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란 무엇인가?

이상욱 (한양대, 과학기술철학)


  ‘오늘의 과학’에 대해 논하려면 우선 과학이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그런데 이 뻔해 보이는 질문에 답하기 쉽지 않다. 과학이라 부를 수 있는 ‘현상’이 시대나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많은 ‘과학’ 중에서 ‘진정한’ 과학을 규정하고 나머지는 사이비 혹은 미성숙 과학으로 제외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논의를 위해서는 일단 과학을 21세기 맥락에서 서구 자연과학 전통에 따른 연구로 제한하자. 물론 여기서 ‘서구’라는 수식어는 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자연과학 연구 방식이 서구, 특히 16-7세기 유럽에서 규정된 방식의 연장성 상에 있다는 뜻이지 지역적으로 서양에만 국한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의미의 서구 자연과학은 자연에 대한 탐구를 넘어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쳐, 19세기의 사회과학의 탄생과 최근 인간에 대한 과학적 탐구, 즉 인간과학의 성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혹자는 아무리 과학이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더라도 그 모든 ‘과학들’이 ‘자연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한 합리적 탐구’라는 공통점으로 묶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타당하려면 ‘자연’, ‘지식’, ‘합리적’ 등의 용어에 대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과학 연구자들이 상당히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점을 애써 무시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근대 역학을 완성한 뉴턴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연금술과 신학을 꾸준히 연구했다. 연금술과 신학은 현대 기준에 따를 때 ‘자연’에 대한 ‘합리적 탐구’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당시의 자연철학자들이 공유하던 ‘자연’이나 ‘합리적 탐구’에 대한 기준에 따르면 연금술은 역학이나 천문학만큼이나 엄연한 과학이었다. 연금술은 영어로 alchemy인데 이 단어의 정확한 연원은 논쟁적이지만 적어도 물질의 구성 성분과 변환을 다루는 화학의 옛 형태라는 점은 분명하다. 당시 ‘옛 화학’에 따르면 물질 변환을 통해 금을 만드는 것이 씨앗이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리적으로 가능했다. 그러므로 뉴턴이 연금술에 몰두했던 이유는 금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라 역학을 통해 물질 운동의 원리를 탐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연금술을 통해 물질 변환의 원리를 탐구했기 때문이다.

  한편 신학 연구는 당시에도 자연철학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뉴턴은 자신의 자연철학이 신의 지속적 개입을 강조하는 자신의 독특한 신학적 견해와 동전의 양면처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흔히 뉴턴의 세계를 ‘기계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실은 시계를 만들고 태엽을 감은 뒤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우주만큼이나 뉴턴의 생각과 거리가 먼 것도 없다.

  또한 뉴턴은 자신이 제안한 역학 법칙을 고대인들은 이미 모두 알고 있었으며 그 내용이 성경의 여러 판본에 숨겨진 형태로 담겨있다고 믿고 성경 연구에 몰두했다. 중요한 점은 뉴턴이 자신의 연금술 연구와 신학 연구를 자신의 역학 연구와 광학 연구와 완전한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즉, 역학 연구와 광학 연구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은 과학자 뉴턴이 자신의 개인적 취미 활동으로 연금술 연구와 신학 연구를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대 기준에서 역학과 광학은 과학이지만 연금술과 신학은 과학이 아니다. 하지만 뉴턴의 ‘과학’에서 이 네 가지 지적 추구는 서로 유기적 방식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과학은 누구에게나 명백한 ‘자연’에 대한 누구에게나 명백한 ‘객관적 지식의 추구’라는 식으로 물화되기 보다는 구체적인 개별 과학자와 그가 속한 과학자 공동체가 나름의 방식으로 수행하는 노력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 결국 과학의 본질은 고정된 방법론이나 획일적 정의가 아니라 과학 연구 과정의 복합적 특징으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것이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인지와 그 주제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시대나 지역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 과학 연구의 특징은 무엇일까? 다음 호에서 그 주제를 다뤄보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3: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