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마음의 빛

최은영 기자



이십대의 나. 화가 많이 났다. 부당하고 잘못된 일들이 눈에 보일 때 그 화를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사람들과 많이 싸웠고 논쟁이랍시고 생각나는 대로 말했던 적이 많았다. 마음속에 심술궂은 판관을 앉혀놓고 얘는 이래서 안 되고, 쟤는 저래서 안 된다고 판단했다. ‘정치적 올바름’을 운운했다. 시간이 지나서 그것이 오만이었고 소름끼치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화가 독이 되어서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내 속까지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웃긴 건 ‘정치적 올바름’을 되새김질 하고 있을 때야말로 나에 대한 성찰이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폭력’에 그토록 민감했으면서도 내가 저지르고 있는 언어폭력이나 인간관계를 망쳐서 상대에게 고통을 준 일에 대해서는 심각할 정도로 무감했다. ‘폭력을 비판하는 자아’만을 등에 업은 채 두 눈은 감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병들었으므로 세상이 폭력적이므로 나는 무고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그 세상의 일부였다. 세상을 욕하면서 그 세상에 대한 내 책임에 대해서 묻는 일에는 게을렀다. 세상은 병들었지만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을 했는가. 일정부분 동조했고 순응하지 않았나.

내가 누군가를 ‘꼴통’이라고 욕할 수 있을까. 내 속의 이 수많은 꼴통스러움, 관료적이고 봉건적인 모습들은 아직도 살아 있다. 우리. 외부현실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자신의 부조리에는 너무 무감하지 않나. 민주주의를 옹호한다면서 모든 가사노동은 자연스럽게 어머니나 아내, 딸, 며느리에게 전가하는 자칭 좌파의 모습들. 여성주의를 공부한다면서 후배들의 자발적 순종을 바라는 권위적인 모습들.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내 자식이 동성애자라면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말하는 지식인의 모습들.

자신의 모순을 들여다보지 않고서 외부 현실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지적이고 올바른 자아’를 강화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움켜쥔 기득권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남들이 기득권을 버리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나를 억압하는 구조에 대해 깨어 살피고 비판하는 것은 우리를 노예가 아닌 사람으로 만드는 시작이다. 하지만 자신 또한 누군가를 억압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은 한참은 더 요원해질 것이다.

어두운 세상이다. 마음의 빛을 더 돋워야하겠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22:5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