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비평] 왜 영화를 보고, 왜 영화를 쓰는가. 영화비평이 욕망하는 지평에 대하여



영화, 그리고 비평

영화평론가 남다은


영화를 잘 보려면 어떤 시각을 키워야 하나요? 영화비평을 잘 쓰려면 어떤 연습을 해야 하나요? 영화비평수업을 할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종종 듣는 질문들입니다. 질문의 범위가 워낙 넓기도 하고 저 또한 명징한 대답을 알지 못해서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곤 합니다. 다만 이런 질문들은 ‘무엇이 영화‘비평’을 ‘영화’비평으로 만드는가’의 문제의식과 닿아있고, 이는 결국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아주 근본적인 물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당연히 단 하나의 규정적인 대답이란 불가능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저는 위와 같은 질문을 아주 간절한 눈빛으로 던지는 수강생들에게 이렇게 되묻습니다. 당신은 영화를 왜 보십니까?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영화를 더 잘 보고, 더 잘 쓰고 싶게 만든다고 생각하십니까?

몇 개월 전, 이 지면에서 저는 ‘영화적 경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미 사회화 되어 편견과 관습에 사로잡힌 우리의 눈이 경험할 수 없는 세계의 어떤 순간을 카메라라는 기계의 무심한 자동성이 포착해내고 그 때 영화는 인지의 영역을 넘어서는 감각의 영역을 열어서 우리의 시각적 쾌감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를 반응하게 한다고 말이지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혹은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었던 감흥을 영화가 깨우는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는 영화적 경험이 아니겠습니까. 이 당황스럽고도 신비로운 새로운 경험을 언어로 규정하고 정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우리를 매혹하는 새로움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위대한 영화는 그 위대함만큼 언어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고, 그런 영화가 우리의 육체에 남긴 감흥에 대해 말해야 하는 비평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로 완전히 설명이 되고 해소가 되는 영화를 우리는 위대한 영화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실패의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은 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은 욕망을, 매혹을 참지 못하는 걸까요? 이 물음에 대해서라면 저는 제도권이 아닌 현장에서 오랜 시간 영화비평가로 살아온 허문영의 생각만큼 경청할 만한 대답을 아직은 들은 적이 없으므로, 그의 고견을 여기서 나누고자 합니다. 그는 영화비평가는 이론가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구별한 다음, 그 이유는 비평은 언제나 ‘나’에 대해, 달리 말해 한 편의 영화가 “자기의 육체를 통과한 흔적”에 대해 말해야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흔적에 대해 말할 때, 그 언어는 언제나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근심과 결부될 수밖에 없으며, 그건 “진리의 지평”을 포기하지 않는 행위라고 덧붙였습니다. 너무 거창한 이야기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나’가 아닌 누군가를 근심한다는 것이 어떻게 비평과 결부되는 행위인지에 대해 다시 허문영 평론가의 말을 인용해보겠습니다. “혹시 무언가가 우리를 속이고 있지 않나”를 묻는 것, “혹시 귀중한 무언가를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건 아닌가”를 끈질기게 사유하는 것, 그것이 한 편의 영화를 두고 당신과 내가 공동체에 던져야 하는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감히 영화 비평가 보편에 대해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신 누군가 저에게 ‘당신은 왜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쓰는가?’라고 묻는다면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 말에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영화가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해주는 판타지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현실의 제도와 통념과 ‘정상’이라는 기준과 ‘도덕’이라는 범주, 그러니까 외적인 조건에 길들여지고 설득당한 우리의 경직된 심신, 가치관에 충격을 가하는 힘이 영화에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그 충격은 현실에서는 우리가 지나쳤거나 무지했거나 무시했던 것들을 하나의 당당한 존재로서 우리의 육체로 느끼게 합니다. 좋은 영화는 우리의 심신과 눈을 헐벗게 하고 그 헐벗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게 합니다. 인식 이전에 오는 그 경험의 정직함을 저는 믿고 싶습니다. 영화라는 과격한 판타지를 통한 현실의 재감각과 재사유의 경험이 우리를 이전과는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지게 하고 그렇게 달라진, 티끌만큼이라도 맑아진 눈으로 다시 세상과 용감하게 만날 수 있게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흔들리지 않는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영화 비평에는 없습니다. 그 능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한 편의 영화와, 나아가 그 영화가 놓인 세계와 함께 호흡하며 그 안에서 위태롭게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 그것이 ‘영화비평’을 ‘영화비평’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6:3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