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발언대]

우리(We)와 나(I)



우리들은 바쁘다. 몸도 바쁘고 마음은 더 바쁘다.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가 별로 없다. 주어진 시간을 채운다고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에 위안 삼을 핑계도 없다. 더더욱 각자 철저한 자기관리와 시간계획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빈둥거린다는 편견에 맞닥뜨릴 때면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곁눈질 하지 않고 뒤쳐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런 마음가짐이 사실 새롭지는 않다. 늘 해오던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워낙 경쟁에 익숙해져서 인지 무언가에 쫓기는 자신이 낯설지가 않다. 학교를 오가면서 청소노동자들 투쟁의 흔적이 학교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대체 무슨 일인지 잠시 관심을 가져볼까 싶다가 곧 대학원 수료생에게 수료비를 부과한다는 원총의 대자보에 온 관심이 쏠려버린다. 수료비는 당장 나의 일이지만 청소노동자의 일은 일단 당장 나의 일은 아니다. 건너건너 어찌어찌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일단 나에게 오는 직격탄은 아닌 것 같다. 다시 내 앞에 닥친 일에 집중한다.  

청소노동자들이 여기저기 붙여놓은 글들 중에 ‘가족’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 개봉한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에서 따온 문구이지 싶다. 운동권하고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고 ‘노동’이라는 단어 그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배웠는데 그런 우리나라에서 이제 더 이상 투쟁이니 노동문제니 그런 것들은 젊은 치기 혹은 나서기 좋아하는 이들의 폼잡기일지도 모른다는 다소 과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강사문제를 두고 한창 본관 앞 투쟁이 있었을 때에도 언젠가 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이슈였지만 역시 큰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당장 내 눈 앞에 닥친 과제가 더 급했고 시험이 더 중요했다. 이 모든 생각들이 서열화된 사회구조에 길들여진 나머지 길러지지 못한 ‘함께’라는 연대의식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 젊은층의 개인주의가 심화되었다는 통계자료를 접하면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주의라는 것이 나만 생각한다는 뜻은 분명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한 국가일수록 개인주의의 정도가 올라가게 되는데 선진국들을 보면 개인주의뿐만 아니라, 연대의식과 공동체 의식도 함께 강한 경향을 나타내곤 한다.

소치 동계올림픽 선수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스포츠 선수들은 코치가 있고 함께 훈련하는 동료가 있고 트레이너가 있다. 그들은 팀이다. 선수 혼자서는 저 자리까지 갈 수 없었겠지. 우리도 학교에서 팀플을 하고 공동연구를 하고 논문 게재 시 공동저술도 한다. 일상에서 공부할 때에도 토론과 세미나가 이루어지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정규수업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나 스포츠선수들이 꾸리는 팀처럼 끈끈하지는 않다. 열악한 학문 풍토 탓일까. 아니면 교육 전반, 우리들의 의식 기저에 깔린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것일까.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학부 때까지와는 확연히 다르다. 누가 더 빨리 외우고 누가 더 정답을 많이 맞히느냐가 아니라, 그 누구도 밝히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해내고 발전시켜 나아가는 과정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각자의 전문화된 분야에서 서로의 지식을 모으는 일일 것이다. 그런 우리 대학원생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자세는 나의 외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아닐까. 머리와 행동이 따로 움직이는 자신에 대해 식상한 반성을 해본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1:5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