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도명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교수란 무엇인가?


교수란 무엇인가. 교수의 사전적 정의는 ‘대학에서 전문 학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대학원생이라면 교수라는 이름이 단지 이러한 사전적 정의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교수는 크게는 스승이요, 학계의 선배이며 많은 경우에는 대학원생의 상사 역할을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대학원에서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수직적, 상하 복종적 관계에 가깝다. ‘교수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라는 푸념 속에는 ‘교수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윤리적인 기준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교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 이 사회에서 교수의 역할은 무엇인가? 다시, 교수란 무엇인가? 본지는 이런 물음을 품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를 만났다.


가치중립적인 학문은 없다.

백도명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폐손상조사위원회 공동의장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으로 활동 중이다. 어떻게 사회 참여 활동과 연구 생활을 병행하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저도 지도교수입니다. 박사과정 학생이 열 명이 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임이 있습니다. 시화 반월 공담에서 주변 주민들과 십년 가까이 함께 조사 작업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와 시화 반월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교수의 사회 참여 활동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첫째, 가치중립적인 학문은 없습니다. 모든 학문에는 가치가 따릅니다. 학문의 내용을 어떻게 파악하느냐도 결국은 가치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천안함 사건을 봅시다. 천안함 사건에서 성분 분석은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흡착된 물질의 성분 분석문제는 언뜻 봐서는 가치중립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분 분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성분 분석 결과도 달라지게 됩니다. 천안함 사건에서의 파동 분석, 물질 분석, 수중 생태계 규명과 같은 것들도 가치 중립적이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둘째, 학문은 혼자서 소비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문은 전체 체계 속에서 사회 문제와 맞닿으면서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유전 공학에서 세포의 유전자를 연구하는 지노믹스가 분화되었습니다. 지노믹스는 융성하다가 지금은 사그라 들었지요. 학문이 새로 만들어진다는 것, 그것은 거기에 가치가 부여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학문이 만들어지고 갈라지고 쇠퇴하는 과정은 결국 가치의 문제와 연관됩니다.” 그는 학문의 중립성을 논할 것이 아니라 전체 가치를 어떤 식으로 조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가치가 올바른 가치인지, 사회에 제대로 맞는 가치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존경받는 스승이 사라지는 구조

그에게 한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에게 존경을 받거나 신뢰 받는 스승이 점점 줄어드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존경하거나 훌륭하다고 느끼는 감정의 근저에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 세대들에게 그와 같이 살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주어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는 스승에 대한 존경의 감정을 지니기 어렵습니다. 제가 대학원생이었을 때는 사회가 팽창하는 시기였고 우리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기다리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가 복잡해졌고 젊은 세대들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고 해도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이런 물음을 지닌 젊은 세대들에게 교수들이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입니다.”


교수는 정보나 지식의 단순 전달자가 아니다

그가 처음 생각했던 교수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생각과 달라진 부분은 없는지, 여전히 관철 중인 역할은 무엇인지 물었다. “저는 학문적 연구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가르친다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연구하는 것은 가르치는 것 보다 훨씬 쉬웠지요. 전공이 직업병과 관련된 것이어서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직업병들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측정, 파악, 진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에 비해 가르치는 일은 제게 피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단순히 정리된 정보전달은 의미가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보나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라면 텍스트북을 같이 읽는 것이 체계적이겠지만 그것은 남의 학문에 불과하고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지요. 나이 드신 교수님들 중에는 자신의 학문들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것들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 또한 그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떻게’가 아니라 ‘왜’라는 질문이 중요

그에게 학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에 대해서 물었다. “첫째로 호기심이 많아야 합니다. 공부를 오래한 사람들은 보통 얌전하고 성실하고 끈기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이러한 덕목들도 필요하지만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 학문인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에 대한 대답을 구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에 답하는 것이 진짜 학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학자들이 ‘왜 사회가 변화할까’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에 산적한 여러 차별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왜’ 해소가 되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왜’ 해소가 되지 않았는지 찬찬히 검토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겪는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교수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그는 고통을 겪는 사람의 목소리가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세월호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른 언론 통제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언론사 문제, 가족들의 입장과 느낌, 생각을 전달해주는 목소리가 필요하고, 그 목소리를 풀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시민사회단체들이 그런 역할을 담당했는데 교수 또한 그런 목소리를 못 가진 사람들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무관심’의 문제를 언급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태도가 사회 곳곳에 퍼진 차별을 만연하게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문은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고 있다. 하지만 학문이 단순히 전문적인 기술의 축적이나 전달로 남는다면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와 유리될 수밖에 없다. 교수의 역할도 지식이나 기술의 전달자로만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교수는 이 사회의 병든 부분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교수란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백도명 선생의 말은 연구실 안으로 유리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최은영 기자 euni153@naver.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15:0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