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150년-텍스트인가, 사회적 관계의 분석 방법인가?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인 1867년 9월 14일에 1권 초판이 출판된 󰡔자본론󰡕은 마르크스의 많은 저작 중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간주된다. 물론 󰡔자본론󰡕은 전체 6부작으로 구성되었던 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 기획 중 일부였고, 마르크스가 사망하기까지 2권과 3권은 미출판 초고 상태였다는 점에서 미완의, 그리고 개방된 텍스트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론󰡕은 당연하게도 고정불변의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자본론󰡕 텍스트를 천착하는 작업이 무의미하거나 혁명적 실천과 무관한 ‘학술주의’로 기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자본주의의 사회적 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방법은 󰡔자본론󰡕을 경유하지 않고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이며,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라 불리는 현상은 상당 부분 ‘마르크스 없는 마르크스주의’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자본론󰡕 1권 출판 150주년을 맞은 지금, 다시금 마르크스의 텍스트의 엄밀한 독해가 요청된다. 이는 마르크스의 ‘무오류’를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 기획의 공백과 모순까지 고려해 이를 확장하고, 이에 기초해 현재의 사회적 관계를 분석해 탈자본주의 코뮌주의 대안을 실천할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이다. 지난 8월 발행된 󰡔마르크스주의연구󰡕 가을호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해 기획된 연속 특집의 전편이다.

‘비판적 교육학’의 그람시 사상 이해 비판

곽태진은 ｢그람시 사상에 나타난 사회변혁과 교육의 관계｣에서 안토니오 그람시의 교육 개념을 ‘교육을 통한 사회변혁’이라는 명제의 근거로 활용하는 ‘비판적 교육학’의 입장을 비판한다. 여기에서 ‘비판적 교육학’이란 좁은 의미에서 학교를 ‘저항의 공간’으로 간주하는 ‘저항론’의 입장에 있는 교육학을 의미한다. 그람시 사상은 비판적 교육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이들에게 그람시의 견해는 학교와 교육의 자율성을 대단히 강조하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람시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그람시는 경제적 토대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또한 그람시는 교육의 역할을 강조했을 뿐,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명제는 ‘교육을 통한 사회변혁’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둔 근본적 사회변혁이었다는 것이 곽태진의 주장이다.

우선 그람시의 교육 개념을 살펴보면, 그의 교육 개념은 매우 넓은 범위를 포괄한다. 그람시에게 교육은 인간 의식의 형성과 변화 전반을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그렇기에 그람시에게는 비단 학교뿐 아니라 교회, 정당, 언론 등의 시민사회 조직들도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여기에는 “개인들의 동의와 협조를 확보”하기 위한 교육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국가도 포함된다. 이러한 교육 조직들, 즉 국가와 국가에 의해 동원된 학교 및 그 외 시민사회 조직들은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유지를 위해 교육 기능을 수행한다. 반면 혁명정당의 경우 노동계급의 헤게모니를 형성하기 위한 교육을 담당한다. 각각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의 헤게모니 형성에 기여하는 대표적인 조직은 학교와 정당이며, 이 두 조직은 대중의 일상적 의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람시에게 중요하다.

혁명정당의 교육은 크게 정당 외부의 피지배계급 대중에 대한 것과 정당 내부의 구성원들에 대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정당의 교육적 목적이 ‘노동자계급 헤게모니의 형성’임을 고려할 때 핵심은 전자이다. 외부를 향한 혁명정당의 교육은 우선 대중들이 정당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어 피지배계급 대중 일상의 모순된 의식인 ‘상식’을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인 ‘양식’으로 향상시킴으로써 대중들의 계급의식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이 교육의 목표이다. 한편 그람시는 대중의 지적 수준 일반을 향상시키는 것 또한 정당교육의 과제로 제시했는데, 이 또한 앞서 언급한 의식 수준 향상을 뒷받침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교육은 노동자계급이 사회변혁의 담지자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회변혁을 ‘준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한편 그람시는 대안적 학교로 ‘보통학교(The common school)’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그람시가 당대에 젠틸레 교육개혁에 따라 직업학교가 득세하던 현상을 비판하면서 “일반적이고 인문적이며 인격형성적인 교양을 제공하는 보통기초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인문적인 기초교육이란 최종단계에서 연구와 인식의 방법을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터득하게 하는 교육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그람시가 이와 같은 보통학교가 당대에 바로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관계’가 출현한 사회에서 가능한 것임을 밝혔다는 점이다. 즉 그람시가 말하는 보통학교는 노동자계급과 그 동맹 세력들이 운영하는 국가에서 운영되는 것이지, 당대의 지배계급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 유념해야 한다.

이와 같이 볼 때, 그람시에게 교육은 사회변혁 이전과 이후에 중요한 역할을 할지언정 그 자체로 사회변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혁명정당의 교육은 사회변혁 이전에 변혁을 위한 문화적 조건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로 변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대안학교(새로운 학교교육) 역시 새로운 문화적 상부구조를 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이는 새로운 사회에서 운영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즉 ‘교육을 통해 사회변혁을 한다’와 ‘사회변혁의 과정에서 교육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서로 구별되어야 할 주장이며, 교육학에서 그람시의 사상을 원용하기 위한 논의는 그의 사상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조감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곽태진의 결론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초래한 특수한 주체화과정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한상원은 ｢마르크스의 ‘자동주체’ 비판-정치경제학 비판과 비판적 주체이론의 재구성｣에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수한 주체화양식에 대한 비판이론으로 해석했다. 안토니오 네그리 등의 자율주의적 해석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은 주체의 문제에 무관심한 것이라 비판되지만, 한상원이 보기에 이러한 지적은 비판과 서술을 통일시키는 마르크스의 특수한 서술전략에 대한 오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그리고 그 운동의 진행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즉 마르크스가 주체의 문제에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라, 그가 분석한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가 “주체 없는 과정”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특수한 주체화양식에 대해 분석함으로써 대안적 주체화를 전망하기 위한 선결과제를 수행했다는 것이 한상원의 주장이다.

마르크스는 화폐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상품의 가치형식과 주체의 사유형식이 맺는 관계를 암시했다. 인격적 예속관계가 사라진 근대 경제체제에서 보편적 권력으로 작동하는 것은 일반적 등가물인 화폐이다. 교환가치, 즉 화폐 형태로 표현된 가치는 각 상품의 질적 특수성을 사상시킨다. 각 상품 간의 질적 차이는 양적 관계로 환원되며, 추상화된 “상품 질의 동질성(Dieselbigkeit ihrer Qualität)”이 그 양적 차이의 전제조건이다. 실재하지 않지만 관념적으로 가정된 사물들 사이의 질적 동등성은 개인들의 인식론적 동일성으로 확장된다는 점에서, 화폐는 개별 주체들의 의식과 사고를 선험적으로 근거 짓는 보편적인 지배의 관계망을 창출한다.

또한 위와 같은 추상화 과정은 노동시간과 개별 노동의 질적 특수성 등의 대상화를 통해 개인의 구체적 노동을 추상적 일반 노동으로 포섭한다. 이는 서로 다른 개인들이 생산한 노동이 그 구체적 형태가 아니라 자본의 지휘와 규율 등을 통해 결합된 사회적 힘으로서만 기능함을 의미한다. 또한 그러한 사회적 통일성을 창출하는 권력인 자본은 인류의 지적 발전 역시 그 안에 포섭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의 사회적 삶 자체가 하나의 생산력이 되며, 이는 개별 주체의 고유한 삶의 방식이 소멸됨을 뜻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포섭되는 순간부터 개별적 주체들이 ‘자동적으로’ 집단적 생산관계의 ‘기관’으로서만 주체화되는 이 과정을 마르크스는 “자동주체(ein automatisches Subjekt)”라 불렀다. 여기에서 ‘주체’란 인간이 아니라 인격화된 사회적 관계에 붙는 이름이며, 이러한 명명을 통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의 자기운동이 개별 주체들에 맞서고 그들의 사유와 행동을 지배하고 있음을 나타내고자 했다. 알튀세르 역시 “주체 없는 과정”에 주목했지만, 그가 이러한 과정이 역사 전체에 적용된다고 본 것과 달리 마르크스는 ‘특수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그 둘은 구별된다.

논의의 결론 부분에서 한상원은 마르크스의 비판적 서술로부터 해방된 대안사회에서의 개별주체를 이론화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읽어낸다. 특히 해방된 대안사회는 생산과 소유가 원래적 의미로 되돌아감으로써 주체의 실현을 가능하게 한다. 우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극복된다면, 앞서 살펴본 사회적 생산력은 사회의 보편적 발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이는 노동자의 생산이 ‘원래적 의미의 생산’, 즉 노동자 자신의 재생산과 관련되며 인간 그 자신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으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생산력의 해방이란 인간이 더 이상 양적인 의미의 생산력에 종속되지 않고 각 개인이 자신의 개체성과 고유성을 실현하는 자기해방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소유의 측면에서, 자본주의에서의 사적 소유가 아닌 ‘개인적 소유’가 해방된 주체의 규범적 근거가 된다. 마르크스가 비판한 소유란 ‘소유’ 자체가 아니라 토지나 생산수단 등을 소수가 독점함으로써 대다수 사람들을 ‘무소유’의 상태로 만드는 ‘사적 소유’였음에 유념해야 한다. 오히려 원래적 의미의 소유는 ‘주체의 자기조건에 대한 형성’이라는 점에서 주체의 해방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소유관계는 결국 생산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으로, 해방된 사회에서도 생산과 소유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즉 해방된 소유(개인적 소유)란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 공통의 통제 속에 자신의 고유한 개체적인 삶을 누릴 권리를 의미한다.

요약하자면, 생산의 원래적 의미는 주체의 자기 재생산이며, 소유의 원래적 의미는 주체의 자기조건에 대한 형성이다. 물론 생산과 소유의원래적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인 물질적 생산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가 회고론자, 혹은 복고주의자가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 정설 마르크스주의는 생산수단에 대한 집단적 통제를 변혁의 목적으로 설정하고, 그 목적이 달성되면 개인의 자유는 자동적으로 보장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위와 같이 볼 때, 생산수단의 사회적 통제는 해방된 소유에 이르기 위한 수단, 그러나 필수적인 과정을 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한상원의 결론이다.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두 가지 대안과 그 접점

-‘소외’의 지양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놀이’

오창룡은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도시 비판과 그 대안-‘일원적 도시론’과 ‘일반화된 자주관리’를 중심으로｣에서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이 제시한 대안 사회의 특징과 함의를 분석한다. 1957년 결성된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Internationale Situationiste) 그룹은 1968년 5월 운동뿐 아니라 1970년대 사회 비판 담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들의 이론에는 상이한 기원을 갖는 두 개의 유토피아가 제시되는데, 하나는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운동에 뿌리를 둔 ‘일원적 도시론(urbanisme unitaire)’이며 다른 하나는 파리 코뮌과 러시아 소비에트의 전통을 잇는 ‘일반화된 자주관리(autogestion généralisee)’ 이념이다.

‘일원적 도시론’은 기능주의적인 합리성이 초래한 공간의 획일화와 파편화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즉 자본주의화된 도시를 재구성하기 위해 예술과 기술을 총체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이론으로 그 핵심적 방법은 ‘표류(dérive)’이다. 목적지를 향한 직선적 움직임과 측량된 양적인 공간을 거부하기 위한 ‘표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직접 실천된 구체적인 행위였다. 상황주의자들은 ‘단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행위’인 이 방법을 해방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릴라 활동이자 하나의 ‘놀이(jeu)’로 규정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상황주의자들에게 놀이는 삶의 핵심이며, 재구성을 통해 혁명의 기획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표류’와 같이 미적이거나 공학적인 관념과 일상생활 비판만으로는 사회 혁명에 이를 수 없음을 인식한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이 후기에 이르러 발전시킨 비전이 노동자평의회, 혹은 ‘일반화된 자주관리’이다. 전위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의 자발성을 운동의 중심으로 본 이들은 반국가적인 자주관리의 실현을 위한 노동자평의회의 원리야말로 현존 질서를 무너뜨릴 유일한 것임을 강조했다. 또한 그 원리가 정치와 경제, 나아가 모든 일상으로 확산될 때 새로운 사회조직 건설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앞서 살펴보았듯 상황주의자들이 제시한 두 가지 대안은 각각 ‘일상생활 비판과 문화운동’, ‘사회혁명과 정치운동’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상이하다. 그러나 오창룡에 따르면, 그 간극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이론 속에서 조정되고 둘 사이의 연속성이 유지된다. 첫째는 두 대안 모두 인간의 ‘소외’를 지양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즉 사람 간의 만남과 참여의 가능성을 흡수해버리는 도시에 대한 비판이든, 노동자와 생산물의 분리와 생산자들 간의 소통 단절에 대한 비판이든 두 대안은 모두 ‘소외’의 문제에 주목한다. 둘째는 두 대안이 각각의 중점적 요소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선 ‘일원론적 도시론’의 기획은 순간적인 일탈이 아니라 파편화된 인간관계의 복원이라는 매우 공동체적인 지향점을 지닌다. ‘자주관리’ 이념 역시 공동의 여가와 놀이를 강조하거나 ‘축제로서의 코뮌’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일원론적 도시론’과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이와 같이 두 방향의 대안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때에만 ‘일탈’과 ‘구성’이라는 1968년 5월 운동의 두 측면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오창룡의 결론이다. 끝으로 오창룡은 소외의 집단적 극복을 매개하는 놀이와 축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업이, 지금은 멈춘 2016년 촛불시위에서의 대중 축제를 분석하는 데에도 참조점을 제시함을 밝히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 있다.

■ 문장원 기자 creep0927@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