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발언대]

균형 잡기


   나는 시간 강사다. 말 그대로 ‘대학의 촉탁을 받아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시간당 급여를 지급받는 자(者)’이다. ‘촉탁(囑託)’이란 말을 썼지만, 실은 ‘고용’되어 있다는 말이 더 적합할 듯하다. 매 학기 초, ‘갑’과 ‘을’로 표기된 계약서를 받아들며 나는 피고용인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을? 내가 을인가? 병이나 정 쯤 되지 않나? 쓴웃음을 짓는 것도 잠시… 시간당 얼마, 15~16주의 계약 기간에 나는 흔쾌히 사인하며 피고용인의 위치를 수락한다. 자, 스타~트! 여기서부터 나의 위태로운 균형 잡기는 시작된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교강사 워크숍은 한 학기의 출발점에 위치한다. 교강사 워크숍에서는 학교의 교육 방침과 교육 방법, 그리고 학사 일정 등이 소개된다. 간단하게 학사 일정 등을 설명하고 회식으로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지만, 교강사들의 토론과 조별 발표가 이어지는 곳도 있다. 토론과 조별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강사들은 학생들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되새긴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을 대하는 자세, 학생들의 학습 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 방안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승으로서의 역할에 의욕을 불태우기도 한다.

   실제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교육과 상담에 열의를 보이는 강사들을 선호한다. 그리고 네가 진정한 스승이라면 ‘윤리적으로’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기서 방점은 ‘윤리적’이라는 말에 찍힌다. ‘윤리적’이란 말의 영향력은 그 끼치는 범위가 의외로 넓고, 다른 대부분의 것들을 잠재우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하다. ‘윤리적’이라는 말 앞에 나는 시간당 얼마에 계약했고, 휴강이나 결강 시 반드시 보충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추가로 시간이 더 드는 교육에 대해 강사료를 얼마 더 달라는 말은 무력해진다. 외적 분위기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도 교육자가 갖는 도의적 책임감의 무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 네가 학교와는 갑을 관계로 계약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잖아? 교육자라면 마땅히 애정을 갖고 학생들을 대하고 열정으로 가르쳐야지……. 이렇게 시간 강사인 나는 피고용인과 교육자라는 두 축 사이에서 매번 갈팡질팡한다. 무게 중심이 피고용인 쪽에 가깝게 갈 때도 있고 교육자 쪽에 접근할 때도 있다. 둘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아직도 내게 너무 요원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나를 갈등하게 만드는 요소는 또 있다. 앞서 나는 글의 서두에서 나 자신을 시간 강사라고 말했는데,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나는 연구자이기도 한 것이다. 강의 준비를 하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내 역할은 끝나지 않는다. 연구자로서의 나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해서 논문을 쓰고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 이것은 훌륭한 연구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닌, 연구자로서의 기본을 지키기 위한 수준이다. 연구자로서의 기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는 강의 시간을 많이 늘릴 수 없다. 뛰어난 연구자라면 강의를 많이 하고도 훌륭한 연구 성과를 낼 수 있겠지만, 평범한 연구자인 나는 최대한 공부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밖에 없다.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적정 강의 시간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알다시피 강의는 내가 하고 싶다고 많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공부해야 한다며 “몇 시간 만 주세요”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또한 공부하기 위해 덜컥 강의 시간을 줄였다가 생활이 어려워지면 그 때는 공부고 뭐고 당장 밥을 굶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연구와 강의, 연구자와 교육자와의 사이 그리고 이상과 생활. 오늘도 나는 저울추를 이쪽에 놓았다가 저쪽에 놓았다가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4:0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