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성신여대 연구교수

  ‘비효율(非效率)’의 대명사.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대강당 리모델링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그곳에 대한 이미지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 대강당이 변화의 기로에 놓였다. 고대신문 보도에 따르면, 현재 대강당은 3층 건물로 리모델링하고, ‘SK미래관’이 그 주위를 둘러싸는 형태로 재건축될 예정이다. 이 보도에는 기존 대강당의 ‘고전풍’을 살리고 강의실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포함되었다. 기존 건물의 잉여 공간은 학생 복지와 편의를 위해 커피나 화장품 따위를 팔도록 내주었으니, 강의실 부족 문제를 재건축 사유의 하나로 제시하는 학교 입장도 이해는 된다. 덧붙여 “SK미래관은 리모델링되는 대강당의 3층과 연결돼 백주년기념삼성관과 대칭”을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기획이 현실화된다면, 대한민국의 두 거대기업의 이름이 고대 본관을 중심에 두고 흡사 청룡과 백호마냥 포진한 광경을 목도할 날도 멀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두 거대기업 총수들이 현재 진행 중인 정경유착 스캔들에 부정한 방식으로 연루된 혐의로 사정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효율성이 최대 미덕으로 간주되는, 이른바 ‘가성비(價性比)’ 시대에 비효율의 상징 대강당이 그 원형을 보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현실적인 결과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오히려, 우후죽순으로 앞 다퉈 위용을 뽐내는 신축 건물들 사이에 그것이 홀로 남은 모습이 차라리 기괴하게 여겨질 지경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당과 그 주위 공간은 고대 내에서 가장 덜 자본주의적인 장소 중 하나로 인식되어왔다. 대강당 주변은 시끄러움과 고적함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풍물패, 극회, 각종 예술 동아리와 소모임, 응원단 등이 이 공간과 공생해 왔음을 나는 기억한다. 그들이 유발하는, 밤낮 없는 소음에도 불구하고 대강당을 에워싼 넓은 공간은 어떤 이들에게 낭만과 사색의 공간이 되어주기도 했다.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가 칭송해 마지않는 효율성의 마력이 이 공간에서는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시장의 논리를 따르지 않거나 혹은 거스르는 이들이 줄기차게 만들어낸 소음과 정적은 때로 어떤 항변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런 풍경과 내용이 대강당의 존재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강당이 신식 건축물로 재탄생하고, 거대 기업이 출자한 ‘미래 지식 생산’ 공간이 그 주위를 에워싼 모습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대강당의 시대, 나는 그곳에서 대학 입학을 위한 ‘학력고사’를 보았고, 세간에 교양필수 과목이라 회자되었던 곽연 교수의 ‘현대 음악의 이해’를 들었다. 매년 학부 선후배들이 모여 원어 연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대생들이 이와 유사한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하여 대강당 시대가 끝나 ‘새 강당 시대’가 도래했을 때 모종의 상실감을 느낄 이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대강당이 지금 모습대로 남기를 바라는 심리는 시대착오적인 ‘옛날사람’의 감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새 강당의 시대’가 과연 학교 당국의 기획대로 장밋빛 미래만을 선사할지는 알 수 없다.
  나는 현재 나와 저 대강당의 처지를 감히 비교해본다. 나는 연구교수, 겸임교수, 시간강사 등 여러 직함을 가지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직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실제로 각 대학에서 수행해 온 업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러 직함이 지시하는 바는 결국 비정규직으로서의 내 지위와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참고로 대학교육협의회 정책에 따라 비정규직 교수 3명은 1명의 정규직 교수로 인정된다. 물론 시간강사는 이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 각종 ‘교수’ 타이틀을 단 계약직들만이 비정규직 교수로 인정된다. 많은 대학들이 이 정책에 적극적인 환영 의사를 보였다. 비정규직 교수는 승진, 연봉 등에서 정규직 교수와 차별을 받는다. 지위가 다르니 처우가 다른 것도 당연하다. 이는 지극히 효율성 중심의 채용 방식으로, 사회 변화 양상과 방향을 고려할 때 매우 합리적이고 가성비 좋은 정책처럼 보인다. 가성비란 본래 물품 등의 비용과 산출 비율을 따지는 용어였으나, 점차 그 적용 대상이 인간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비정규직들은 기업과 대학에서 가성비를 높이기 위한 도구로 쓰였다 버려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비효율의 ‘대강당 시대’를 지나, 효율과 가성비의 ‘새 강당 시대’로 가고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08: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