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담 요구서/수신:고려대학교 총장 염재호/'알 수 없는 입학금 사용내역'과 같은 이유로 5월 중 학생과의 면담을 요청합니다."
총장실 외부의 한 쪽 벽면에 면담 요구서가 가득 붙었다. '등록금 인하' ' 기숙사 신설' '답사비 지원'. 200개가 넘는 요구서에 적힌 면담 이유는 다양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입니다!" "이번에는 물러서지 맙시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결국 총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4일 오후 12시, 민주광장에는 25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앉았다. 48대 안암총학생회(회장=박세훈, 안암총학)의 교육권리찾기운동 총궐기였다. 교육권리찾기운동 실천단원들은 학생들에게 파란색 풍선과, 각자 작성할 수 있는 면담요구서를 배부했다. ‘Why not?’이라는 슬로건이 적힌 현수막이 학생회관에 크게 내걸렸고, 그 앞의 민주광장은 푸른색으로 뒤덮였다.

정경대 몸짓패 초아의 힘찬 문선 공연이 끝난 후, 유종헌 실천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 두 달 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각 단과대 및 학부별 회의, 전체학생대표자회의 의결까지 거쳐 총 96장의 요구안을 완성했습니다. 요구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오후 1시가 되자, 학생들은 염재호 총장에게 요구안을 전달하기 위해 본관 앞으로 행진했다. 파란 풍선이 물결을 이루고, 학생들이 외치는 교육권리찾기운동의 구호 소리가 교정에 울려 퍼졌다. “기만적인 등심위를 민주적인 등심위로!” “학교 주인 학생이다! 결정권을 보장하라!”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 그들은 목소리라도 먼저 보내고 싶은 듯 본관을 향한 소리를 한껏 높였다.

본관 앞에 도착한 이들은 잔디 위에 열을 맞춰 앉았다. 안소현 부총학생회장의 상황 보고가 끝나고, 학생들 앞에 선 박세훈 안암총학생회장은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울분을 터뜨렸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학교위원 6명, 학생위원 6명, 외부전문가 1명이라는 등록금심의위원회의 구조는 겉으로만 공정할 뿐입니다. 총장 추천 외부전문가는 등심위 현장에 가장 늦게 등장하고, 학교 측 의견에 찬성한다는 의견만 피력하고 퇴장했습니다. 학교의 회계 상황을 잘 알고, 양 측의 의견을 모두 고려하는 전문가가 선정돼야 합니다.”

단과대와 학부별 요구사항에 대한 발언도 이어졌다. 신창섭 사범대 학생회장은 “컴퓨터교육학과가 정보대학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학교 측은 학생들이 원하는 모든 수업을 개설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이 문서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요구를 기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자인조형학부는 자치공간과 작업 공간 보장을 요구했고, 자유전공학부는 전임교원을 확충해 줄 것을 주장했다.

학생대표들의 발언이 끝나자 학생들은 본관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리 작성한 요구서로 총장실 문 쪽 벽면을 가득 메웠고, 총장실에서 나온 김영민 비서실장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대화하려 하지 말라”고 이들을 말렸다. 박세훈 회장과 김영민 비서실장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유종헌 실천단장은 확성기를 들고 뒤 쪽의 학생들에게 대화 내용을 전달했다. “비서실장님은 총장님이 지나가는 학생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만큼 소통을 많이 한다고 하시는데, 그건 총장의 소통방식이 아닌 연예인의 소통방식입니다!”

비서실장과 학생 간의 실랑이는 20분 간 이어졌다. 결국 박세훈 안암총학생회장과 안소현 안암부총학생회장은 총장실 안으로 들어가 김영민 비서실장과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이 진행되는 동안 박희석 정경대 학생회장을 비롯한 학생들은 문 밖에서 확성기를 들고 발언을 이어갔다. 약 1시간 30분이 지나는 시간동안 이들의 발언은 멈추지 않았다. “작년 교육투쟁 때 학생들이 해산한 후 본관에 나타나신 총장님께 달려가 요구안을 전달 드리자 돌아온 말은 ‘내가 너에게 숙제를 받을 입장은 아니지 않냐’였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의 뜻이 모인 요구안이 총장님께는 숙제였나 봅니다!”

3시 30분, 박세훈 안암총학생회장이 총장실에서 나왔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힘주어 말했다. “5월 중에 총장과 총학생회장단, 실천단장 간의 면담을 1시간 이상 진행할 것을 약속받았습니다. 많은 학우 여러분이 힘을 모아준 덕분입니다. 면담이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요구안 반영을 위한 활동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광장에 모인지 3시간 30분이 지나고, 이들은 헤어졌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말할지 고민하겠다고 했다. 정경대로, 국제대로, 생명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가는 학생들의 입에서, “이번에는 진짜겠지?”라는 농담이 무겁게 오고갔다.


글 | 정다인 기자  da2n2@kukey.com
사진 | 김주성 기자 pete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8 05:4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