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인터뷰 : 이진영 대표 구속사건 무죄

‘노동자의 책’ 대표 무죄판결, 그 의미와 맥락을 짚어보다

지난 7월 20일, 이적표현물 반포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던 ‘노동자의 책’ 대표 이진영 대표가 1심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노동자의 책’은 공공도서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회과학서적에서부터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80년대의 사회주의 관련 서적까지 아우르는 전자도서관이다. 2013년경부터 공안기관의 사찰을 받아 온 이진영 대표가 구속된 것은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올해 1월 초의 일이었다. 법원은 이진영 대표가 해당 서적을 취급·반포함에 있어 이적목적성을 갖지는 않았다고 판단, 무죄 판결을 내렸다. 탄핵 정국에 틈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박근혜 공안정치’의 뻔한 시도는 이로써 저지된 셈이다. 사법부는 ‘노동자의 책’ 대표의 재판 과정에서 촛불 이후 국면의 변화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보안법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운용된 이번 판결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와 같은 사건이 이후에도 얼마든 다른 형태로 변주될 위험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이번 사건의 앞뒷면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본지에서는 변호인단 측 전문가 증인으로 재판에 참석한 천정환 교수(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만나 지성사와 검열사의 맥락에서 이 사건이 갖는 의미와 주목해야 할 점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천정환 교수는 한국 지성사와 문화사를 연구해왔으며 검열 및 사상통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지녀온 바 있다.

건재한 국가보안법과 공안세력

천정환 교수는 두 가지의 직접적 요인이 이번 ‘노동자의 책’ 사건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로는 일제 강점기 치안유지법에서 유래하여 내전과 학살을 통해 성립·제정된 국가보안법이 대한민국의 실정법으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초법적인 힘을 지닌 국보법은 ‘민주화 이후’에도 폐지되지 못한 채 민중운동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적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둘째, 실질적인 사상통제와 탄압의 주체로서 ‘공안활동을 직무로 삼는 공무원들’의 존재이다.

“이 사건은 경찰청 보안수사4대에 의해 만들어진 사건입니다. 87년 1월 박종철을 고문하여 죽인 남영동 대공분실과 실질적으로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죠. 이런 기구는 다양하며 중복되기도 하는데, 경찰과 검찰의 공안 관련 부서, 국정원, 기무사 등이 서로 협업을 해서 공안사건을 만들어온 시스템이 있습니다. 공안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광범위한 의미의 공무원들이 있는 겁니다. 만약 이들의 역할이 필요 없는 것이 된다면 그런 직무와 시스템도 사라지겠죠. 물론 냉전 체제 하의 남한에서는 공안 공무원에 속하는 사람들이 늘 권력을 잡아왔고, 김기춘이나 황교안 같은 사람들이 그 최고봉에 있는 것이죠. 하지만 옛날처럼 진보적 혁명을 꿈꾸는 사람으로 조직된 독서회를 두고 간첩단이라고 누명을 씌우는 식의 공안활동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단지 오래된 책들을 취급하는 디지털 아카이브를 문제 삼는 식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공안세력으로선 시기가 적절치 않았던 셈이죠. 하지만 국가보안법과 공안세력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건재하고 또 공안세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와 같은 사건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어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 폐지의 목소리가 다시금 부각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 정부에서도 딱히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생각은 없어 보여요. 이미 2003-2005년 사이에 국보법을 폐지·개정하려다 크게 실패한 기억이 있어서 선뜻 다시 꺼내들기 어렵죠. 남북관계를 비롯한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밝아져야 가능할 것이고, 또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의 공소 내용과 변호인단의 반론

검찰도 촛불 국면 이후의 변화와 여론의 질타를 의식해서인지 공소내용을 변경했다. 구속 때의 ‘이적표현물’로 제시한 도서목록을 절반가량 줄이는 대신, 피고인이 과거 국보법으로 처벌받았다는 사실과 핵실험과 군사도발을 강행하는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을 공소장의 모두(冒頭)에서 길게 강조했다.

검찰은 과거 이진영 대표가 ‘혁사노’(혁명적 국제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추진위원회)에서 폭력혁명을 주동하고 철도노조(전국철도노동조합)에서 불법파업을 주도한 정황까지 예거했다. 구체적으로는 이 대표가 ▲사이트 ‘노동자의 책’에 PDF파일로 이적표현물을 “반포”했으며 ▲인터넷 중고서점을 통해 이적표현물을 “판매”했고 ▲지하 작업실에 김일성 3부자를 찬양하는 내용의 이적도서 26종 이상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위 사실들에 근거해 검찰은 이 대표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동조할 목적 또는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할 목적”을 지녔다고 추론했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피고인이 배포한 게시물에 북한이나 김일성 등을 우호적으로 표현하고 있거나 그 외 급진적인 주장이 실려 있다는 것만으로 이를 이적 표현물로 의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 대표가 사이트에 게시한 3979개의 이적 표현물 중 기소된 것은 총 64개로 전체의 1.6%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이적 목적이 있다고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문제가 되는 게시물은 상당수가 인문·사회과학 서적 중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중반 사이에 출간된 것으로,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하기는 힘들지만 국립 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서도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를 두루 고려할 때, 이 대표가 사이트 개설 이유로 밝힌 다음의 내용은 설득력이 있으며 그 이상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 다중 인문사회과학 전자도서관『노동자의 책』은 비판적,변혁적 인문사회과학의 부활을 위해 활동한다. ■ 다중 인문사회과학 전자도서관『노동자의 책』은 사회과학적 교양인, 인문학적 교양인의 창출과 확대를 위해 활동한다.

공안-주체는 복고 마니아

“증인신문 과정에서 제가 힘주어 말했던 것은 이 사건이 30년 전에 ‘이미’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문제가 된 책들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중반까지의 공안사건에서 불온시된 옛날 책들로서 더 이상 팔리지도 않고 일부 연구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지 않는 책들입니다. 아직도 그런 책들을 보고 거기에 쓰인 방식 그대로의 혁명을 생각한다면, 현실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겠죠. 그런데도 여전히 “그런 책들이 지금도 위험하다, (그런 책을 소지·유포하는 사람은) 상존하는 북한의 위협 도발에 동조하는 세력이다”라고 말한다면 동의하기 어렵다고 재판장에게 말했습니다. 더불어 얼마나 이 사건이 상투적이고 복고풍의 성격을 띠는지, 그래서 80년대 지성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했어요.”

이적목적성은 인정 못하나 이적성은 인정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이 대표의 무죄를 선고하며 변호인단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대표의 행위가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할 목적이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이적목적성)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미칠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결에서 “이 대표가 소지한 도서 중 일부에 이적성이 있고 이를 반포한 것도 인정된다”고 하여, 변호인단의 주장을 전부 수긍하지는 않았다. 천 교수는 재판부가 검사측이 제시한 도서목록에 대하여 일일이 이적성 여부를 검토하는 등,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고 말했다. “해당 재판부는 아마 이 사건을 처음 다루어보는지, 심도 있는 고민을 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이적성을 판단한 내용을 보니까, 김일성 주체사상과 관련된 작품들은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한 반면, 북한에서 나온 사회과학 서적이더라도 직접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하거나 남한 체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판단했어요. 아마도 그런 표현에 대하여 양적 판단을 한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김일성을 찬양한 정도가 기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을 권력의 반공 규율화가 약화되었다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크게 보면 ‘노동자의 책’의 활동이 이적성이 있는가를 판단하는 문제에서 재판부가 전향적으로 판단한 건 맞습니다. 여론과 정세의 상황을 고려하여 탄력적으로 법을 해석한 거죠. 변호인단은 이번 판결을 좋게 평가해주는 듯 보였어요. 그러나 판결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국보법 자체를 부정하거나 국보법이 헌법과 갖는 모순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죠. 아주 획시기적인 판결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선과정에서의 주적 논란에서 보듯이 ‘적’의 정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이적성’ 또한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이적’을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이 남아있는 한 남한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자유민주주의나 표현의 자유는 성립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식의 ‘범죄구성’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인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다음에 ‘노동자의 책’과 비슷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고 또다시 무죄 판결이 내려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점차 사람들은 검찰의 공안활동이 괜한 짓이라고 생각하게 되겠죠. 그렇게 국보법이 사문화되는 과정을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분단 상황이 배경으로 존재하는 한, 공안세력이 언제든지 귀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겠습니다.”

■ 반재영 기자 qkswodud1044@korea.ac.kr

■ 김유동 기자 kkndyut121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