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정경대 학생회 측에서 영강 의무화 반대 운동의 발족식을 가진 이후로, 매일 아침 등교할 때마다 피켓을 든 정경대 학생회 학우들을 볼 수 있다. 영어강의 의무화 폐지는 현 총학생회의 선거 공약이기도 하다. 영어 강의 의무화, 과연 무엇이 논란이 되는 것일까?

▶영어강의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1학기 우리학교의 전체 강좌 중 영어 강좌의 비율은 35.6%이다. 이는 10%인 서울대와 21%인 연세대학교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 글로벌KU로의 변신을 꾀했던 어윤대 전 총장에서부터 현재 이기수 총장까지 요 몇 년간 영어강의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이기수 총장은 지난 8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내년에는 영어강의의 비율을 50%정도로 끌어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전체 강의 중 영어강의가 차지하는 부분은 더욱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영어강의의 장점은?
 
 세계화 시대에 우리학교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영어나 다른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설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수한 외국인 교수를 초빙하여 교수진 구성을 다양하게 하려면 당연히 영어로 강의하는 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 또한 이공계 학생들이나 경영대학 학생들 가운데는 전공과목에 한하여 영어로 강의를 들었을 때 더 이해가 잘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 번째로는 학과의 특성에 맞추지 않은 일률적인 체계를 들 수 있다. 국어국문학과나 한국사학과 등 전공과목에서 영어강의가 없거나 혹은 한 개뿐인 학과의 학생들도 다른 학과와 마찬가지로 5개의 영어강의를 이수해야 한다. 학과별로 특성이 명백히 다른데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억지로 끼워넣기 식의 영강의무화를 진행하는 것이 반발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또한 교수의 강의가 잘 전달이 안된다는 점도 매우 큰 문제이다. 우리학교 포탈 사이트 고파스에서 영어강의를 들을 때 어떤 점이 불편한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10여 명의 학우들 중 37%에 달하는 학우들이 교수님의 발음을 알아듣기 어렵다고 답했다. 외국에서 오래 공부를 했다고 해도 모국어보다 영어로 말할 때 훨씬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들의 역시 불만이 크다. ‘울며 겨자먹기’로 영어강의를 진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우리학교의 교원 임용 지원 자격을 보면 임용 후 모든 강의를 영어 또는 기타 외국어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주요항목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5년간 모든 전공과목을 영어강의로 진행해야 하고, 면접시 필수적으로 영어강의 능력을 평가한다.

 2006년 6월 우리학교 문과대 교수회는 “문화적 정체성을 위협하고 자유로운 진리탐구 역량을 훼손하는 영어강의 전공과목 이수 의무화 방침을 거부한다”고 결의했다. 전공과목을 영어교육의 실습수단으로 여기는 발상에 대한 항의였다. 우리학교는 교수회의 일부 주장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영어강의 확대 방침은 3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확고한 상황이다.

 완벽하게 영어로 강의를 진행할 수 있는 교수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영강의 개수만 늘리는 식이기 때문에 정작 학생들은 수업에 만족하지 못한다. 요즘 영어강의 추가 증설은 대학의 개혁적인 성과로 치부되고 있다.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에 영어강의의 비율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영어강의를 무작정 늘리면 대학 순위는 높아질 지 몰라도 강의의 질은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고파스 설문조사 결과 영어강의의 개선방향을 묻는 질문에 약 40%의 학우들이 원어민 교수나 영어를 모국어만큼 구사할 수 있는 우리나라 교수만 영어 강의를 하는 것을 원한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영어 강의 자체에는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고 오히려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이 학생의 자율이 아닌 의무라는 것과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반대하는 것이다.

 ▶몇몇 과목은 국어강의보다 영어강의의 수강신청 경쟁이 더 치열한데 그 이유는?

-영어강의는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학점을 잘 받으려고 듣는 경우가 허다해

  이번 학기에 세계와 한국 경제는 같은 과목명을 가지고 두 개의 영어강의와 한 개의 국어 강의가 개설 되었다. 영강이 두 개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 국강보다 더 빠르게 마감이 되었다. 물론 영어로 강의를 듣는 것이 더 편해서 영강을 신청한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익명을 요청한 조 모 (정경대학 09) 학우는 “영어강의가 국어강의보다 더 심화된 내용을 다루지는 못하지만 학점이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국어강의보다 학점을 더 잘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신청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러한 학생들이 적지 않다. 고파스 설문조사 결과 학우들이 영어강의를 듣는 이유는 영강밖에 개설되지 않아서 가 31%로 1위, 의무학점을 채우기 위해서가 28%로 2위,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학점을 잘주기 때문에 가 16%로 3위를 차지했다. 영어로 강의를 들으며 영어실력을 향상시킨다거나 과목을 더욱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에 혹은 단순히 학점을 잘 받기위해 듣는 학생들이 매우 많은 현실이다.

▶영강 의무화를 폐지하려는 학우들의 노력은?

   총학생회에서는 지난 3월 교육권리 찾기 운동에 영강의무화 폐지를 포함시켰다. 또한 지난 14일부터 정경대학 학생회 측에서는 선전물을 배포하고 학우들의 서명운동을 받고 있다. 또한 학교와의 면담을 계속해서 요청 중이며, 점심시간에 참살이길에서 영강의무화 폐지를 외치며 행진할 예정이다.

  정경대학 학생회 학교 측에 영어강의 의무화 폐지와 관련해 이메일을 보냈다. 학교 측의 첫 번째 답변은 ‘우리학교가 현재 국내외의 국제화 부문 대학평가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타대학들은 우리 대학의 영어 강의 비율을 따라오기 위하여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영어강의 의무제 폐지는 그간의 노력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영어보다 한글로 수업을 했을 때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대학생들이 국제사회에서 리더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국제적 소통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 세계 유수의 대학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대학의 국제화가 필수적임을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현재 정경대 학생회와 학우들이 문제삼는 것은 영어강의 자체가 아니라 의무제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 측의 답변은 이러한 노력이 우리학교의 국제화를 막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대 학생회 측은 이러한 답변에 만족하지 못하고 두 번째 이메일을 보냈다. 두 번째 답변은 ‘학교는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외국어 강의를 높이고 교육의 국제화에 힘을 써왔다. 현재 학생들의 영어강의에 대한 요구사항도 충분히 이해하며. 학교는 교육 국제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양적 성장 뿐만 아니라 질적 성장에 대해서 노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첫 번째 답변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약속 없이 계속해서 ‘노력하겠다.’ ‘이해해 달라’는 모호한 이야기만을 늘어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학교 측과 만나 진지하게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이 우선인데, 학교에서는 정경대학생회 측의 이메일에 동어반복적인 자세로만 일관하고 있다. 영어강의 의무화를 폐지할 수 없다면 이것을 어떻게 보완해 나갈 것인지 해결책을 함께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이룩해 놓은 것들을 무너뜨리지 말아달라는 식이다.

▶영강의무화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이 있는가?

 아직 학교 측에서 뚜렷하게 내놓은 방안은 없다. 그러나 당장 포털 사이트만 보더라도 영강에 대해 반대하는 글과 개선방향을 함께 모색하자는 글이 매우 많다. 학교 측에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인다면 구체적인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업의 질 향상을 위해 아주 영어에 능통한 교수를 따로 뽑는 심사를 하거나 현직 교수 중 모든 교수를 영강에 배정하지 않고 강의가 가능한 교수만 영강수업을 개설하도록 해야한다. 또한 전공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영어강의 마다 보조 조교를 두는 방법도 있다. 전공과목의 영강을 우후죽순처럼 개설할 것이 아니라 Academic English처럼 원어민 교수에게 영어를 영어로 배우는 과목을 더욱 많이 개설하여 효율적으로 영어실력을 늘리는 방법도 제안되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좋은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고, 학교 측에서 이를 반영한다면 효과적인 영어 강의가 될 것이다.

 김지원 정경대학 학생회장은 자신에게 영어강의가 더 편하기 때문에 영강의무화를 유지하자는 학우들에게, “영어강의를 자신의 호불호로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학교가 글로벌 프론티어라는 껍데기에 집중하여 대학이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느냐는 중요한 가치를 잃고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는 세계화라는 명분에 빠져 겉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 치중하는 반면, 실제로 강의를 듣는 대상인 학생들과 정식으로 담론을 나누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영어강의든 국어강의든 수업은 누구를 위하여 있는 것일까? 당사자인 학생과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이 우선시돼야한다.

 대학의 국제화와 세계화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려는 노력에만 치중하지 말고 대학이라는 곳이 무엇을 논하는 곳인지, 지식습득에 앞서 이곳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