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터뷰]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은 불순분자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은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가족을 잃은 슬픔을 돌아볼 틈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길 위에 서서 “진상 규명”을 외치고 있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족들의 고통스러운 절규를 뒤로 한 채,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을 국민적 피로감을 유발하는 존재로 규정하기 위한 ‘몰아가기’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본지는 다양한 저작과 지면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를 만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의 사태를 예견이라도 하듯, 그는 작년에 출간된 저서 <전쟁정치>를 통해 국가권력이 그 정치적 의도에 따라 내부의 적을 만들어내는 매커니즘을 설명한 바 있다.


유가족의 고립을 유도하는 정부

<전쟁정치>는 방대한 양의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이른바 ‘불순분자’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조작되는 과정과 그 피해자들의 짓밟힌 삶을 조명한 책이다. 현재 세월호 유가족들을 대하는 정부와 보수 언론의 태도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저지른 과오의 또 다른 반복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물었다. “재난의 피해자들을 대하는 정치적 프레임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단 해명되지 않은 의혹들이 규명되기를 요구하는 시민 사회와 유가족들의 입장과는 달리,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일종의 ‘교통사고’로 규정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고의 원인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고, 유병언 일가의 체포에 초점을 맞추는 언론의 행태도 이러한 시각에 기인한 결과이죠. 또한 이 ‘사고’의 직접적 피해자인 유가족에게 경제적 보상을 하는 것으로 사건을 조속히 마무리하려는 정부의 태도 뒤에는 유가족과 시민사회를 분열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시민사회를 제3자로 규정한 뒤, 이들이 유가족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식의 음모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어려운 경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유가족들은 그 저의를 의심받게 됩니다. 과거에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하는 등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기피 대상인 동시에 여론의 동정을 받는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유가족들은 언론에 의해 피로감을 유발시키는 사람들로 규정되어 여러 오해 속에서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관한 논의 과정이 여야 간의 정쟁(廷爭)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다. 이에 대한 김 교수의 생각을 물었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는 유가족만이 아닙니다. 이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모든 국민 또한 피해자입니다. 풀리지 않은 의혹들에 대한 진상 규명이 철저히 이루어져야만 이러한 참사의 재발이 방지될 수 있고, 또한 대책 마련이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의 제정은 일반적 형사 법리에 어긋난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이 가진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볼 때, 가장 먼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철저한 수사에 의한 진상 규명입니다. 여전히 많은 의혹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무력감은 파시즘의 전 단계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치에 대한 환멸감과 무력감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감정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물었다. “87년 민주화가 이뤄낸 것은 절반의 민주주의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는 선거 제도가 있지만, 지난 대선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제도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굴절이 일어날 수 있지요. 여전히 국정원이라는 기관과 국가보안법이 건재하고,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언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사회가 양극화되고, 사회적 약자들은 어떻게 해도 자신의 삶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리게 되며, 이는 곧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에 위협이 됩니다. 투표 참여율이 저조해질수록 보수 세력과 기득권에 유리한 결과가 도출되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그들이 원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정치에 대한 환멸과 무관심, 국민들의 무력감은 초기 파시즘의 징후입니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처한 이러한 문제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소통”을 꼽았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따라 스스로 경쟁을 내면화한 세대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실패에 대한 책임을 사회 구조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묻는 세대인 것이죠. 또한 이 세대는 지난 세대와 비교하여 볼 때 집단적 사회 운동에 참여하여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를 바로잡아 본 경험이 없습니다. 결국 지금 청년 세대는 철저히 개인으로 고립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내면화된 패배의식과 정치적 무관심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청년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합니다. 집단적인 만남 속에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광장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러한 소통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바로 기성세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원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지금 국내 학계에는 자생적으로 학문을 발전시킬 수 있는 중심이 부재합니다. 영어사용자가 가진 언어의 권위에 따라 이론을 수입하고 이를 처방하는 ‘정신적 노예 상태’에 가까운 것이지요.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우리의 눈으로 직접 해석하고 그에 따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적 힘이 절실합니다. 무엇보다 국내 학계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학내뿐만 아니라 학 외에 있는 다른 연구자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자 하는 자구적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23:2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