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발언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여기 재미있는 수수께끼가 하나 있다. 내 것이지만 나보다 남들이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정답은 이름. 누구나 여러 이름으로 산다. 대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될 텐데 직업이나 직함이 그러한 이름을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면 직업에 따른 호칭이랄까 직함이랄까 그런 것이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꽤 오랫동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생으로 살았기에 내가 어떻게 불리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강단에 서면서부터 이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물론 그 처음은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출발한다. 학생들은 나를 ‘교수님’이라 불렀는데, 1학년의 한 학생은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선생님’과 ‘교수님’을 섞어 쓰고는 그에 대해 죄송하다고 한 적도 있었다. 십여 년 전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나는, 나를 가르쳐 주시는 모든 분들을 선생님이라 불렀다. 간혹 어떤 친구들은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했는데 그러한 경우는 소수였다. 언젠가 한번은 전임교수인 모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교수란 당신의 직업을 가리키는 지칭어이므로 호칭어로는 적절하지 않으므로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하신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학생들은 강단에 서는 교수자들을 대부분 교수님이라 부른다. 물론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존대의 표현임을 알고 있다. 또 어떤 학생들은 중고등학교의 선생님은 선생님, 대학교의 선생님은 교수님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떤 학생들의 경우에는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 선생님과 교수님을 구분한다고도 들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들을 때마다 어딘가 불편해지는 것은 아마도 ‘나는 교수가 아닌데……’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호칭의 문제는 교직원분들과의 대화에서도 생겨난다. 출강하는 학교마다 풍토나 분위기가 다르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교직원분들이 시간강사를 부르는 호칭도 제각각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전임교수 시간강사 구분 없이 모두 교수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학교에서는 이를 구분하여 시간강사에게는 강사님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론 선생님이라 부르는 분들도 많다. 이는 또한 시간강사들이 머무는 공간을 부를 때도 적용된다. 어떤 학교에서는 이를 ‘교수 휴게실’이라 부르고 또 어떤 학교에서는 ‘교강사 휴게실’이나 ‘외래 교수 휴게실’이라 부르기도 하며 ‘강사 휴게실’이라 부르는 학교도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선생님’을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높여서 이르는 말’로, ‘교수’를 ‘대학에서, 전문 학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소개하고 있다. 즉, 사전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교수란 ‘대학 및 대학에 준하는 고등교육기관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연구에 종사하는 교원’을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교수일까 아닐까.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연구에 종사하는 교원이 맞지만 그 학교에 취직하여 정년을 비롯한 여러 가지 권리를 보장 받는 교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수가 아니므로 교수라 불리지 않는다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강사님으로 불릴 때 뭔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데 있다. 강사가 맞기에 강사라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 그러한 호칭이 기분 좋게 들리지 않는 까닭은 그 말 안에 교수와 강사를 구분하는 인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분은 단순한 구분이 아닌 차별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강사님으로 불릴 때마다 시간강사라는 나의 신분과 관련하여 복잡한 마음이 교차할 뿐만 아니라 정말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 점점 더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므로 적어도 학생들에게만은 선생님으로 불리고 싶은 마음, 교수님도 강사님도 아닌 그저 선생님으로 불리고 싶은 마음은 너무 소박하거나 안일한 바람일까, 아니면 너무 낭만적이거나 원대한 꿈일까.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3:5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