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들의 목소리를 확성하는 신문으로 나아가길

동국대학교 대학원 신문 편집위원 임세화



고려대 대학원 신문을 읽고 내가 느낀 것은 불길한 기시감이었다. 매년 인상되는 등록금, 수료연구생 제도 신설, 불안정한 대학원생 연구 환경과 관련한 기사를 차치하더라도 대학 강사의 처우 개선 문제와 심지어 청소노동자들의 학내 투쟁에 이르기까지 익숙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런 이슈들이 일부 대학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건 사실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대학원 신문들에서 유사한 문제제기가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쉽게 간과할 수도 없다.

‘대학원생’이라고 편리하게 지칭되지만, 2014년 대한민국에서 대학원생은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존재이다. 대학생과 ‘같은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반값 등록금이나 정부 장학금 등을 기대할 수도 없고, 직장인과 ‘같은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받기도 어렵다. 이 사회의 어느 누구도 대학원생을 대변해 ‘한국에서 대학원생으로 살아나가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해주지 않는다.

대학원생들이 직접 글을 쓰고 기획·편집하여 만드는 ‘대학원 신문’은 대학원생의 목소리와 관심사, 고민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라는 점에서 소중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신문을 만드는 기자들의 사명감과 책임감 역시 무거울 것이다. 고려대 대학원 신문에서도 이러한 기자들의 고민과 분투의 흔적 들이 지면마다 결결이 어루만져졌다. 특히 익명으로 게재되는 <원우 발언대>와 <강사 발언대> 등의 기획이 신선했다. 알찬 학술기사들도 면면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오랫동안 공들여 읽었던 것은 청소·주차관리 노동자들의 투쟁 기사였다. 불과 몇 시간 전 나는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왔다. 종일 교내 곳곳을 쓸고 닦던 복장 그대로 피켓을 들고 선 청소노동자들의 요구는 (대학원생인 내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게까지 불가능하거나 불합리한 요구가 아니었다. 건강보험 등 공제액을 제외하고, 식대비와 6주에 한 번 지급되는 수당이 포함된 월급명세서에는 1,152,838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꼬박 한 달을 일해서 받는 그들의 생활비이다.

살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일 수밖에 없었다고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 절박한 외침 앞에서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읽는 책, 내가 쓰는 글, 내가 하고 있는 공부 들은 그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고, 어떤 것에도 소용될 수 없었다. 심지어 ‘교수’나 ‘대학원생’으로 호명되는 대학 내의 수많은 존재들도 “무릅 펴고 쉬고 싶다”라는 피켓 앞에서 철저한 방외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학원생’은 그들과 다른 존재인가? 이토록 멀찍이 떨어져 있어도 되는가? 오늘날의 대학 자본 내에서 1년 계약직 청소 노동자와 매학기 후려쳐진 등록금을 내는 대학원생은 사실 그토록 멀거나 이질적인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청소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 함께 모여 하나의 목소리로 절규하는 것이라면, 대학원생이 할 수 있는 최선과 지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학원 신문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러나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와 생활, 각자의 사정들에 치여 어렵고 더딘 나날들을 이어가고 있는, 걸레통과 빗자루 대신 책과 노트북을 짊어진 ‘대학원생’들의 목소리를 광장의 외침으로 확성(擴聲)시켜 주는 것. ‘대학원생’은 하나로 통칭되거나 묶일 수 있는 단일한 계급이나 계층이 아니지만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대학원 신문’의 역할은 중요할 것이다.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는 매일매일은 녹록치 않다. 고백하자면 대학원생이라서 그렇다고 할 수만도 없다.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선택한 공부, 쓰고자 하는 글들, 그 한없었던 마음들이 대체 어디에 가닿을 수 있는 것인지 소용될 수 있는 것인지를 곰곰 되새기게 된다. 그런 믿음을 가졌던 때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괜히 그런 생각이 든다. 배에 갇힌 채 물속으로 가라앉은 아이들을 보며 어찌할 수 없는 절망과 분노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다가, 청소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의 장에 머무르다가 당장의 발제문과 논문자료 앞에 마주앉으면 자꾸만 헛된 생각이 든다. 다른 대학원생의 삶을 훔쳐보는 기분으로 신문을 읽었다. 반가웠고 동시에 마음 아팠다. 고려대 내의 어려움들이 해결되길 기원한다. 앞으로도 고려대 대학원 신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사소하고 무력한 것일지라도. 때로는 공허한 울림으로 끝날지라도.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1 10:0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