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노동자의 책〉 국가보안법 탄압저지 공동행동” 활동가

  지난해 여름에 <노동자의 책> 압수수색이 벌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설마 구속·기소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보적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제공해 온 전자도서관이 불법이라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도노조 조합원인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에게 ‘빨간 칠’을 해서 다가오던 철도 파업을 위축시키려는 시도 정도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 후 반년간 별다른 추가적 공격 시도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초, ‘촛불혁명’의 한복판에서 검찰과 법원은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를 전격 구속·기소해 버렸다. 검찰은 대형서점이나 공공도서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어머니󰡕, 󰡔페다고지󰡕 등까지 문제 삼았다. 이 책들이 “폭력 혁명과 체제 전복을 고취”하기 위한 “이적표현물”이라는 것이었다.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던 황교안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서 곧바로 벌어진 일이다. ‘1000만 촛불은 종북세력이 만든 것’이라고 보는 공안세력이 여전히 이 나라 국가기구의 핵심에 자리 잡고서, 촛불에 찬물을 끼얹으려 <노동자의 책>을 공격한 것이다.
이것은 촛불이 재벌이라는 ‘몸통’뿐 아니라 공안세력이라는 ‘머리’도 봐야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박근혜 체제’의 핵심이 되는 두 축은 정경유착을 통한 재벌특혜와 더불어, 국가기구가 관여한 공작정치였다. 대선부정, 내란음모 조작,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이어진 문제에 국정원, 검찰이 연루돼 있고 김영한 업무일지를 보면 2일에 한 번꼴로 전교조와 진보당이 언급됐다.
  특히 이번에도 저들의 무기는 국가보안법이었다. 지배자들은 ‘북한의 위협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핑계의 성격이 강하다. 사실, 남북한 지배자들은 단지 ‘적대’하지 않고 때로 ‘공생’해 왔다. 대표적으로 1996년 4.11 총선 때 여당이 선거에서 유리하도록 북한 측에 몰래 부탁한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이 있었다. 재벌총수나 고위관료들은 수시로 북한을 드나들고, 북한 권력자들을 ‘고무·찬양’해도 문제가 되지 않아 왔다.
  반면, 기층에서 정권과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더러운 칼이 멋대로 휘둘려졌다. 이번처럼, 서점이나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온라인에 올리고 판매했다고 구속되는 일이 언제든 가능한 것이다. 물론, 검찰은 2월초 기소 단계에서는 󰡔어머니󰡕, 󰡔페다고지󰡕 등의 책은 제외했다.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 스스로도 불리할 것을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 독재정부 때마저 합법적으로 출판됐던 북한 관련 소설, 책들을 문제 삼고 있다. 이것은 ‘종북몰이’를 하려는 것이자, 북한에 대한 탐구와 토론조차 가능하지 않게 무조건 눈과 입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머릿속 생각을 재단해서 탄압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이 학문·사상·표현·출판의 자유를 전면 부정하는 악법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그 존재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와 모순되기에 자유주의 정권이었던 2004년 하반기에 “국가보안법을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자”는 말이 나왔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보수우파들의 반발에 굴복해 버렸고, 그해 연말 국회를 통과한 것은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아니라 파병연장 동의안, 경제자유구역법 등이었다.
  이렇게 살아난 국가보안법은 참여정부 말기에 ‘일심회’ 사건과 마녀사냥을 일으키는 데 이용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국가보안법은 더욱 악랄한 본질을 드러내며 종북몰이 광풍을 일으켜 왔다. 그 절정은 바로 ‘내란음모'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이었다. 그때마다 국가보안법을 이용한 탄압은 항상 우파를 결집시키고, 진보진영을 위축·분열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이용됐다.
따라서 촛불이 3달 가까이 타오르면서 저들이 국가보안법을 다시 집어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동자의 책> 탄압은 더 거대한 종북몰이를 위한 하나의 전주곡일 가능성이 크다. ‘촛불혁명’이 꼬리 자르기에 멈추지 않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힘을 모아서 이에 맞서야 한다.
  역사는 단지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다고 해서 국가보안법과 종북몰이가 없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다. 자유민주주의조차 자유주의 세력의 위로부터 개혁보다 단결한 피억압 민중의 아래로부터 투쟁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09:4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