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 반재영 기자

                                                                   동원된 탈북민들

  프랑스 문학 연구자인 제프 베닝턴은 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어느 나라의 중심부로(이를테면, 날아서) 곧바로 들어가려 해보라. 건너야 할 국경은 여전히 그곳에 있으며 변경이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옮겨 와 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한국에 살고 있지만 사실상 경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탈북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무산일기》를 본 독자라면, 경계인의 삶이 무엇인지 보다 피부에 와 닿게 느낄 것이다. 탈북민에게도 여타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부여되는 주민등록번호가 주어진다. 다만 그것에는 탈북민임을 식별할 수 있는 일련번호가 포함되는 한에서이다. 주민등록번호만을 확인하고도 ‘정체’를 알아볼 수 있으니, 고용시장에서 그들은 소외된다. ‘이곳’ 아니면 ‘저곳’의 국민이기를 요구하는 세계 속에서 난민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당장의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일이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무산자와 난민의 형상이 겹쳐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저 영화의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단지 생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더 이상 경계를 살아가고 싶지 않다면 남한 체제에 대한 자신의 충성을 입증해야 한다. 탈북민을 정치적으로 동원해왔던 역사는 그 전통이 깊다. 한반도에서 분단체제가 성립되던 시기, 악명 높던 ‘정치깡패’ 서북청년단의 대다수는 월남한 평안도 출신의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주 출신으로서 북한 체제에 의해 기득권을 위협받았던 그들의 자발성 역시도 한 동력으로 작용했을 터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에게는 주홍글씨와 같은 자신들의 출신 배경을 넘어 남한의 ‘국민’으로 인정받아야만 했던 사정도 있었다. 즉 자신들이 누구보다도 ‘극우 반공’이라는 것을 적극 입증하기를 강요받았던 맥락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도 대다수의 탈북민들은 북한에 비해 남한의 체제가 얼마나 우월한지를 증언하고 확인하는 과업에 적극 동원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한을 유토피아로 여기기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이다. 북한을 ‘종(從)’ 하려면 그들 체제 어딘가에 매력적인 구석이 있어야 할 텐데, 영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을 터이다. 작년 세월호 추모 반대집회에서도 탈북민들이 동원되어 한 차례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매주 촛불이 켜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저 반대편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중에는 여전히 동원된 탈북민들이 서 있다.
당장 ‘이곳’ 아니면 ‘저곳’의 국민이기를 요구하는 세계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이항대립의 역사적 유산으로부터 자양분을 얻는 정치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지금이 대립과 갈등의 논리에 기생하는 정치 질서와 결별할 수 있는 변곡점이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14: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