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의 오늘을 지탱하는 어제, 어제를 이용하는 오늘

박세종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

르완다의 아침은 아름다웠다. 해발고도 1,500여미터의 고지대에 자리한 수도 키갈리에서, 안개가 자욱한 마을을 내려다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천 개의 언덕의 나라’, ‘아프리카의 스위스’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언덕이 많은 탓에 보통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그려지는 너른 초원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1994년 벌어진 제노사이드로 80만 명 가량이 희생된 나라임에도 거리의 분위기는 놀라울 만큼 평화롭다. 새벽부터 도로와 보행로를 청소하고 잡초를 정리하는 공공근로자들의 손길이 부산스럽게 이어진다. 경제는 매년 6-8퍼센트씩 성장하고 도시 곳곳에 세련된 고층 건물들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한 해 남짓 키갈리 제노사이드 메모리얼에서 일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거리의 풍경이 바뀌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분명 르완다는 눈부시게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94년 4월부터 7월까지, 인구의 약 85%를 차지하던 다수 후투(Hutu)계가 소수 투치(Tutsi)계를 학살한 제노사이드를 종식시키고, 이를 주도한 정부를 무너뜨린 것은 르완다애국전선(RPF)이었다. 폴 카가메(Paul Kagame) 대통령의 지도 아래,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밤길을 걷기에 안전한 나라(Gallup Global Law and Order 2015 Report),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World Bank, Doing Business 2012 Report), 세계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 올랐다. 비극의 단초가 된 종족 구별을 철폐하고 신분증에서도 삭제했다. 종족 인식을 조장하는 행위는 ‘제노사이드 이데올로기 법’으로 처벌받는다. 대신 ‘르완다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뭉치려 한다. 국제사회는 르완다의 높은 원조효과성을 칭송하며 매년 르완다 예산의 20-40%에 달하는 원조를 집행한다. 2006년 르완다를 방문한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카가메 대통령은 새마을운동 책자를 내밀며 한국의 개발경험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의 경험이 교훈이 될 수 있었던 분야가 ‘개발’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 8월 4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 르완다애국전선의 폴 카가메 후보가 당선되었다. 98.63%의 득표였다. 94년 이래 실질적 지도자였으며 2000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해 온 그에게 7년의 임기가 다시 주어졌다. 대통령 선거에 재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것이 오히려 대규모 ‘개헌 국민청원운동’을 불러일으켰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2015년 3선 개헌이 이루어졌다. 개헌 국민투표에서 98%의 국민이 찬성표를 던졌다고 한다. 올해를 비롯한 이전의 대통령 선거들 역시 모두 다당제 하에서 진행됐다. ‘민주적’ 과정을 거친 것이다. 야당 인사, 비판적 언론인, 정치적 망명자들이 사찰 및 협박에 시달리거나 실종, 구금, 암살된다는 보고가 빈번하지만 반향은 미미하다. 그들의 혐의는 한결같이 종족 분열을 조장하고 제노사이드를 다시 불러일으키려 했다고 발표되기 때문이다.

르완다의 대표 기업으로 크리스탈 벤처스라는 회사가 있다. 통신, 커피 체인, 식음료, 건설, 자재, 경비업, 부동산, 광산, 설계, 항공 등 르완다의 거의 모든 사업분야에 진출해 있다. 이 회사는 르완다애국전선 당원들의 지분 투자로 설립된 주식회사다. 버번 커피(Bourbon Coffee)는 키갈리는 물론 미국에도 지점을 내고 있다. 모든 가공 우유는 이냥게(Inyange)의 라인을 거친다. 경비업체 가운데 총기소지가 가능한 회사는 ISCO 뿐으로, 이들만이 은행 경비업무를 맡을 수 있다. 크리스탈 벤처스의 경쟁사인 호라이즌 그룹은 국방부의 소유로 건설과 물류 분야를 거머쥐고 있다. 이들은 거듭되는 정경유착 의심에 대해, 자신들은 국가의 사업에 특혜 없이 입찰을 통해 ‘경쟁’하며, 자본이 부족한 르완다에서 미개척 사업분야를 육성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명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2010년 대선에서 르완다애국전선의 선거캠페인에 쓰인 금액의 절반이 크리스탈 벤처스의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는 사실이 석연찮지만 말이다.

서아프리카에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있다면 동아프리카에는 ‘블러드 콜탄’이 있다. 콜탄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널리 쓰이는 탄탈럼의 원료 광물이다. 르완다는 두 차례의 콩고 전쟁을 일으켰다. 그 사이, 그리고 그 후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의 콜탄, 주석, 텅스텐, 금 광산을 영향권에 넣고 채굴된 광물을 르완다 산으로 바꾸어 수출했다. 르완다는 1차 콩고 전쟁에서 현지 군벌이었던 로랑데지레 카빌라와 손잡고 자이르를 전복하고 콩고민주공화국을 세웠다. 직접적 동기는 제노사이드 이후 자이르(Zaire, 콩고민주공화국의 당시 국명)에 설치된 르완다 난민캠프에서 후투 극단주의자 세력이 반군을 결성해 국경지대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빌라가 르완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하자 2차 콩고 전쟁이 발발했다. 두 차례의 콩고 전쟁에서 5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르완다는 2012년을 전후하여 분쟁광물 생산 지역의 반군인 M23을 지원했다는 의혹으로 잠시 동안 원조중단 사태를 겪었을 뿐, 전쟁 자체에 대한 별다른 책임은 지지 않았고 원조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개되었다. 원조도 제재도 르완다가 권위주의를 강화해나가는 흐름을 막지 못했다.

르완다는 역사적 특수성과 효율적 개발역량에 기대어, 국제규범과 제도를 준수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권위주의 체제를 형성했다. 휴먼라이츠워치와 미 국무부의 인권보고서, 국경없는 기자회 언론자유지수 보고서, 프리덤 하우스의 인터넷 자유 및 민주주의 지수들은 일관되게 르완다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왔다. 그렇지만 제노사이드를 막지 못했다는 국제사회의 반성은 빚(Genocide credit)이 되어 르완다 현 정부를 계속 정치·경제적으로 지지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집중된 권력을 바탕으로 공식적인 내러티브를 집단기억의 수준까지 강력하게 관철시켜나가고, 이렇게 형성된 기억을 통해 다시 국내외의 권력기반을 강화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희생자 후손으로서의 기억을 전유함으로써 자신의 무고함과 무오류성을 정당화하며, 반대자들에 대항해 요새를 둘러치듯 스스로를 강화해나가는 의식을 ‘세습적 희생자의식(hereditary victimhood)’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르완다 정부는 ‘희생자’이자 ‘승리자’로서, 공식서사에 반하는 기억들을 솎아내면서 자신의 기반을 굳혀나가고 있었다. 그러한 작업의 중심 기관에서 한 해를 보냈다. “Never Again”이라는 구호의 의미를 곱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