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정권안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안전을 위해 존재한다


국가안보는 정권안보나 군사안보로 축소되어서는 안 돼
지난 정부를 부정하는 것으로는 국민안전보장의 체계적 지속성 확보할 수 없어

사건현장에서 신속한 대처를 이끌어내지 못한 대통령
진실보다 여론 관리에 중점을 두는 정부


지난 4월 16일 대한민국에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 발생했다. 5월 27일까지 해경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사건의 생존자는 172명, 사망자는 288명, 실종자는 16명이다. 아직도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팽목항에서 실종자의 가족들은 밤마다 검은 바다를 향해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고 한다. 5월 24일 청계광장에서는 ‘세월호 국민대책회의’가 주관한 ‘세월호 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 집회가 열렸다. 이곳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유가족과 함께 아직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학생 및 선생님들의 이름을 불렀다. 불의의 사건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고에 대한 대응은 빠르고 적절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사건 이후 현 정권의 대처에 실망한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의미를 묻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6항에 따르면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진도 앞바다에서 공포에 떨며 구조를 기다리던 많은 국민들을 국가는 구해내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선출된 공직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당연히 주권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것을 저버리면서까지 해야 할 다른 일은 없다. 그런데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4월 23일 “안보실은 통일·안보·정보·국방의 컨트롤타워이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가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청와대의 국가안보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육군사관학교 27기 출신의 김장수 전 실장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이나 정전협정의 백지화 선언 등에 대해서는 청와대 인근에서 숙식을 해결하기까지 하며 성실하게 대처했다고 한다. 김 전 실장이 군인으로서 익힌 안보관은 주적 북한에 올곧게 대처하는 것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국가의 공인으로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바는 국민의 생명이다. 바로 그것을 지키는 것이 안보의 기본이다. 국가안보가 정권안보나 군사안보로 축소·환원되어 있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현재 우리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은 각 부처에 기능과 역할을 분산시킨 상태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보실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정보나 국방 이외에도 재난대응까지 총괄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NSC를 해체했고 그 기능을 각 부처로 분산시켰다. 박근혜정부는 NSC를 부활시켰으나 재난대응의 기능까지 부여하지는 않았다. NSC는 정보를 습득해 각 수석실에 전달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곳에서 재난대응까지 총괄하게 하면 보다 기민하게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만일의 사태에 신속한 초동대처를 할 수 없는 행정조직을 가지게 된 이념적 원인을 협의의 안보관과 북한과의 대치상태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 정치적 원인은 경직된 양당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정치구조에서 정권을 잡은 세력은 국가기관을 5년에 한 번 꼴로 뒤엎을 수밖에 없다. 다른 정당이나 국가 및 이념을 부정하는 것을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세운 자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하더라도 통합과 지속성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때 대한민국은 하나가 아닌 반쪽짜리가 된다. 선출된 권력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정부조직을 개편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결과를 낳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언론 장악하여 공영방송의 독립성 훼손

세월호 사건 이후 정권은 언론에도 개입했다. 진실을 밝혀야 진실로부터 배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사건 이후 방송장악에 나섰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4월 22일 내부문건 <“세월호” 관련 재난상황반 운영계획>을 보면 “방송사 조정통제”라는 임무가 방송정책국에 하달된 것을 알 수 있다. 방통위는 재난상황반에 필요하면 네티즌 글의 삭제를 요청하라고도 지시했다. 방통위는 JTBC의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9’에서 나온 다이빙벨의 이종인 대표 인터뷰가 여론을 악화시키고 구조작업을 곤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뉴스9’의 징계를 검토하기도 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번 KBS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길환영 사장이 5월 1일부터 8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해경을 비판하지 말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에 초점을 맞추라는 등의 내용을 통해 KBS 9시뉴스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길 사장은 지시가 아니라 제안에 불과했다고 반박했지만,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훼손된 것은 사실이다. 공영방송인 KBS 사장은 방송법에 따라 여야 인사 비율이 7대 4인 KBS이사회의 임명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결국 정권안보에 효율적인 인사가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언론사의 사장이 되는 셈이다. 길 사장이 해경에 대한 합리적 비판마저 차단하고자 한 부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면서 진실을 추구할 수는 없다. 진실에 기대지 않는 대책마련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국가의 의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물음은 곧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보여준 모습은 사람들에게 대통령이 왜 존재하는지 질문하도록 만들었다.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취임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겠다는 선서를 해야 한다. 국민은 국가의 주권자이므로 국가를 보위하는 일은 다시 말해 국민들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안정적인 시스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긴급한 일들이 발생할 때 신속한 대처를 유도하는 것이 대통령의 중요한 존재 이유 중 하나이다. 헌법 제76조 1항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 ·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공식사과를 하는데 34일이 걸렸다. 물에 빠진 단원고 학생들과 일반인 승객들에게 주어진 골든타임은 아무리 길어봐야 하루 혹은 이틀 정도였겠으나 박 대통령은 이 사태를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는 데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려버린 것이다. 또한 박 대통령의 안산정부합동분향소 조문과 대국민담화는 연출 시비에 휘말렸다. 대국민담화 말미에서 박 대통령은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31초가량 눈을 깜빡이지 않고 눈물을 흘렸고 카메라는 클로즈업되었으며, 분향소 조문에서는 한 할머니를 섭외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악화된 여론을 완화시키고 지지율을 안정시켜 정권유지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선점하는데 박 대통령은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부여된 책임과 권한은 이번 사건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않았다. 팽목항에서 박 대통령은 현장의 구조인력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여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난항에 대해 선제적으로 조치하지는 못할망정 그저 사건의 책임자는 엄벌할 것이라는 불호령만 내렸을 뿐이었다. 대통령은 국가의 위기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정한 국가의 위기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의 위기는 정권의 위기가 아니라, 진실이 사라지고 국민의 생명이 위급할 때를 뜻한다.

대다수의 피해자가 단원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십대 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5월 27일 현재 243명의 학생들이 사망했고, 7명의 학생들이 아직 실종자 명단에 올라 있다. 누구도 다 알 수 없었던 그들의 고유한 잠재성과 가능성이 채 피워보지도 못한 채 단숨에 꺾여버린 것이다. 그들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처럼 받아들이고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노란리본을 달고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기다림은 세월호 선실에 퍼졌던 악마적인 말처럼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없는 국가는 존재 가치가 없다. 대한민국은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선민서 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6:1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