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님. 지난주 금요일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고향 부산에 계신 아버지의 안부 전화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대뜸, 어느 일간지의 기사를 읽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울대의 교수님과 연세대의 총장님, 그리고 우리 학교 총장님의 ‘3각 대담’이었다고 하셨죠. 그러고는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 좋은 총장이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하셨습니다. 기사를 읽지 못했던 터라 뭐라 대답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다시 전화하겠다는 약속만 드렸습니다.

총장님. 그 기사를 찾아 읽었습니다. 대담의 전반에 걸쳐 파괴적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더군요. 입학식에서도 언급하셨던 ‘뗏목론’에 대한 내용이 있어 낯설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에게 ‘줄 서봤자 유람선은 오지 않는다. 네가 뗏목이나 요트를 만들어서 나가라’고 말한다. (…) 패러다임을 깨려면 리딩 그룹이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청년이여 분노하라’가 아니라 헤엄쳐서 건너갈 수 있는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분명 이 부분에서 감동하신 모양입니다. 자수성가형 인물을 길러내겠다는 총장님의 다짐을, 어느 부모가 반가워하지 않겠습니까.

총장님. 그러나 학생인 저는 반갑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곳 어디에도 총장님이 말씀하신 ‘모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책 실행의 더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를 방해하는 정부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학생회관에 걸려있는 교육권에 대한 현수막과 그 건물 안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수십 년간 도전했던 패러다임과 그것의 공고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뗏목으로는 어림도 없어 보이는, 일방통행의 격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총장님. 교육부에게 입시정책에 대해 대학과 같이 이야기해보자 제안하셨지요. 학교에게 교육권 개선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보자 제안했던 학생들은 아직도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총장님도 알고 계시지요. 학생들은 장학금 개편 과정에서 한 마디 의견조차 제시하지 못했고, 학생회관을 리모델링해도 자치 공간을 보장하겠다는 '서면 약속' 하나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교육의 대상이라고 한들 수동적으로 머물러야 할 객체는 아닙니다. 학교부터 그들을 그렇게 규정짓는데 그 누가 개척을 꿈꿀 수 있을까요. 대학 규제가 자유로워진들 학생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리딩 그룹에게서, 학생들은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총장님. 결국,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진 못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홍보관을 나섰더니 학생회관에 걸린 현수막이 보입니다. 현수막 속 문구는, 수년째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총장님. 부디, 먼저 보여주십시오.

김범석 시사부장  conan@kukey.com


* 수레바퀴는 고대신문 부장진이 담당하는 칼럼 코너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9 22:4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