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빵’과 더 붉은 ‘장미’를 향해


비교문학비교문화협동과정 박사과정 조다희


지난 2월 말에 있었던 졸업식의 풍경이 떠오른다. 색색의 가운 표식이 물결치던 석·박사의 학위수여식 현장, 학사모를 하늘로 던지며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그 자리 한 켠에 적지 않은 대열의 무리가 들어섰다. 작년 인상에 연이어 올해에도 “등록금 3% 인상”이라는 학교 측의 일방적인 방침에 맞서, 여전히 쌀쌀한 봄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서 시위하는 대학원 학생들을 비롯해, 한결같은 목소리로 “투쟁”을 외치는 청소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잠깐 고민하다 은근슬쩍 그 무리에 합류하여 그들의 고충 속으로 파고드니, 길게 펼친 현수막을 경계로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이런 날(?)에 거추장스럽게 진입하려듭니까?’ 제법 따가운 눈총들이 계속 쏟아졌다. 대놓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특정한 날의 정당한 시위가 그 누구에게도 일말의 관심 없이 치부되는 무의미한 항거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학사모를 크게 던지던 졸업생 한 명이 이쪽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노동자 여러분, 지치지 말고 힘내세요! 저희가 응원하겠습니다!” 한 무리의 원우들이 힘찬 박수를 보내자, 분위기는 한층 고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제야 당당히 고개를 들고 피켓을 더 높이 들어 올렸던 것 같다.  

  교내 한 건물에 걸려 있는 현수막의 문구인, “1만 원우의 원성이 들리는가”라는 물음이 무색할 정도이다. 비합리적으로 책정된 등록금 인상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른 학교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부랴부랴 시행된 수료연구생 등록제도, 고려대 청소노동자들의 총파업 출정, 시간강사 농성장 텐트 침탈 사건 등 시끄러웠던 학내 문제만 보아도 우리가 원하는 봄은 아직 저 멀리 있다. 나는 회의적인 인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닥치는 일련의 사건들은 매일 거리로 나서는 대학원생들의 규탄 시위와 목소리를 그저 침묵으로 이끄는 것만 같다. 이 소리 없는 아우성은 지금도 여전히 차가운 거리, 도처에서 진행 중이다.

  더 암담한 것은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파열음은 생각보다 오래 진동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열흘 동안 진행된 본교 청소·주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본관점거 파업이 처우 협상으로 일단락된 것 같지만, 학교 측의 법적 대응 거론은 그들의 항성에 대응한 전면전이나 다름없다. 학교 측은 일찍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내세우며 파업 기간 동안에 용역비용을 지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파업을 ‘진정한 파업’일 수 없게끔 만들고 있다. 학교의 비상한 대처는 이뿐만이 아니다. 가령 쓰레기로 넘쳐나는 모 대학과 달리 본교는 외부 인력을 고용하는 등 사태에 발 빠르게 대응한 탓에 겉으로는 평온하고 깨끗하다. 몇몇 건물의 화장실만 봐도 그렇다. 더럽다고 불평하는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아무 것도 관심 갖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 그저 모든 것이 평화롭고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고 있다. 아니,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세상을 뒤흔들지 못하는 파업의 종류는 너무도 많다. 쪽방에서 추위를 달래는 그들의 비좁은 공간으로 한번 들어서보자. 방을 비추는 건 햇빛이 아니라 작은 랜턴이다. 비단 우리 곁에 가까운 학교 현장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뼛속까지 침투해 있는 삶의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고된 노동을 일삼는 그들의 고통을 보장해달라는 것이 농성의 골자가 아니다. 호소, 협상, 타협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차별 없는 신성한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부여받는 것,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게 마치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는 이 아이러니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유니폼을 입으면 우린 투명인간이 되는 것 같아.(When we put on uniforms, we become invisible.)”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켄 로치의 대표작, 영화 <빵과 장미>의 한 대사이다. 졸업식의 풍경은 단지 낯설고 생경한 것으로 치부해야할 것이 아니다. 이제 그들은 화장실, 쪽방 부근의 음지에서 벗어나 거리로, 세상으로, 바깥으로 자꾸 나와야만 한다. 졸업 가운을 입은 이들 모두가 연구노동자의 길을 걸어왔다. 그 중에는 앞으로도 그 험난한 길을 자처해 걷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같은 목소리로 연대해야만이 파업이 파업일 수 있고, 투쟁이 투쟁이 될 수 있다. 그게 바로 이제 우리가 더 이상 빈약한 빵조각이 아닌 두툼한 ‘빵’, 시들어버린 꽃잎이 아닌 더 붉고 탐스러운 ‘장미’를 원하는 이유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1:4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