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1일 오후 2시46분경 일본열도의 동북부 지방 먼 바다에서 매그니튜드 9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는 관측사상 일본 최대의 지진, 세계 관측사상으로는 다섯 번째 큰 지진이라 한다. 화면상의 참상은 상상을 절하는 것이었다.

“미증유의 대재앙 앞에 일본의 일반 시민들은 정연한 줄 서기와 순번 지키기를 준수하고 있으며, 주유소와 슈퍼마켓의 긴 줄에는 새치기가 없다. ...생사의 다툼 앞에서 그 같은 집단적 질서 의식은 경이롭다. 세계는 문화 충격을 받고 있다.”(중앙일보 칼럼 ‘일본은 있다.’ ‘오늘, 나는 일본인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재난에 대한 대응 자세와 정연한 질서의식을 두고 한국의 정치권과 매스컴은 연일 찬양 일색의 논조를 편다.

이러한 일본의 피해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간바레 닛폰(힘내세요 일본)’ 운동이 대표하는 것처럼 측은지심과 인지상정의 분위기 속에 동정과 슬픔을 표시하면서 거국적인 일본 돕기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그 현상은 한류스타들의 거액의 릴레이 기부로 이어졌고, 유명 스포츠 스타들도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무조건적인 일본 칭찬과는 달리 진짜 일본인들이 훌륭한가? 무조건적 칭찬에는 어떤 의도가 깃든 것은 아닌가하는 의견도 표출되고 있다. 이 입장에 서는 사람들은 절호의 호재를 찾았다. 최근의 뉴스에 의하면 원전의 폭발과 방사능의 오염이 우려되는 후쿠시마의 어느 병원에서 병원장과 소수의 직원을 제외한 의료진 및 스텝 대부분이 환자를 버리고 도망가 338명의 환자만이 남았다고 한다.

이상의 일본인들의 집단적 질서의식에 대한 엇갈린 반응은 모두 현상에 대한 파편적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몇 년 전의 수업 중에 재난영화로 유명한 ‘일본침몰’이라는 영화를 읽고 난 독후감을 제출하라고 한 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는 학생들의 반응의 대부분은 “속이 후련하다. 정말 그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180도 다른 현재의 반응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는 역시 이번 재난이 동아시아 속의 재난임을 인식한 탓일 게다. 이제 이 재난은 영화 속의 사실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참상이며, 또 그 피해가 한국 자신의 문제일 수 있다는 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일본은 ‘매뉴얼대국’이다. 그리고 ‘유니폼대국’이다. 매뉴얼과 유니폼은 법이고 규약이며 제약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의 법의식을 살펴보는 것에 의해 재난 앞에 일본인들의 감정과 슬픔의 표현이 억제되고 조절되는 연유를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 법다운 법은 고대의 ‘율령’이다. 율령은 전부 중국과 한반도를 거쳐 수입된 수입법이다. 율령은 당시의 일본에 맞지 않는 큰 옷과도 같았다. 하지만 고대일본은 옷에다 몸을 맞췄다. 그 이후 점차 일본식으로 율령을 개조해 가면서 지금의 매뉴얼과 유니폼의 원조가 되는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매뉴얼과 유니폼에 얽매다 보면 급박한 일이나 현장에서 다단계 보고체계를 거치는 동안 위험은 해결보다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게다가 그 매뉴얼이 잘못되었거나 용량을 초과하였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전달되어 버릴 것이다.

일본에서 10년 유학생활하면서 애 둘을 키웠다. 1923년의 관동대지진을 기억하는 방재의 날(매년 9월1일)에 방재훈련을 할 때면 천하 없는 일이 있어도 부모들이 애들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 매뉴얼에 따르면 지진 발생 시 부모들이 20~30분 내에 도착해야 한다. 운동장에서는 소학교 교장 선생님이 방재수건을 둘러쓴 아동들을 앞에 두고 연설을 하고 있었다. 만약에 20분 내에 부모님들이 도착하지 않는다 해도 나와 여기 선생님들이 여러분을 끝까지 지켜준다고. 하지만 이번 대지진에서 그 매뉴얼은 있으나마나였다. 일본은 원전을 둘러싼 일처리에서도 종래의 매뉴얼대로 움직이다 큰 사단을 맞고 있다. 우리는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는 현장에서의 리더의 판단과 대처가 결국 승부를 가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일본에 기대하는 바는 매뉴얼의 전면적 개량과 더불어 현장에서의 탁월한 판단을 내릴 리더의 양성이어야 하겠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일본 칭찬과 비판 사이에 그 연유까지 생각해 보는 현명함과 차분함이 더해져야겠다. 마지막으로 일본은 이 재난을 잘 이겨내고 동아시아 속의 아니 세계 여러 나라의 인류애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성숙한 일본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로 삼을 것을 일본을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성심으로 바란다.

본교 일본연구센터 HK교수 송완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9 23: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