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대학원 신문 “고전읽기”>

이제 모두가 블랙리스트이다.
- 에마뉘엘 피에라 외, 권지현 옮김, 『검열에 관한 검은책』, 알마, 2012.

허 민 (문화연구자)
  
블랙리스트는 흔히 ‘요주의자’나 ‘감시 대상자’들을 작성한 명단을 의미한다. 물론 감시 대상자는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인물이나 단체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기에 문제는 그 간주되는 기준의 자의성 및 고의성에 있다. 주로 문화예술계에 대한 감시는 창작자의 창작물에 대한 판단에 입각하여 수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시 말해 불온하다고 판정된 작품의 생산자가 탄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창작물에 대한 검열을 거치지 않고, 작성되었다는 특이점이 있다. 작성 원리는 간단했다.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한 서명자들이나 시국선언을 한 문인들, 야권 정치인 지지자 명단이 고스란히 블랙리스트가 된 것이다. 정부는 인사와 예산, 법제도를 무기로 삼았다. 블랙리스트에 반하는 담당자들을 해고했고, 관련된 곳의 인사에도 개입했으며, 부처 산하단체의 독립 기금 지원까지 통제하려 했다. 블랙리스트의 위협은 실제 작동의 세기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식으로 명단을 작성하고 제재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에 이미 내재해 있는 것이다. 창작물 이전에, 자유로운 개인의 마음을 통제하겠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 것을 넘어 인권 유린에 가까운 폭력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파문은 우리가 항구적인 감시의 시선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검열에 관한 검은책』은 그 구체적 실상을 보여준다. 이 책은 프랑스와 벨기에 출신의 변호사, 기자, 정치학자, 출판인 등이 저술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비교적) 보장되었다고 알려진 프랑스 사회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대표 저자인 에마뉘엘 피에라는 검열이란 것의 개념을 국가 권력의 통제를 넘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조치”(9쪽)로 포괄하고 있다. 검열의 주체와 방식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판단 때문이다. 과거 검열의 분야가 국가 권력이나, 종교, 미풍양속 등과 연관되었다면, 이제는 기업과 시장, 소수자와 청소년, 인터넷, 건강 등의 영역으로 이전/확장되었다고 한다. ‘검열의 민영화’라 칭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검열의 영역 자체가 국가와 사회, 권력과 민간, 혹은 공/사 구분의 착종과 교착이 반복되는 역동적인 장소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형법상 존재하는 ‘명예훼손죄’는 어디까지 양립할 수 있는가? 실증법 안으로 들어온 ‘사생활’을 비롯하여 초상권, 인격권,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검열의 기제로써 작동하고 있는가? 대중의 ‘알권리’와 사회비평, 미학의 기준이 시청률이나 수익성 지수로 대체되는 사태는 어떤 방식으로 지지되는가? 국경 없는 인터넷과 각국의 국내법은 어떻게 대치하고 있는가? 등의 물음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현실과 유비되는 내용도 많다. 가령 자기검열의 문제가 있다.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집권 후, 민간인 불법 사찰이나 인터넷 여론 조작, 신상공개처분 등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치적 발언이 위축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사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ㄹ혜’로 표기하는 관행(?)이나 보수진영을 비판하는 ‘세로드립’의 존재가 이를 예시한다. 역사적으로 자기검열은 실질적인 제재 앞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더욱이 일반검열이 ‘판결이든 법이든 유혈이든 흔적을 남기는데 반해 자기검열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에 위험하다.’(88쪽) 또한 청소년 문제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흔히 ‘청소년 보호’라는 구실은 텔레비전, 영화, 비디오게임의 음란성과 폭력성을 고발하지만, 이는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사회적 변수들(실업, 가난, 계급의 폭력성, 퇴학, 차별, 복지국가의 위기)의 역할을 가려버리는 것이다.”(240쪽) 최근 ‘18세 선거권’ 도입이 국회에서 합의가 되지 못한 사태 역시 청소년의 권리에 대한 국가적 제재이며, 정치적 계산이 검열의 조건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검열은 도처에 존재한다. 검열은 물리적인 위협이나 제도의 강제로, 혹은 시장의 법칙이나 개인의 내규로써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편히 작성된 블랙리스트를 보유한 정권 하의 한국이 새삼 더 비참한 것 같다. 하지만 시민의 손으로 폭력적인 정권을 탄핵국면까지 끌고 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탄핵 인용 여부를 떠나 ‘불온한 권력’에 대한 감시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모두가 블랙리스트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6 15: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