 걸리는 나의 성격 탓인건가? 그래도 나의 임기 마지막은 화려하게 대자보로 일갈하고 끝내야겠다.

슈퍼스타 K2가 끝난지도 어언 한달, 나의 금요일 밤은 무료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MBC는 최근 가을 프로그램 개편안을 발표했다. 시사교양국 PD들과 MBC 언론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김혜수의 W와 후플러스의 폐지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이번 가을 프로그램 개편으로 공영 방송인 MBC가 민영 방송인 SBS보다 오락 방송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금요일 밤에 볼게 없다. 어라, 근데 무언가 새로운 프로그램이 생겼다.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

김재철 사장님도 슈스케2가 재밌었나보다.

김재철 사장은 취임 당시부터 이명박 정권의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과 함께 MBC 언론 노조와 마찰을 빚어왔다. 특히나 이번 가을 프로그램 개편에 김재철 MBC 사장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재철 사장은 편성 회의에서 ‘우리는 왜 슈퍼스타K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냐’며 다그쳤다고 한다. 실제로 김혜수의 W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신인 가수 발굴 프로그램인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이 편성되었다. 그리고 ‘슈퍼스타K’를 따라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첫 회에 뚜껑을 열어봤을 때, OME를 외치기에 적절한 이 프로그램에 할 말을 잃었다. 차라리 예전에 종영되었던 쇼바이벌이 훨씬 더 사회적 의의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사장의 말 한 마디에 불도저식으로 급하게 프로그램을 베껴가며 편성하는 모습은 흡사 각하의 행태와 겹쳐 보인다.

우리가 잃은 것.

자본주의 시장에서 방송사가 온전히 공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오락․예능 일변도의 방송 편성은, 본래 방송이 지고 있는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방송 프로그램계는 생태계와 같다. 어느 한 종만이 비대해지고, 특정 종이 일방적으로 축소되다 보면 결국 생태계 전체가 무너진다. 이제 우리는 방송사의 주관적 시각으로 국제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시사 프로그램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더 이상의 다른 소중한 프로그램들을 잃기 전에, 이제 다시 생각해볼 때다.

우리는 우리의 포효로 세상을 뒤흔드는 학생회다.

침묵을 가르는 해방의 함성이라는 선배들이 만들어준 구호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부족하지만 많이 노력했다. 선배들의 의기를 잇기 위해 호성(虎聲)을 우리 학부의 접두사로 정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마지막을, 광고 수익에 극단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기형적 미디어산업계 현실에, 시청률 지상주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방송가의 실태에, 따라하기 프로그램 밖에 만들지 못하는 미디어종사자들의 한계에, 언론사주의 한 마디에 아직도 좌지우지되는 편집권에 개탄하며 마무리 짓는다.

침묵을 가르는 해방의 함성

제27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학생회장 곽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