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칼럼]

사랑예찬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김상혁 (시인)



죽음은 무섭고 힘이 세다. 자본주의라는, 불평등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저 보편성이, 덜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제법 견딜만한 지옥인 까닭은 죽음이라는 자연의 순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시대에 자본은 거의 모든 것을 사들인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나는 인간의 도덕적 양심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이, 실은 타인의 이목이나 신의 정언이 아니라, 바로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확실성이라고 생각한다. 죽음 앞에서라면 누구나 겸손해지고, 그래서 죽음은 강퍅한 자를 선량한 사람으로 바꾸기도 한다.

그런데 사랑은 가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영원한 사랑의 맹약이 얼마나 손쉽게 파기되고 마는지 잘 알고 있다. 오늘은 서로를 위해 죽음도 불사할 것 같은 우리가 내일은 문득 이별을 말하기도 한다. 아마 모레쯤엔 새로운 상대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이 바람피우기 전에 그들의 생이 끝나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사랑에 싫증내고, 애인을 속이거나 버린다.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고백처럼 뻔뻔한 거짓도 없을 것이다. 술 몇 잔에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고, 싸움 몇 번에 사랑이 거추장스러워지기도 한다. 사랑은 어쩌면 성적인 끌림을 멋들어지게 포장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 때문에 죽기도 한다. 종교나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힘이 센, 저 무서운 죽음에 기꺼이 자신을 내던진다. 고작 아무것도 아닌 사랑 때문에, 내일이면 변하게 될 그 사랑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인간의 사랑만이 아름답다.

신의 사랑은 아마도 영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좋은 일이지만 위대한 일도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미 완벽한 신에겐 완벽한 사랑은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불완전하고 약한 인간의 사랑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 혹시 당신에게는 성경 속의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 죽은 일이 많이 놀랍고 슬픈가? 나는 훨씬 더 엄청난 일을 알고 있다. 내일이면 바람을 피울 당신이 내일이면 똑같이 맞바람을 피울 당신의 연인을 위해 죽음마저 불사할 수도 있다는 것. 아무것도 아닌 저 천박한 사랑을 위해 당신이 당신의 고귀한 실존 전부를 기꺼이 포기하기도 한다는 사실.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옆 사람을 한 번 쳐다보라. 만일 그가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댈 때 당신은 그를 향하여 헤엄치기를 마다하지 않을 사람인가? 그럼 당신은 둘도 없는 천치다. 하지만 그런 당신 앞에서는 신조차도 고개를 숙일 것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6:5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