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부터 7년간 고려대 축구부를 이끌었던 조민국 감독은 2003년 정기전 축구경기를 명승부로 뽑았다. 승리한 경기가 아닌 0대 0으로 비긴 경기를 뽑은 것이 특이하다. 조 감독은 당시 경기를 떠올리며 “선수들이 기술력보다 지구력과 정신력으로 버텨줬기 때문에 실점하지 않았다”며 “승패를 떠나 선수들이 가장 열심히 했던 경기가 명경기”라고 말했다.

양교는 대등한 분위기에서 전반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진우(체육교육과 01학번), 이성민(체육교육과03학번) 선수가 부상을 당하며 교체되자 고려대는 경기 주도권을 뺏겼다. 이후 고려대는 수차례 프리킥 기회를 얻었지만 득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본교는 허리싸움에서 밀리면서 점점 어려운 경기를 치렀다.

후반전에도 연세대의 공세가 계속됐다. 후반 18분 이현진(체육교육과 03학번) 선수가 슈팅을 시도했지만 연세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득점으로 연결되진 못했다. 하지만 연세대 역시 골문을 열지 못하며 경기는 0대 0 무승부로 끝났다.

선수들의 별다른 활약이 없었는데도 조 감독이 이날 경기를 명승부로 뽑은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시 고려대 축구부 주전 선수 대부분은 집단 식중독 증상을 보이며 컨디션이 안좋은 상황이었다. 경기를 1주일 가량 앞둔 주말, 축구부 선수들은 의과대·간호대 교우회의 후원으로 마련된 행사에 초청됐다. 이 날 뷔페 음식을 잘못 먹어 주전 대부분이 식중독 증세를 보였고, 그들은 경기를 이틀 앞둔 25일까지 입원해야 했다.

주전 선수들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에도 경기에 출전 해 당시 축구부는 시작부터 불리한 상황이었다. 또한, 축구 경기가 시작하기 전 앞서 열렸던 정기전 다른 종목 4개가 2대 2 무승부였던 상황도 축구부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조 감독은 “훈련 일정이 빠듯해서 행사에 참석할지 여부도 고민했었는데 결국 데려가 먹었던 뷔페음식 때문에 탈이 나 맘고생이 심했다”며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몸과 마음이 모두 불편했던 당시를 떠올리면 아찔하다”고 회상했다.

2002년 정기전 럭비경기에서 본교는 1995년 이후 처음으로 연세대를 이겼다. 한동호 감독은 오랜만에 본교 럭비팀에 승리를 안겨준 그해 경기를 명승부로 뽑았다. 한 감독은 “끈기 있는 고대정신이 어떤 것인지 보여줬던 해”라며 “이번에 지면 다신 이기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죽을 힘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당시 럭비팀은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신입생 8명을 스카우트 해 전력을 보강했다. 하지만 연세대 럭비부는 속도와 상황 판단력 모두 우리를 앞섰기 때문에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정기전에선 경기장 분위기가 승패에 많은 영향을 줘 고학년 선수가 많은 연세대가 유리했다. 초반엔 연세대가 7점을 먼저 가져가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전성훈(경영학과 99학번) 선수가 트라이에 이은 컨버전킥으로 7점을 얻어 17대 14로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대는 연세대에 7점을 내주며 21대 14로 역전당했다. 후반 14분 이상은(체육교육과 99학번·FB) 선수의 트라이로 다시 앞서나가며 더 이상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고려대는 30대 24로 7년 만에 승리를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