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노래, 혁명의 노래] 장기하, ‘싸구려 커피’ (2008)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이경준(대중음악평론가)



예술가의 위장을 노래한 혁명가

주지하다시피 일상의 본질은 반복과 단조로움이다. 예측불능의 세기말을 건너, 세계가 자유롭게 소통하고 교류한다고 하는 21세기 첨단 글로벌 사회에 진입했다고 해서 사정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더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당하는 이 땅의 젊음들에게 하루하루란 괴로움으로 가득한 나날임에 틀림없다. 차디찬 경제논리와 소수점 단위까지 상세하게 계산된 취업률이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척도로 자리한 지금, 그나마 일거리를 위해 뛸 자리가 마련된 20대는 ‘행운아’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이 더부룩한 현실과 그럼에도 다가올 내일이라는 중압감 앞에 지쳐만 갈 뿐이다. 여기 이 시대 청춘들의 씁쓸한 마음을 진솔하고 정확히 담아낸 고백록 하나를 틀어놓는다. 바로 장기하의 싱글, ‘싸구려 커피’다.

그렇지만 당연한 의문을 제기해봐야 한다. 남자라면 누구나 겪었을 군대에서의 에피소드를 위트 있게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혹 ‘저항의 노래’라기보다는 어리석은 ‘룸펜의 노래’에 더 가깝지는 않은지. 어쩌면 꿈 없이 살아가는 것을 훈장처럼 여기고, 사회의 모순보다는 내면의 경제에만 골몰하는 젊은 군상들의 ‘자기한탄’이지는 않은지. 실제로 그렇게 볼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곡은 이제 버라이어티나 쇼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이 익숙해진 어느 확 떠버린 가수의 잊고 싶은 기억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예술작품이 그 내부에 미래의 완성된 모습을 온전히 잉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곡과 그 주인에 대한 여러 가지 삐딱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자리에서 제법 우호적인 시각을 내비칠 생각이다.

이 곡이 가진 파괴력은 비단 2000년대의 비참을 고발하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송골매와 산울림을 비롯한 한국 록의 고전들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그의 고증학적 태도는 포크 록과 한국적 로큰롤의 뿌리를 이으려는 무엇이었으며, 가사에서 묻어나는 진중함과 위트는 인디 씬이 성립된 이후 가장 흥미로운 즐거움 중 하나였다고 해도 좋았기 때문이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 붙었다가 떨어진다/ 뭐 한 몇년간 세숫대야에 고여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그 진정성을 조사해볼 수는 없지만, 잠시 내용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살포시 웃음을 머금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해학과 그를 통회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삶의 고달픔은 예술가가 저 멀리 떨어진 곳에 홀로 앉아 우아하고 세련되게 작품을 그려내는 ‘아름다운 영혼’이라기보다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세상과 고투를 벌이며 전쟁보다 더 전쟁같이 작품을 토해내어야 하는 존재임을 입증한 것이었다. 찰스 부코우스키가 잘 지적했던 것처럼, “예술가의 위장은 그 어느 것보다 위장에 달린 문제”였던 것이다. 장기하는 누구보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예술은 악과 깡으로, 그리고 정신력으로 하는 것”이라는 금언은 예술의 발생학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헛소리임을 그는 노골적으로 밝히고야 말았다. 그 누구에게라도 그러하듯 예술가에게도 위장은 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먹고 살아야만 하는 존재이니까. ‘싸구려 커피’는 이 시대 청춘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투영한 상관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예술의 조건과 가능성을 탐구한 최초의 노래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미시적 층위에서 울려퍼진 혁명가이자,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심급의 혁명가이기도 했다.


‘아래’가 아닌, ‘다른 곳’으로부터의 물줄기

장기하는 이 한 곡으로 인디의 영역을 벗어나 전국구 스타로 등극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발매된 정규 1집의 반향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 모든 사태의 진앙은 바로 이 싱글, ‘싸구려 커피’였다. 그러나 이 한 곡으로 그를 옭아매려고 했던 것은 너무 가혹한 판단이었음을 이후 벌어진 사건들은 말해주었다. 운율과 리듬을 고려한 사려 깊은 작사는 1집과 2집을 통해 하나의 브랜드로 엮일 만큼 확장되었으며, 밴드 ‘얼굴들’과 함께 장기하는 한국 록 통사의 한 자리에 자신을 확고히 못 박으려는 듯 자신감 있는 행마를 지속했기 때문이었다. 영리하고 기민하게도 그는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 밴드 멤버 전부가 편곡과 믹싱 작업에 참여하게 했으며, 이는 장기하가 ‘밴드 음악인’으로서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시발점은 커피 한 잔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예술가는 일상 속에서 익숙하게 존재하던 것을 익숙하게 바라보는 관행적 자세와는 다르게, 항상 그것을 낯설게, 거북하게 대함으로서 이질적이면서도 독보적인 창작물을 완결해낸다. 허나 이론적으로 잘 무장되어 있다고 해도, 이를 구현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구현’에는 예술가적 본능이 담보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이 평범한 일기 조각이 보편적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은 그것에 옷과 살을 부여한 장기하의 힘이었다. 인디는 결코 세간에서 보듯 ‘아래’(언더)에 위치한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류의 시선으로부터 ‘독립적인’ 음악이었고, 그 물살에 동화되지 않으려는 작지만 힘찬 물줄기였다. 모두가 커피를 통해 떠나간 연인이나 추억하고 있을 때, 장기하는 자신의 눈을 통해 주변을 성찰했다. “음악은 1990년대에 끝났고, 이제 들을 음악이 없다”는 꼰대들의 한소리와, “들을 만한 음악이 없다”며 툴툴대던 자들의 시선 사각에서 열심히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6 17:2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