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으로만 전해지는 소방대원들의 실제 삶은 어떨까. 그들은 어떤 아픔을 가진 채 일을 하고 있을까. 본지는 19일, 21일 이틀 동안 노원소방서(서장=윤득수)의 동의하에 현장대응단과 동행 취재했다. 취재는 현장대응단 사무실에서 대기하다 구조대가 출동하는 상황에 구조대 차량에 동승해 출동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계역 근처에 위치한 노원소방서의 외관은 적막했다. 소방서 앞 담장에는 소방대원이 불을 끄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소방서에 들어서자 적막함이 무색할 정도로 소방대원들은 분주했다. 낯선 사람이 다가오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다시 자기 할 일에 집중했다. 홍보교육팀 안병철 소방대원은 곧 있을 장비검열을 준비하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소방서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들은 후 구조대가 있는 현장대응단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원들은 담소를 나누거나 각자 사무를 보고 있었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졌다.

  “민원인을 상대할 때 가장 힘들어요.” 소방대원들은 하나같이 이런 불만을 털어놨다. 장영우 화재조사관은 직접 겪은 사례를 이야기했다. “차량에 연기가 나고 있어 물을 뿌렸는데, 차량 주인이 왜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물을 뿌렸냐면서 보상을 요구한 경우도 있었어요. 화재를 당한 사람들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어서 심리적으로 불안하지만 화재가 난 원인, 피해 규모 등에 대한 조사는 해야 하기 때문에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듣죠.”

  구조대원과 구급대원도 비슷한 불만을 토로했다. 8년 째 현장에서 근무 중인 이강민 구조대원도 민원인 때문에 겪는 애로사항을 얘기했다. “구조대는 절차대로 구조를 진행해요. 그런데 사고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지휘관처럼 지시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급하게 구조를 진행하다보면 2차사고 우려가 있는데도 ‘빨리 안 구하냐’, ‘이런 식으로 해야 하지 않냐’ 이런 식으로 옆에서 하니 갑갑한 면이 있어요.” 2년 전 소방대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김윤경 구급대원에게는 취객을 대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심하게 손상된 사체를 보거나 자살 현장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취객에게 욕설을 듣거나 무작정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경우에 힘들죠.”

  소방대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무방비로 노출돼있다. 국민안전처(2014)에 따르면 소방관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확률은 일반인보다 10.5배 높았다. 최근 5년간 자살한 소방관은 41명으로, 1년 평균 8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방관들이 1년 간 시신수습, 신체훼손 등 극심한 외상사건에 노출된 경험은 연평균 7.8회였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등으로 치료가 필요한 소방관은 전체 소방관의 39%에 달할 정도였다.

  노원소방서 소방대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도 각자 상처를 안은 채 또다시 출동을 나가고 있었다. 장영우 화재조사관은 지금까지 봐왔던 시체들이 나오는 꿈을 가끔 꾼다. 그가 성북소방서에서 근무할 때 일이었다. 내부순환도로 커브길에서 버스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대학생 4명이 타있는 소형차를 들이박은 것이다. 앞에 있던 남학생 둘은 창문으로 탈출했지만 뒷자리에 있던 여학생 둘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 상태로 차량은 큰 불길에 뒤덮였다. 차량정체로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물을 뿌려 화재를 진압하고 보니 여학생 두 명이 손잡이를 잡은 채 죽어있었어요. 순간적으로 고열에 노출되면 미라처럼 바짝 타는데, 그 학생들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더라고요. 시체를 많이 봐왔지만 그 사건이 한참 기억에 남았어요.”

  이강민 구조대원도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장소는 수락산 근처의 한 두부음식점이었다. 주차장에 트럭을 주차하려던 한 노인이 브레이크가 아닌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그대로 음식점 안으로 돌진해버렸다. 당시 유리창 근처에는 아이 2명과 어른 1명이 있었다. 어른과 아이 한 명은 차에 그대로 튕겨나가 타박상만 입었지만, 남겨진 아이 하나는 바퀴에 깔려 두개골이 밟혀버렸다. “현장에 도착해 그 아이를 보자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 아이와 체형도 비슷하고 얼굴도 똑같이 생겼었어요.”

  이강민 구조대원은 문을 열 때 항상 발로 문 밑을 받치고 여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구조현장에서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다. “남편이 부부싸움을 한 후 방에 들어가 자살이 우려된다는 신고였어요. 그 때 로프를 타고 베란다로 들어가려 했는데 그 남편이 칼을 들고 있더라고요. 위험한 순간이었어요. 그 이후 문을 열 때 발로 받치고 여는 습관이 생겼죠. 안에서 흉기를 들고 있을 수도 있으니 문이 확 열리지 않게.”

  출동방송이 울렸다. 구급출동이었다. 답변 차례를 기다리던 구급대원은 빠른 걸음으로 현장대응단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출동방송이 울리면 하던 일을 바로 멈추고 뛰어나간다. 식사시간에 출동방송이 울리면 밥 한 숟가락 먹지도 못하고 신고현장으로 향하기도 한다. 사람을 구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이다.

  소방대원들이 나가는 출동은 화재출동, 구조출동, 구급출동, 기타출동으로 구분돼있다. 구조출동은 교통사고와 같이 구조를 요하는 상황에, 구급출동은 응급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후송해야 하는 상황에 나가는 출동이다. 기타출동은 구조, 구급상황 이외 생활안전에 관련한 출동이다.

  21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현장대응단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출동방송이 울렸다. 구조출동이었다. 구조대 차량에 탑승하자마자 구조대는 순식간에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몰던 배달원이 소형 트럭에 그대로 박아버린 사고였다. V자로 굽어있는 오토바이가 사고가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말해줬다. 철가방은 널브러져 있었고 배달원은 피를 흘리며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있었다. 허리가 다쳤는지 그는 “허리가 아파요, 허리, 허리”라며 아픔을 호소했다. 구조대와 구급대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순식간에 배달원을 응급차에 실었다. 응급차는 사이렌 소리를 내며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현장대응단 사무실로 돌아오자 같이 출동했던 구조대원들은 다시 각자 검열을 대비해 장비를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다시 한 번 출동방송이 울렸다. 이번에는 기타출동이었다. 개 4마리가 목줄이 풀린 채 돌아다니고 있다는 신고였다. 구조대는 개를 구조할 때 쓰는 이동장과 구조망을 챙겨 출동했다. 출동길에 구조대원이 전화로 자세한 상황을 물었지만, 신고자는 당황한 듯 횡설수설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 개들은 현장 근처에서 폐지를 모으는 할아버지가 키우는 개였다. 현장에 도착해 개가 들어갔다는 지하 2층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개들은 폐지를 리어카에 옮겨 담고 있는 할아버지 곁에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그 어떠한 신고가 들어와도 두 눈으로 안전을 확인하기 전까지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소방관의 임무가 아닌 신고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어떤 신고든지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 해요. 한 번은 옆집 담장이 무너졌다는 신고가 들어온 적이 있었어요. 물론 사람이 다쳤으면 구조를 해야 하지만 단순히 옆집 담장이 무너졌다며 치워달라고 하더라고요. 세금을 냈는데 왜 안 해주냐면서.” 이런 신고가 들어오면 더 위급한 다른 출동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현장대원들이 출동을 안 나간다고 해서 일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많은 장비들을 정비해야 하고 각자 행정업무도 봐야 하는데 그런 일에 발이 묶이면 업무에 차질이 많이 생겨요.”

  시간은 어느새 오후 5시가 됐다. 하루 동안 같이 출동을 나갔던 구조대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인터뷰가 낯선 한 구조대원은 주저하며 질문을 미리 주면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정리한 질문을 건네고 다시 휴게실로 돌아와 취재를 마칠 준비를 하던 찰나, 구조출동 방송이 울렸다. 수락산 지하철역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안에 사람이 갇힌 사고였다.


  이번 출동은 유난히 더뎠다. 퇴근길의 시민들은 각박했다. 소방서에서는 소방차 길 터주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없어보였다. 구조차량은 수도 없이 사이렌을 울렸지만 구조차량은 수도 없이 머뭇거렸다. 구조대장이 차량 바깥으로 방송한 ‘정지하세요, 정지’란 소리를 못 들은 건지, 못 들은 체 하는 건지 시민들은 자기 갈 길 가기에 바빴다. 오히려 길을 내어주는 차들이 특별해 보였다.

  어렵게 수락산역에 도착하자마자 구조대원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한 구조대원은 지상에 있던 승강기 입구를 열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엘리베이터 안의 상황을 파악했다. 구조대와 수락119안전센터 대원들이 승강기 문 앞에 있자 자연스레 사람들이 몰렸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연신 무슨 일이 있냐며 물었고 구조대원들은 ‘엘리베이터가 멈춰 사람들이 갇혔으니 다른 출구를 이용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안에 갇힌 사람은 총 다섯 명이었다. 구조대가 진입하려고 하자 수락산역 관계자가 구조대장에게 전화를 건넸다. 엘리베이터 정비업체의 전화였다. 정확한 통화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구조대에 진입하지 말라는 내용을 전하는 듯 했다. 6분 후 도착한다는 말에 구조대장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어떻겠냐”며 “6분 후에 강제로 진입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시간은 흘러 6분이 지났다. 구조대장은 구조대원들에게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구조대원들이 진입하려는 순간 정비업체 직원이 도착했다. 정비업체 직원은 엘리베이터를 지상으로 움직였다. 부부로 보이는 노인 두 명, 아이와 그 엄마, 전동휠체어에 탑승한 사람이 30여 분만에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울고 있었다.

  구조를 끝낸 시간은 교대시간인 오후 6시를 훌쩍 넘긴 후였다. 대원들의 머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사용했던 장비를 정리하며 한 구조대원은 푸념 섞인 농담을 했다. ‘씻고 교대하면 7시 넘겠네’ 소방관의 일상은 이렇게 끝이 났다. 24시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소방관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안전은 잠시 미뤄둔다.

  2001년 홍제동 화재사건으로 순직한 한 소방관의 책상에는 ‘어느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가 놓여 있었다.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 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내가 늘 깨어 살필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


글·사진|심기문 기자  simsimi@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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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20 00:4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