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정확히 사랑하기 위해서



바야흐로 봄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새 학기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서울 시내 상당수 초·중·고등학교들이 체험학습 장소로 광화문에 위치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채택했다고 한다.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 최초의 현대사박물관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청소년에게 역사의식을 주입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처럼 보인다. 그러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박물관을 찾은 아이들은 이곳에서 어떤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나게 될까.

박물관에 입장한 아이들은 먼저 제1전시실의 어둡고 좁은 통로를 지나게 될 것이다. 제1전시실은 1897년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를 다룬 전시실이다. 다음으로 아이들은 한 층을 올라가 제2전시실에 입장할 것이다. 1945년부터 1960년까지의 역사를 다룬 두 번째 전시실 역시 어둡고 좁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제3전시실은 어떨까. 박정희 집권 시기를 다룬 제3전시실에서 아이들은 갑작스럽게 넓고 환해진 전시장 풍경에 놀라게 될 것이다. 전시실 벽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과를 나타내는 형형색색의 도표들이 걸려 있고 전시실 바닥에는 새마을 운동의 성과를 나타내는 실물 크기의 모형들이 큼지막하게 놓여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시원하게 틔워질 것이다. 실로 박물관의 4개 전시실 가운데 박정희 정권 시기의 전시실만이 40% 이상 크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이곳에서 보고 느낀 이른바 ‘체험한’ 대한민국의 역사는 진실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상설전시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박정희 신화일 뿐이다. 4·19혁명으로 탄생한 민주정부를 군사 쿠데타로 타도한 반헌법적 인물 박정희는 이곳에서 여전히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되고 아이들은 애국독재라는 모순적인 개념을 자기도 모르게 주입받게 된다. 이미지의 여운은 길고 강력하다. 교과서에서 읽은 글이나 교단에서 교사가 읊조리는 말보다 화려한 영상과 실물 모형으로 전달되는 이미지는 아이들의 뇌리에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계획이 발표되던 당시 전국 역사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의 치적을 찬양하고 보수적인 역사의식을 강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박물관 개관 당일에는 464개 시민사회단체가 연합한 역사정의실천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물관의 제반 문제점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물관 개관 1주년이 훌쩍 지난 지금, 누적 관람객 수는 이미 백만 명을 넘어섰는데도 박물관 상설전시는 수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역사학계에서 박물관 전시구성의 문제점을 상세히 보고한 연구를 제출하여 경종을 울리기도 했지만 변화는 없다.

박물관을 뜻하는 museum이라는 단어는 ‘묘지’를 뜻하는 그리스어 mausoleum과 친족관계에 있는 단어라고 한다. 박물관이 잠시나마 죽은 자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암시해주는 어원이다. 4·19혁명의 교훈이 스러진 자리에서 박정희의 독재 전력은 교묘히 옹호된다. 이처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현재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 전선에서 물러난다면 죽은 자들조차 결코 안전할 수 없으리라는 역사의 교훈을 가르쳐주는 듯하다. 이제 봄이 깊어지면 다시 수만 명의 청소년들이 배움을 찾으러 이곳을 방문할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릇된 배움을 평생 간직하는 일이 없도록, 그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확히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현재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는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

선민서 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4:0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