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사회의 논쟁들(4)


1960년대 이후 동아시아는 어떻게 경제기적을 이루어 낼 수 있었을까?

:시장기제? 유교 문화? 발전국가? 세계체계?



시장중심적 접근: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시장기제가 자유롭게 작동해서 이루어진 것
문화중심적 접근: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유교문화의 특성으로 인해 가능했던 것
국가중심적 접근: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발전국가의 주도를 통해 이루어진 것
세계체계적 접근: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은 세계체계에서의 기회구조를 통해 이루어진 것




동아시아의 경제기적

1960년대 이후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이 보여준 급격한 경제성장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경제성장율은 1960년부터 1985년까지 연평균 9%에 달했고, 이는 세계 다른 지역 성장율의 2~3배에 육박하는 경이로운 수치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들 국가들은 2차 대전 이후만 하더라도 그 누구도 고속성장을 예측할 수 없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놀라움은 더했다. 그렇다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어떻게 경제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 비록 한국 학자들이 아닌 외국학자들이 주도한 논쟁이었지만 한국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를 둘러싼 다양한 학자들 간의 논쟁을 살펴본다. 이 논쟁은 한국학자들에게 수입이 되어 현재까지도 간헐적으로 이 주제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시장중심적 접근

많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동아시아의 경제기적이 시장기제가 잘 작동해서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학자인 벨라 발라사는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이 수출주도형 산업화를 통해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사례를 거론하며 그는 라틴 아메리카가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한 국가 개입으로 실패했다고 이야기하고, 이에 반해 동아시아는 국가의 개입이 적고 시장기제에 충실한 수출주도형 산업화를 사용해서 성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동아시아 국가들은 시장기제를 왜곡시키지 않고, 시장기제가 자유롭게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문화중심적 접근

1995년에 ‘동아시아와 세계경제’(East Asia and World Economy)라는 책을 통해 동아시아의 성장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을 정리한 앨빈 소와 스테판 치우에 따르면 문화중심적 접근은 동아시아 국가들 경제성공의 공통된 특징으로 이들 나라에 독특한 경제 문화 즉 경제성장에 필요한 태도와 제도를 뒷받침하는 문화적 가치를 중시한다. 유석춘 교수의 ‘유교 자본주의’ 개념이 대표적인데, 유 교수는 경제발전을 위한 국가정책의 기획과 집행, 그리고 이를 위한 자원동원과 감시에 있어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유교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후발산업국에 비해 더 강력하고도 능력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한다.

소와 치우에 따르면 유교문화를 강조하는 이들은 국가의 우위성과 학습과 교육에 대한 강조, 가족기업 문화가 유교문화에서 나타난 것으로 주장한다. 전통적인 유교문화는 무엇보다도 가족과 국가를 중시하고,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족중심의 기업문화는 시장의 불확실성과 기업규모의 열세를 상쇄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문화론자들은 주장한다.  


국가중심적 접근

국가중심적 접근은 시장중심적 접근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이들은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설명하는데 있어 시장을 중심변수로 두고 논지를 전개하기 보다는 국가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찰머스 존슨, 앨리스 암스덴, 로버트 웨이드와 같은 학자들은 일본과 한국, 대만의 국가를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라 개념화하며 동아시아의 성장에 있어 국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한다. 윤상우 교수에 따르면 발전국가론자들은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이론적 명제들을 제시했다.

첫째, 동아시아 국가들은 소비 및 분배와 구분되는 성장, 생산성, 경쟁력의 측면들, 즉 경제발전에 정책의 최우선권을 두었다. 둘째,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국가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였고, 자원의 전략적 할당과 다양한 정책도구를 통해 민간부문을 지도하고 규율하며 조정하였다. 셋째, 국가의 전략적 개입과 그 성공은 정치적,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자율적인 유능한 관료들에 의해 보증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시장기제나 문화적 특수성이 이들 국가의 경제성장에 일정한 기여를 했을 수도 있지만, 경제성장을 선도하고 필요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강력한 발전국가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허위관계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세계체계론

세계체계를 강조하는 이들은 동아시아의 성장을 앞선 논자들과는 다르게 설명한다. 경제성장을 가능케한 요인들은 동아시아 국가들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선진국과의 관계, 세계체계의 기회구조 등 외적 요인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지오반니 아리기나 브루스 커밍스와 같은 학자들에 따르면 우선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성장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정치적 헤게모니와 연결되어 있다. 미국은 이들 국가들을 반공의 전초기지로 삼았고, 경제원조와 차관공여를 통해 이들의 생존을 도왔다. 또한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자국시장을 적극 개방하여 이들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세계체계를 강조하는 이들은 또한 1960년대 이후 일본과의 신국제분업구조 형성에 주목한다. 2차 대전을 전후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반주변부로 올라선 일본은 1960~70년대에 이르러 노동비용상승과 공해로 인해 기존의 산업을 주변국들로 재배치한다. 일종의 ‘제품주기’에 입각해 일본이 사양산업부문을 버리고 첨단산업분야로의 전환을 모색하면서 한국, 대만과의 국제분업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기술과 생산설비의 이전으로 한국과 대만은 주력산업부문을 육성할 수 있었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이 세계체계를 강조하는 이들의 논점이다.



네 입장에 대한 평가

동아시아의 경제기적을 설명하려는 위의 네 가지 시도는 각기 분명한 강조점과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또한 가지고 있다. 우선 시장중심적 접근의 경우 이들은 한국이나 대만에서 실행되었던 광범위한 산업정책, 정책금융의 존재에 무심하다. 또한 이병천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의 성장은 단순히 수출주도형으로만 달성된 것이 아니고 수출지향성과 수입대체가 혼합된 ‘복선형 산업화 모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또한 유교의 유산을 강조하는 문화중심적 접근 역시도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과거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것으로 주로 인식되었던 유교적 특성이 왜 2차 대전 이후에는 갑자기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것으로 전이되었는지를 설명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시장기제와 유교문화가 경제성장에 부분적인 기여를 한 것이지만, 동아시아의 경제기적은 세계체계와 발전국가라는 두 요인의 결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윤상우 교수에 따르면 경제성장에 정당성과 존립근거를 두고 국가의 모든 자원과 정책수단을 이에 집중시킨 발전국가는 동아시아 경제성장에 필수조건이었다. 또한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의 불리한 경제적 조건들을 충족시켜준 미국의 원조와 차관공여, 그리고 일본과의 신국제분업구조의 형성과 같은 세계체계적 기회구조의 그 다음의 충분조건을 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1:4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