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발언대]

‘게임 중독법’, 누굴 위해서?  

어느 대학원생


정신과 의사 출신의 한 국회의원이 발의한 일명 ‘게임중독법’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때 게임 산업은 수출의 역군이자 한국문화컨텐츠산업의 선도자이며 한류의 중심에 있다고 찬양받아 왔다. 하지만 이제 게임은 어린 학생들은 물론이고 철없는 어른들까지 생계를 내팽겨 치게 만드는 무서운 ‘중독물질’ 취급을 받고 있다. 수출의 역군에서 하루 아침에 무서운 ‘중독물질’로 전락한 게임, 너무나도 다이내믹한 한국이다.
일명 ‘게임중독법’, 정식명칭으로는 ‘중독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은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같은 중독 유발 물질로 규정하고 정부가 이를 관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같은 당의 다른 의원들이 발의한 다른 법률안들에서는 게임 산업계에서 일종의 기금을 걷어 중독예방 및 치료를 위한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당연히 관련 업계의 반발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기업들은 자신들을 ‘돈줄’ 취급한다며 반발했고 산업종사자들은 물론이고 문화계 인사들까지 나서서 게임을 마약과 동일한 것으로 낙인찍는 행위를 질타하고 나섰다.

어디에선가 보았던 익숙한 풍경이 떠오른다. ‘청소년 유해매체’로 낙인찍혀 화형대에 올랐던 만화책들, 애니메이션들의 운명이 떠오르지 않는가? 유신시절부터 청소년 비행을 조장하고 학업을 방해한다는 명목으로 희생양이 되어 왔던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뒤늦게 문화컨텐츠 산업으로서의 잠재력을 깨달은 정부의 지원책으로도 소생하지 못했다.

여기서 다양한 숫자들을 늘어놓으면서 게임산업이 한국의 경제발전에 얼마나 공헌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게임중독법’이 황금알을 낳게 될 오리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행위인지에 대해서 논할 생각은 없다. 지금 문제 삼고 싶은 것은 ‘게임중독법’이 가지는 시대착오적인(좀 심하게 말한다면 한 야당의원이 언급한 것처럼 ‘꼰대적인’) 발상이다. 국민들을 그저 교화와 규율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고방식은 이제 지겹지 않은가? 틈만 나면 게임에다가 청소년 비행과 엽기적인 범죄를 유발한다는 죄를 뒤집어씌우더니 이제는 아예 화형대에 올리려 드는 것인가?
물론 게임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과도한 게임 몰입으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중독은 단지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게임중독법’은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병인은 무시한 채 겉으로 드러난 증상에 대해서만 반응하는 대증요법일 뿐이다.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세대에게 게임은 꿈과 희망의 가상현실과 도피처를 만들어 주는 수단에 불과하다. 공부하는 법만 알았지 노는 법은 몰랐던 아이들에게, 학벌경쟁과 취업전선에서 밀려난 청춘들에게, 게임은 가상의 현실 속에서 ‘왕’이 될 기회를, ‘승리자’가 될 기회를 부여한다. 중독자를 양산하는 것은 꿈과 희망을 짓밟아 버리는 현실이지 게임이 아니다.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 권하는 사회’인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저 ‘회초리’를 들고 국민들을 가르치려고 나서고 있을 뿐이다.

2013년을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하다. 무한경쟁의 도그마는 여전히 공고하고 승리자들이 차지하는 전리품은 아주 달콤하지만 패배자들, 낙오자들에게 돌아가는 대가는 가혹한 고통뿐인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사방에 중독들이 난무하고 있다. 공부중독, 고시중독, 일중독, 야근중독... 살아남기 위해서는 중독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 그것이 21세기 한국의 현주소다. 이 중독들 역시 우리의 인간성을 그리고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왜 게임중독만 문제인가? 게임 산업이 가장 만만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일만하고 말 잘 듣는 국민들이 필요하기 때문인가?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23:4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