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총선으로 여기저기 시끄러운 요즘이다. 이 난세(亂世)에 내 눈길을 끌었던 후보는 재산 공개로 이슈가 된 ‘흙수저 취준생 후보’였다. 중앙선관위에서 공개한 흙수저 후보의 재산신고 내역에 사람들은 금수저가 흙수저 코스프레를 한다며 분개했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그 후보는 금수저 정도는 아니었다. 10대에도 부동산 재벌, 주식 재벌이 그렇게 많다는데 전 재산 9000만원 정도야. 그러니 금수저라고 보기는 어렵고, 한 동수저쯤. 하지만 분명한 건 ‘흙수저’는 아니라는 거다.


나는 직장인 5년차에 건강보험료, 실비보험료 등 약 30만원에 달하는 보험료를 내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저축도 하고, 가끔 여행도 간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분명 흙수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흙수저 후보의 뉴스에 ‘내가 흙수저였나?’하는 의구심을 갖게 됐다.


이런 의구심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가계 부채가 1200조에 달하는 시대라는데, 부채도 없이 자산만 9000만원 가까이 되는 게 흙수저라니. 역시 예부터 있는 놈들이 더하다고 했다. 가질 건 다 가졌으니 이제 가난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가볍게 여기고, 이마저도 쉽게 탐낸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동기의 스토리를 훔쳐 취업했다는 금수저 대학생, 한 가닥 하는 여당 국회의원의 자제가 장애인이라는 점을 내세워 여러 특혜를 받은 것 역시 이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흙수저 취준생 후보보다 더한 금수저는 얼마든지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소시민이 분노한들 크게 달라질 건 없다. 30년 동안 살면서 자연스럽게 포기하는 것을 배웠다. 금수저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나의 괴로움만 키울 뿐 아무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탓이다. 누군가 그랬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고, 포기하면 편하다고. 그래서 나는 항상 낭비하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면 주변 사람들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


문제는 가끔 치미는 울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흙수저들의 아픔을 가벼이 여기는 그들의 ‘순수한 행태’가 너무나도 화가 난다. 마치 순수한 어린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잔인하게 곤충을 죽이는 격이다. 흙수저의 아픔을 진심으로 알았다면, ‘흙수저’라는 단어를 그저 국민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선거용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지 않았으리라. 이제 흙수저 마저 빼앗긴 사람들은 어떤 수저를 들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빼앗긴 흙수저에게도 봄이 올 것이라 믿는다. 배를 곯는 민중들이 ‘빵을 달라’고 하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발언에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던 것처럼 말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그런 거다. 가장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욕구다. 4월 13일, 흙수저 마저 빼앗긴 이들이 봄을 되찾아 와야 할 때다.

<숲>


* 냉전(冷箭)은 숨어서 쏘는 화살이란 뜻으로, 고대신문 동인이 쓰는 칼럼 코너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29 14:2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