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발언대]

힘겨워하는 원우들을 위하여




많은 대학원생들이 알게 모르게 힘겨워하고 있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말이 유행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공부 자체의 쉽고 어려움을 떠나서 우리들이 하는 공부는 많은 고민과 불안들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공부가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표면적으로는 (사회구조적인 이유로 취업을 못해서 다른 대안이 없어서 일수도 있지만) 자유의지로 공부하는 것을 선택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하기에 망망대해에 홀로 서있다고 느끼는 이들도 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면 그 고통과 불안은 몇 배 더 힘들지도 모른다. 일단 그 힘든 길을 가겠다고 자처한 용감한 원우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그리고 취업하는 것이 일종의 정석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어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위 말하는 그 쉬운 길을 두고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물론 간절히 교수가 되고 싶어서 그런 목적을 위해 혹은 좋은 직장을 얻으려면 학위가 필요해서 공부를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 이론은 이견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구가 여러 층으로 되어 있고 단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해주고 있다. 사람은 의식주, 수면 같은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면 그 다음에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그리고 소속감, 권력에 대한 욕구 그리고 가장 상위단계로 가면 자아실현의 욕구를 위해 움직인다. 어떤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을 당시에는 한때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욕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충족된 후에는 아예 기억에서 잊혀지기도 하고 잊지는 않더라도 이미 이룬 하위요인들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는게 우리들의 심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로운 욕구가 생겨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힘들 때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때보단 지금이 나으니까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나보다. 욕구가 단계적이고 층을 이룬다는 매슬로우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순서가 바뀔 수도 있고 단계를 건너뛸 수도 있으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고 그 상태에서 만족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의 설명력은 있어 보인다. 문제는 상위욕구로 갈수록 그 특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는 점이다. 가시성은 의외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대학원공부는 종종 직장인들의 ‘자아실현’을 말할 때 언급되곤 하는데 이 자아실현을 추구한다는 것이 하위단계가 견고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강한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가 있다. 실체가 없는 불안일 가능성이 높지만 당사자는 그것을 아주 크게 느끼게 된다.

올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경쟁과 빠른 속도에 익숙한 많은 한국인들은 조급증을 한번쯤 느낄 시기이다. ‘올해도 벌써 반이나 지났네’라는 멘트를 한번 내뱉으면서 인생무상을 논한다. 그리고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시간도 여러 가지 사회조건에 구속되어 살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야 하기에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삶의 제약은 예산제약, 시간제약으로 현실화 된다. 누구나 주어진 것들에 어느 정도는 순응하면서 어느 정도는 발버둥치면서 살아간다. 돌이켜보면, 옆 사람이 내색을 안했을 뿐 절대 나만 힘든 것은 아니었다. 인생의 절반밖에 아직 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하고 배운 바로는 ‘왜 나만?’ 이라는 상황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가려고 하는 이 길을 어떤 속도로 걸어가는지에 대한 문제는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니 좌절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혹시 지금 힘겨워하는 원우가 있다면 단 한명에게라도 이 짧은 글이 아주 작은 힘이나마 되길 바란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2: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