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은 표절입니까? - 이장욱,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릿터』 2호.

            
                                                                                                              한영인 문학평론가

  남의 글을 가져와 제 것인 양 발표하는 걸 흔히 표절이라 부른다. 표절을 뜻하는 영어 단어 ‘Plagiarism’은 라틴어 ‘Plagiarius’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래 납치범이나 유괴범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많은 어휘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래의 어원과 그 뜻이 멀어지거나 심지어 반대로 변하게 되는 것과 달리 표절은 그 어원이 지닌 함의를 아직까지 상당부분 그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창작은 산고에 맞먹는 노력의 결과이며 창작물은 정확히 그 산출자에게 귀속될 수 있는 성격의 것으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아이를 부모로부터 훔치는 것이 범죄이듯 귀속자가 확실한 창작물을 도용하는 것 역시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을 특별히 부당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표절 문제에 접근하는 충분한 방식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타인의 말과 글, 삶과 행위가 브리콜라쥬처럼 얽혀드는 문학에서 이 문제는 ‘단죄의 프레임’으로 미처 다 풀지 못할 어떤 초과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신경숙 사태 때 장정일이 “‘작가는 한 문장, 한 단어, 모두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것만 쓸 수 있다’라고 을러”대는 “낭만주의의 신화”를 정면으로 공격한 것은 당시 국면에서는 돌출적이고 어딘가 모르게 김이 새는 발언이었을지 몰라도 실은 글쓰기와 관련해 매우 발본적인 고민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신경숙에 대한 들끓는 여론은 한풀 꺾인 지 오래지만 이 문제는 글을 쓰고 읽는 우리를 여전히 괴롭히지 않는가. 이장욱의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은 이와 관련한 아포리아를 우리에게 던져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내가 쓴 시에 대해 아직 이렇다 할 평을 받아본 적도 없고 출판사에 투고한 시집 원고는 예외 없이 반려되는” 무명 시인이다. 그런 그가 인터넷 검색창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자신의 시를 옮겨 적은 한 여성의 블로그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시인의 시를 옮겨 적은 후 짧지만 아름다운 감상을 달아 놓았고 시인은 “나의 시보다 오히력 매력적”인 그녀의 글에 감동한다. 시인은 이내 그녀의 블로그를 탐독하기 시작하고 그녀를 자신과 매우 닮은, 비슷한 영혼을 지닌 또 하나의 존재로 여기기에 이른다. 그런데 점점 일이 이상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그녀가 올린 자신의 시와 원래 자신이 쓴 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음을 눈치 채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조사 몇 개만 바뀌던 것이 점차 동사와 어휘, 제목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아예 발표한 적 없는 자신의 시가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그렇지만 그 시는 시인조차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전 습작인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그의 시적 아우라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커다란 혼란을 느낀 시인은 그 시를 아는 평론가에게 보여주었고 평론가는 <딱 봐도 당신 시네. 당신 시를 왜 누구 시냐고 묻는 건데? 시 잘 써진다고 자랑하는 건가?>라고 되묻는다. 그리고 덧붙인다. <이 시, 좋다. 지금까지 발표한 당신 시들보다 훨씬 나음.>.
  시인은 그녀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자신의 시 – 왜냐면 자신의 이름으로 소개된 시이므로 –를 한글 파일에 저장했고 그 가운데 두 편을 저명한 문예지에 실어 큰 고평을 받게 된다. 갑자기 청탁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는 수시로 그녀의 블로그에 들러 그곳에 올라온 자신의 시를 문예지에 발표한다. 하지만 점점 그녀의 블로그에 자신의 시가 업로드 되는 일이 뜸해지고 마침내 그녀는 블로그를 닫아버리고 만다. 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그저 다시 시를 쓸 수 있을지 참담하게 회의를 거듭할 뿐이다.
  이런 것은 과연 표절일까? 표절이라면 누가 누구의 무엇을 표절한 것일까? 여자가 시인의 아우라를 간직한 채 시인의 시를 ‘개조’(改造)한 것은 표절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 시의 주인에 자신의 이름을 놓지 않고 시인의 이름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때 그 시인이 그 시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 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아니, 어느 작품의 주인을 정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혹은 여자가 쓴 자신의 시를 문예지에 발표한 시인은 여자의 시를 표절한 것인가? 자신이 쓰지 않은 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것은 ‘표절’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표절한 것일까? 그녀의 시를? 그러나 그녀의 시는 온전한 그녀의 창작물인가? 애초부터 그녀의 시는 시인의 시에 빚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 상호침투하는 악무환의 연쇄를 ‘단죄의 프레임’으로 끊어낼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이처럼 만수산 칡넝쿨처럼 얽혔으니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냐는 뜻이 아니다. 타자의 글에 대한 매혹으로부터 촉발되는 글쓰기의 피치 못할 운명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6 22:4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