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에 대하여



지난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일정 내내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누군가가 교황에게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리본을 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자 그는 “고통 받는 인간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발언했다. 교황에게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한 사람은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나,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들의 태도를 ‘중립’을 벗어난 ‘정치적 행위’로 해석한 듯싶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이용하지 말 것’과 ‘유족들의 양보’를 주장한 염수정 추기경의 발언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세월호 사건의 철저한 진상 규명 촉구가 유족들의 과한 요구이며, 진상 규명 외의 다른 불순한 목적이 있다는 시각이다.

그들이 말하는 ‘중립’은 무엇인가. 역사학자이자 반전운동가인 하워드 진은 그의 저서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중립’이라는 말을 ‘이미 치명적인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태를 그 방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의 말을 최근 세월호 진상 규명 운동과, 그 운동을 읽어내는 프레임에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 정부는 유병언 일가의 부패와 선원들의 부도덕성, 해경의 문제를 부각시키며 사건의 진상을 축소하려 했다. 종편을 비롯한 메스미디어는 이러한 프레임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세월호 사태의 본질, 가려진 사실들을 알고자 하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불순한 정치’로 바라보게 했다. 그들이 말하는 ‘중립’이란 정부의 발표와 메스미디어를 통해 전달된 관점으로 이미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말하자면 그들은 ‘그들의 중립’을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단지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그곳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묻고 있을 뿐이다. 국가에 대한 시민의 정당한 요구가 그토록 ‘정치적’이고 ‘과도’한가? 정부가 그토록 떳떳하다면 왜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느냐고 피해자들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뜻대로 공정한 조사를 행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싹틀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공정함’을 바라는 시민들을 불순한 세력으로 바라보는 정부는 얼마나 부패한 것인가.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은 수사로 진상 규명을 피하려는 태도가 그들이 말하는 중립인가?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방식과 태도를 그대로 따르고 입 다물고 복종하는 것이 그들의 중립인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은 국가의 명령에 불복종할 권리가 있다. 타락한 ‘중립’을 운운하기 전에 우선 공정하게 수사하라.


최은영 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5:4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