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이 안녕할 수 없는 이유는……
― 2014 등록금심의위원회의 허와 실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 이평화




작년 이맘때 배상미 26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이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에서 느낀 문제점을 본 지면에 토로하였는데, 비슷한 내용으로 찾아뵙게 되어 매우 안타깝고 원우 여러분께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고등교육법에 시행이 명시되어 있는 등심위는, 학내 구성원들이 합의 하에 등록금을 책정할 수 있도록 매년 12월 말이나 1월에 개최되는 회의입니다. 그러나 작년 일반대학원‘만’ 2% 인상, 올해 대학원‘만’ 3% 인상되는 상황을 겪으며 이 회의기구가 사실 상 유명무실한 것 아닌지 회의감만이 남는 것 같습니다.


공정하지 않은 등심위 구성

등록금을 책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할 것은 학생의 목소리일 것입니다. 우선, 실질적으로 등록금을 부담하는 것이 바로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계속해서 물가인상을 이야기하며, 등록금이 인상되더라도 사실 상 동결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마치 현재 등록금 액수가 그리 크지 않다는 듯 말입니다. 이런 식의 접근법은 등록금과 관련된 사회적 담론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작년 OECD 교육지표 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세계에서 4위로 높습니다.

또한, 학생은 학교가 제공하는 서비스 이용 주체를 넘어 학교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능동적인 주체라는 것을 학교가 인식해야 합니다. 학생이 단순하게 교육을 ‘사는’ 소비자에 불과하다면, 애초에 등심위를 열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고려대학교 회계의 등록금 의존율은 61% 정도입니다. 이것은, 학교를 운영하는 데 드는 돈 100 중 61이 등록금 수입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심각하게 높은 수준입니다. 그러나 등심위의 의장을 맡고 있는 기획예산처장은 61%면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이라며, 사회와 정부가 말하는 반값등록금을 사실 상 고려대학교는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들으며, 학생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알 것 같았습니다. 학교는 학생을 돈벌이 상대로만 보는 것 아닌지 깊은 배신감이 찾아왔습니다.

총장 추천의 외부전문가를 위원으로 두는 것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시작하기 전 등심위 운영 규정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는 학생 위원 측 요구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이 돌아왔습니다. “운영 개정을 하면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될 것 같아요?”라는 한 교직원 위원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이가 한 말이라는 사실에, 교육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구정을 하루 앞두고 열린 4차 등심위에서 학교 측은 학부 동결, 대학원 3% 인상안을 제시했고, 학생 측은 학부·대학원 7% 인하안을 제시했습니다. 결론이 나지 않자, 예산팀은 일정에 쫓기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단 가예산을 작성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오후, 개인적으로 예산팀을 방문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과정에서, 그들이 말한 가예산이라는 것이 전년도에 준하는 준예산이 아닌, 학교 측의 대학원 3% 인상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이었습니다. 등심위에서 결정된 것이 아직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이미 대학원 3% 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예산 작성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학교와 학생은 동일하게 안을 제시하였으나, 학교가 제시한 안이 유일한 것처럼 다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등심위의 구조적 불평등이 명백히 드러나는 대목이었습니다. 설 연휴 이후 마지막인 5차 등심위에서도 학생은 여전히 무력했고, 학교는 귀를 닫았으며, 결국 학생 위원들은 서명하지 않은 채 회의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3년 등심위가 파행으로 치달았다는 학생의 말에, 학교 측은 그런 적 없다고 했습니다. 잘 합의하고 마무리됐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 측 위원은 자신이 보고 있던 홈페이지에도 공개된 작년 최종 회의록을 증거라며 보여주었는데, 물론 과반수의 서명은 있었지만 학생대표들은 서명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등심위도 학생 입장에서는 파행이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의결로 마무리된 등심위일 것입니다. 학교는 내년에 말할 것입니다. 과반수 이상이 서명했으니 잘 합의된 것이라고. 그 과반수에 학생 위원은 단 한명도 포함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현재의 등심위는 이렇듯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 시작에서부터 공정하지 못한 등심위를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학생들이 등록금 책정 과정을 심의하기 위해 등심위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왜 등록금이 왜 인상되어야 하는지 설명을 듣기 위해 참석하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등록금심의위원회가 아닌, 등록금설명회에 온 것 같은 기분 말입니다.



등록금 인상은 대학원생의 소외된 현실을 반영합니다

전국의 대학원생 수가 33만 명을 훌쩍 넘은 지 벌써 오래입니다. 이렇게 높은 대학원 진학률이 시사하는 것은, 한국이 웬만해서는 살아남기 힘든 경쟁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국가장학금 정책으로 학교의 등록금 인하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대학들이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 정부의 원래 취지대로 예산을 절감하고 적립을 줄이는 대신, 대학원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대학원이 그만큼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당한 노동임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들의 연구노동, 근로에 대한 대가에 불과함에도 장학금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우리들의 임금, 메뚜기처럼 이 열람실 저 열람실 옮겨 다니며 “언젠가는”이라는 기약 없는 희망고문으로 버텨야 하는 하루하루.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이대로 괜찮으십니까?

2013년을 마무리하면서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왔습니다. 독일의 등록금 완전 폐지와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대학등록금이 있었던 니더작센 주까지 등록금을 폐지하게 되면서, 독일에서는 바야흐로 등록금 0원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언젠가 가능한 일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당장 가능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독일이 우리에게 어떤 목표를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등록금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등록금에는 교육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고, 경쟁사회를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높은 등록금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교육의 기회만큼은 평등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교육은 공적인 것이며, 기본권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대학원이 예외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등록금 0원 시대를 앞당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전망을 갖고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등록금투쟁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22:4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