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도 스승이 되려면



학부시절 가르침을 받던 은사님에게 스승의 날 가끔 메일을 보내곤 했다. 그럴 땐 항상 답장이 “스승의 날은 선생이 제자를 생각하는 날이지요”라는 마지막 문장으로 끝이 났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스승의 날은 그냥 1년에 딱 하루지만 자주 얼굴을 맞대고 대학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간의 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한 것 같다.

  시간강사들에게 스승의 날은 어떨까? 개인마다 혹은 강의를 하고 있는 대학이나 학과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시간강사들에게 스승의 날은 어쩌면 좀 뻘쭘한 날이 아니까 싶다. 대부분의 대학마다 50%내외의 강의분담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사실 시간강사는 학과도 학교의 구성원도 아니다. 이런 구조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까닭에 학생들도 그들을 학교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강사와 학생들이 접촉할 수 있는 물리적, 제도적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아

  학생들이 시간강사들을 업신여겨서일까? 3년 정도 학교에 있어본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의 아이들이 그렇게 나쁜 아이들은 아니다. 다만 학교에서의 위치가 너무 애매하다. 강사와 학생들 간에 접촉할 수 있는 물리적・제도적인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온전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성립되기 어렵다. 대부분의 강사들은 수업시간에 학교에 와서 수업이 끝나면 학교를 빠져나간다. 전업시간강사들의 경우 다른 학교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강사들은 강의시간 이외에는 대학의 그 어느 곳에도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없다. 그냥 진짜 수업만 하는 사람들이다. 지방대학은 더욱 더 그러하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출강하는 강사들은 대부분 하루에 두 개의 과목을 강의한다. 한 강의만 맡을 경우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벽에 나왔다가 수업이 끝나고 다시 돌아오면 늦은 밤이다. 실정이 이러하니 학생들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 슬프다.

  명강의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의 선생님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학교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봐야한다. 항상 언급되는 시간강사의 처우문제를 봐야한다. 기본적인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사들은 그들의 스승이 될 수 없다. 자신들의 현재가 너무 불안한데, 지금 시작하는 후학들의 이야기를 귀담아서 들어주고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강의를 해도 생활인이 아닌 강사들은 가능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강사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과에서는 개강총회를 한다. 행사의 이름이 다를지라도 대부분 한번씩은 모일 것이다. 학과의 구성원들이 모이고, 학과장 이하 모든 전임교원들이 참석한다. 여기에 시간강사들을 부르는 학교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 땅의 대학에서 그런 모임에 교수와 강사가 나란히 앉을 수 있을까? 이런 문화가 조성된다면 조금 더 강사들이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전공특성상 수업을 하면서 한 학기에 한 두 번 밖으로 학생들과 나갈 일이 꼭 생긴다. 전임교원들은 야외학습을 신청하면 수당이 별도로 나오고 야외수업 이후에는 영수증을 첨부하면 일정금액을 다시 보조해준다. 그러나 시간강사들은 아예 그런 기회가 없다. 현실적으로 학생들과 밖으로 나가기가 어렵다. 교수가 하던 수업을 강사가하면 야외수업이나 답사를 할 수 없다. 이건 학생들에게도 큰 손실이다. 강의실 이외에 곳에서 책에서만 보던 유적이나 건물을 보고 같이 공감하는 일은 선생과 학생간의 관계에서 중요한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

  다시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언젠가 학생 두 명이 수업이 끝나도 가지 않고 서있다. 필자에게 와서 상담을 하거나 물어볼 곳이 있으면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묻는다. 좀 당황했다. 뭐라고 해야할까. 필자는 나는 교수가 아니라 연구실이 없으니 물어볼 것이 있으면 메일을 달라고 했다. 물론 거창한 방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강의를 하는 기간만이라도 앉을 자리 정도 하나씩 만들어 줄 수면 더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하면 지금 강의를 하고 있다는 4개월짜리 재직증명서를 떼어 다시 도서관까지 경비원 아저씨를 거쳐 다시 도서관에 가야한다.


처우가 열악하면 학생들과의 관계 맺기도 어려워져

  시간강사의 처우는 굳이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열악하다는 것이 다 알려져 있다. 처우가 열악하면 학생들과의 관계를 맺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 전임교원만으로 학생들의 관심사와 전공의 다양성을 책임일지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 다시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시간강사들은 아마도 선물을 받아도 어색할 것이다. 교수도 아닌데 굳이 뭐..... 이러면서 말이다. 이 간극이 좁아지면 강사만 좋아지는 건 아닐게다. 선물은 안줘도 된다. 밥은 우리가 사줘도 된다. 그들도 나도 선생님이 되고 싶은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장애물들이 너무 많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19:0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