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의 ‘통학’버스


나는 몇 년간 경험해본 결과로 시간강사라는 직함에는 몇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계약직, 불안정성, ‘떠돌이’ 생활이 바로 그것이다. 주위 동료들이 출강하는 대학은 보통 충청권이나 경기도는 기본, 전라도에 있는 경우도 있다. 시간강사라는 직업적 특성상 모든 스케줄과 계획은 학기 단위로 세워지고, 학과 통폐합이나 학교 내규 수정, 정부에서 내놓는 안건 하나하나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시간강사에게 강의는 내가 거절하거나 선택하는 영역의 일이 아닐 때가 많다. 이번 학기에 강의를 거절하면 다음 학기에는 다시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무리해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듯 학기제 인생을 살고 있는 나는 이번 학기 충청권의 한 대학교에서 1교시 수업을 맡게 되었다. 총 다섯 시간이 쉬지 않고 이어지는 시간표다. 금요일 수업이니만큼 너무 오후 늦은 시간까지 시간표를 잡아놓거나 두 수업 사이 공강 시간이 길면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점심도 거른 체 5시간 강의를 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1교시 수업 자체가 부담되지만, 그 때문에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머지 4일 중 3일은 경기도권의 한 대학에 출강한다. 역시 오전 9시부터 수업시작. 서울에 있는 집을 기점으로 두 학교의 위치는 완벽하게 ‘크고’ 아름다운 삼각형을 그리고 있다. 이동거리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충청권 대학의 1교시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집에서 6시 반에는 나가야 한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강남역 한복판에 닿으면 여기저기로 학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있는 통학버스들을 볼 수 있다. 고속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이 통학버스의 장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따금 옆자리에 내 강의를 듣는 학생이 앉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간단히 몇 마디를 하고나면 무거운 침묵이 밀려온다. 내색은 못하지만 그 학생이나 나나 몹시 불편한 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때문에 나는 통학버스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강의준비로 전날 거의 잠을 자지 못했던 어느 아침, 통학버스에서 잠이 들었는데 쉬는 시간에 학생 한명이 내게 오더니 “교수님 오늘 강남에서 버스 타셨죠?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라고 말하며 알은체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앞에서는 태연하게 굴었지만 그 일은 너무 부끄러웠다. 그 뒤로 나는 통학버스에 오르면 내 강의를 듣는 학생은 없는지 주위를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통학버스에서는 자지 않으려 하고, 시선을 피하기 위해 눈은 책이나 강의 자료에 고정하고 있다.  

불편한 차림으로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면서까지 통학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일은 이렇듯 다소 부담스러운 일이다. 출강하는 학교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교직원전용버스가 있지만, 시간강사가 그 버스를 타려면 강의를 하고 있다는 증명서를 떼서 매일 기사님께 확인을 시켜드려야 한다.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카드 같은 것이 시간강사에게는 발급되지 않고, 학기단위로 계약을 하니 매 학기 서류를 갱신해 가지고 다니면서까지 내보여야 하는데 그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럴 바에야 돈을 내고 학생들과 같이 버스를 타는 편이 마음은 더 편하리라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당장 다음 학기를 알 수 없는 생활에 출강을 위해 차를 사는 일은 더구나 경제적인 분수에나 현실적인 상황에나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통학버스 45석의 자리 어딘가에는 오늘도 구두를 벗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부자연스럽게 허리를 세우고 앉은 나와 같은 시간강사들이 있을 것이다. 학생은 아니지만 교직원전용버스보다는 어쩐지 통학버스가 마음이 편한 사람들. 강의실 밖에서도 학생들과 뒤섞여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 그래도 완연한 봄이 오면, 책에만 두었던 눈을 떼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 떠돌이 생활도 좀 즐겨보아야겠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9:5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