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안 릴레이 자보 - (4)
학내 민주주의의 제도화

  대학은 변하고, 대학의 상 또한 변합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서, 1905년부터 2013년에 이르기까지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문구와 도상을 늘상 보면서도, 우리는 고려대가 매 시기마다 그 모습을 달리해 왔음을 압니다.

  비록 고려대가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라는 것이 자명하다고 하더라도, 그 변화의 성격에 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구성원인 우리의 삶은 그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10여 년간 고려대는 대내외적으로 두드러지는 변화를 보였습니다. 신축을 통한 캠퍼스 조경의 외형적 변화뿐만 아니라, 제도의 갱신, 조직의 개편, ‘민족의 대학’에서 ‘세계의 대학’을 구호로 하여 추동한 글로벌화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이룩한 외형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구성원 주체인 학생의 참여와 자율권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고려대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부실대학의 통폐합과 구조조정이 강조되었던 2000년대 초 이후, 대학의 운영은 그 실질적인 내부 구성원들의 요구가 아닌 외부적 기준에 맞추어 이루어졌습니다. 도처에서 글로벌한 환경에서 세계의 대학들과 경쟁할 상황이 묘사되었고, 저마다 세계대학평가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가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고려대 역시 2003년 어윤대 총장의 취임 이후 세계 100위권 진입을 목표로 설정하였으며, 이에 따라 평가 기준에 따른 학교 발전의 계획이 수립되고 시행되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대학의 ‘객관적 상(객관적이라 말해지는 상)’은 내부 구성원인 학생의 주체적인 욕구와 의사표현의 장을 억제하였습니다. 등록금, 교육권의 현안들, 생활권을 비롯해 정당하게 제기되어야 할 문제들이 평가 기준에 근거한 전문가 담론에 의해 반박 또는 묵살되어 온 현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현안들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현안들에 대한 개입과 조정을 할 권한 자체가 학생 구성원에게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 문제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조정할 기구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대학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배제된 학생이 자신의 몫을 찾아야 합니다. 고려대 생협준비모임 마중물은 학생이 주체로서 자율적인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게끔 제도적 요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보며, 다음 총학생회에 아래와 같이 제안합니다.

  첫째, 학내 민주주의의 제도적 현실화를 위해서, 학생·교원·직원 세 주체가 함께 구성하는 대학평의회를 발족하고, 그 권한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대학평의회의 역할이 학교 정책에 대한 감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점입니다. 새롭게 구성될 대학평의회는 심의기구일 뿐만 아니라 의결기구여야 합니다. 등록금을 포함한 제반 문제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실질적이고 항시적으로 학생의 의사가 영향력 있게 반영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합니다. 심의 및 의결 기구로서 대학평의회의 권한과 자율성을 확보할 때에야, 등록금을 어떻게 다루느냐, 신축 건물의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학생식당을 늘릴 것이냐 등등의 다양한 문제에 관해 학생을 포함한 대학 구성원이 함께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의사결정하는 장으로서 대학평의회는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 대학평의회에 이은 논리적 귀결로서, 총장 선출을 직선제로 전환하고, 학생을 포함한 학내 구성원에게 그 선거권을 균등하게 보장해야 합니다. 이들 조건을 오롯이 정책적 목표로 삼고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때의 학내 민주주의란 반쪽짜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 대학 구성원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생활주권을 실현하게끔 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조합원에 의한 운영의 자율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유휴 공간의 활용, 먹거리, 일상 소비품목을 포함한 생활환경 전반에 대한 결정에 있어 학생이 주체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고려대에서 학생은 피동적인 역할을 강제 받고 있습니다. 점심 때마다 학생식당 줄이 길게 이어져 불편을 겪더라도 받아들이며, 셔틀버스를 운영해야 타고 운영하지 않으면 타지 못하며, 신축 건물에 들어서는 프랜차이즈 커피의 가격을 당연히 감내합니다. 채식을 하는 학생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창구 자체가 없습니다. 학생 스스로 조합원이 되어 운영하고 이용하는 생활협동조합이 생긴다면 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판매 이윤이 다시 조합과 조합원에게 환원되는 생활협동조합의 구조는 선순환을 이룰 것이며 그 운영에 있어서 학생 조합원을 소외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경희대, 서울대, 이대를 비롯한 모범적인 사례가 있으며, 30여 개의 대학 생협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셋째, 과반·단과대·중앙동아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학회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최근 대학평가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 제기가 활발히 이어지고 반대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글로벌화, 연구실적, 사회적 평판, 재정건전성이라는 기준에 따라 대학을 평가하게 될 때, 학내 민주주의, 의사소통, 로컬리티, 노동건전성, 건강과 환경, 생태, 공공성 등의 문제는 배제되고 맙니다. 그러나 대학평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것에 대한 부정에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학과 사회의 상에 관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전문가 담론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 대학과 사회의 상을 고민하고 그 나아갈 방향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학회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의 책자 발간, 정기적 세미나 및 강연 운영은 그러한 논의의 장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 부족할뿐더러 불균등하게 배치된 게시판과 가판대를 충분한 수로 확보하고, 적절한 장소에 세워야 합니다. 또한 그것들이 의사소통의 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게끔 자율적인 운영 규약을 확립해야 합니다.

  이른바 ‘Global KU’로의 전환 이후 10년, 지금까지의 공과를 규명하고 고려대가 나아갈 방향을 다시금 모색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선출을 통한 학생의 대표인 새로운 총학생회가 감당해야 할 몫일 것입니다.

- 학생·교원·직원 세 주체가 함께 구성하는 심의·의결 기구로서 대학평의회를 설립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라.
- 직선제 전환을 통해 총장선출. 학생을 포함한 학내 주체들에게 투표권을 균등하게.
- 대학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주권을 실현하게끔 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조합원에 의한 운영의    자율권을 보장하라.
- 취업학원화된 상아탑! 과반·단과대·중앙동아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학회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지원하라.
- 충분한 수의 게시판과 가판대를 적절한 장소에 세우고, 규약에 따른 운영을 확립하자.

고려대 생협준비모임 마중물
/자치단위연석회의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7 19:4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