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애, 『열세살 여공의 삶: 한 여성노동자의 자기역사 쓰기』, 한겨레출판, 2014.


열세살 여공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한국사에서 1970년은 전태일이 분신자살을 한 해로 기록된다. 전태일의 분신으로 1970년대의 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다. 전태일 친구들의 노력과 전태일 모친인 이소선의 집념으로 1970년 11월 27일 청계노조가 출범했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이들을 결속했다. 당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고(古) 조영래 변호사는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세상에 알리려 했다. 그는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평화시장에서 일한 노동자를 만나고 싶어했다. 이소선 여사는 그에게 한 여공을 추천해주었다. 조영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여공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이야기를 책에 적었다.

『전태일 평전』에서 어린 시다로 등장했던 ‘불쌍한 여공’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공분했다. 한창 학교에 나가 배워야할 나이의 소녀들이 새벽이면 공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그 ‘불쌍한 여공’이 자신의 전생애를 담은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최근 한겨레출판에서 간행된 『열세살 여공의 삶』에 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는 1970년대의 지옥 같았던 여공들의 생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들이 자신의 삶의 조건을 뿌리째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치열한 시간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열세살 여공의 삶』의 저자 신순애 씨를 만나 그녀의 지난 삶의 내력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 4월 21일, 신순애 씨의 자택 인근 태릉 유적지에서 진행되었다.


1970년대 지옥같은 여공의 생활

1966년 신순애 씨는 13살의 나이로 청계시장에서 여공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것이 마음의 한이었던 그녀는 1974년 ‘중등 수업 무료’라 적힌 전단지를 읽고 처음으로 ‘청계피복 노동교실’에 방문했다. 그녀가 여공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지 9년째 되는 해였다. 그녀는 청계노조에서 여성 노조 활동가로 활동하며 1970년대와 80년대의 굵직굵직한 노조 투쟁에 참여했다. 그로 인해 가족 전체가 빨갱이로 몰리기도 하고 구속을 당해 합동수사본부에서 끔찍한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굴곡진 삶을 살았던 그녀가 2012년 성공회대 NGO 대학원에서 ｢열세살 여공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석사논문을 발표했다. 그녀가 1966년 13살의 나이로 청계시장에서 여공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지 40여년 만의 일이었다.

“성공회대학교에는 만학도들이 많이 공부하고 있어요. 저는 2003년 초등 검정고시를 보기 시작해 중등, 고등 검정고시를 마치고 2006년 대학에 입학했어요. 학부 마지막 4학년 2학기에 성공회대학교에서 김수행 교수님의 정치경제학 수업을 듣게 됐죠. 기말 과제로 『전태일 평전』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됐죠. 그런데 많은 친구들이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지만 저에게는 그런 전율이 안 느껴졌어요. 왜 그럴까 싶어 두 번 세 번을 읽었지만 마찬가지였어요. 그 후에 깨달았죠. 『전태일 평전』에 묘사된 여공의 삶보다 실제로 제가 겪었던 삶이 훨씬 비참했던 거예요. 『전태일 평전』에는 1970년대 현장에서 일했던 여공들의 삶이 누락되어 있었어요. 지식인이나 연구자들이 노동자의 삶을 조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신순애 씨는 13살 이후 여공으로 지냈던 자신의 삶을 자서전 형식으로 써서 제출했다. 신순애 씨의 글을 본 성공회대 김수행 교수는 신 씨에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이 글을 석사논문으로 발전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영국의 경우 노동자들의 생애사에 기반한 논문이 많은 데에 비해 한국에서는 그런 사례가 드물다고 했죠. 김수행 교수님을 비롯한 성공회대의 많은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이 논문을 구성하고 집필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7번 시다가 아니라 신순애라 불러준 노동조합

전라도 남원에서 태어난 신순애 씨는 가난 탓에 서울 판자촌으로 이주하여 평화시장에서 일했다. 어린 소녀에게 공장 생활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겨 내기에 너무 벅찬 노동강도와 조건이었다. 그러나 어린 소녀가 끔찍한 공장 생활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를 비롯한 평화시장의 미싱사와 시다들은 다락방에서 하루에 16~20시간 일했다. 다락방 천장은 높이가 1미터 정도밖에 안 되어서 어린애가 아닌 이상 똑바로 서서 걷는 것이 불가능했다. 시다들은 하루 종일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일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청계노조는 ‘나를 발견한 곳’이었다. 1966년부터 여공으로 일을 하는 동안 그녀는 ‘7번 시다’로 불렸다. 공장에서 그녀를 호출할 때에도 여공들 사이에서도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청계노조의 노동교실에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그녀를 ‘순애 씨’라고 불러주었다. “그 당시 저에게 노조는 생명줄과 같은 곳이었어요. 기존의 연구들에서는 저희를 힘없고 보잘 것 없는 ‘불쌍한 여공’으로 묘사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에요. 저희는 노조활동을 통해서 자존을 배웠고, 연대와 단결을 배웠고, 당당한 노동자가 되어 갔어요. 청계노조 시절 부지부장, 부녀부장 직을 맡은 경험은 저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죠. 높게만 보였던 자본가와 권력에 맞서 저희는 당당하게 투쟁했어요.”


빨갱이에서 성고문까지, 여성 노조활동가 탄압

하지만 평화시장의 일상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수모는 상당했다고 그녀는 전했다. 당시 여성 노조 활동가들은 ‘빨갱이’, ‘블랙리스트’, ‘성고문’, ‘성폭력’,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올 때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개인의 불행’ 쯤으로 여겨야 했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0년대에 활동은 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당시 자행되던 성고문에 대한 굉장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평화시장의 악질 기업주나 공장장들은 어린 여공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이 빈번히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입 밖으로 발설을 하면 성폭력 피해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신순애 씨는 국가권력과 자본가들은 1970년대의 많은 여성 노조 활동가들을 탄압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 중 살아남은 자라고 표현했다. “가끔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미싱공장이 여러 군데 있는 곳 앞을 지날 때가 있어요.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50-60년대 여성들이에요. 1970년대, 1980년대에 여공으로 일했던 사람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미싱 기계를 돌리고 있는 거예요.”

신순애 씨는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만큼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동자가 쓴 글이 드물다고 말했다. “우리는 길거리의 잡초처럼, 누군가에게 밟혀 상처가 나도 그 아픔을 딛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공장 생활을 했던 사람에게 대학 공부를 했다고 해도 글쓰기는 힘든 일이에요. 그래도 저는 노동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을 집필하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이 책은 저의 주관적 체험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1960-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주체화 과정’에 대한 기록이기도 해요. 저는 이 책이 노동자들의 자기 역사 쓰기를 북돋우는 사례가 되기를 바랍니다.” 4월의 초목들 앞에서 말을 이어나가는 신순애 씨의 모습은 작은 거인처럼 보였다. 그녀가 환갑의 나이에 그 책을 출간하기까지 지나왔을 그 숱한 세월들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정리: 선민서 기자 minseo@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12: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