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연, 「조선 전기 개념어 분석을 통해 본 수도의 성격」, 《서울학연구52》,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13.
고동환, 「조선후기 서울 도시공간의 변동 –상업발달과 관련하여」, 《서울학연구52》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013.  




안슬기, 짚풀 생활사 박물관 연구원


조선시대의 서울, 그 의미


  조선시대사에 대한 연구는 당대의 정치·사회·경제·문화를 중심축으로 하여 그 시기의 사람들의 자취와 인식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진행되었다면 지금은 그 사람들을 둘러싼 인문지리적 환경과의 상호 영향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검토되고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발행한 《서울학연구》 52호에 실린 조선시대사 연구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조선시대 수도의 개념어들이 담아내는 의미

현재에도 수도로서 위상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의 모습들이 조선시대에 어떠한 개념어들로 표현되고 있으며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는 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장지연 교수의 연구를 소개한다.

조선에서는 현재의 서울인 ‘漢城(한성)’에 대하여 국왕이 거주하며 중앙의 핵심 관서들이 존재하여 차별적인 지위를 갖는 장소라는 의미로 ‘경도(京都)’라는 위상을 부여하였다. 그러면서도 이곳을 관장하는 기구의 공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였다. 한편 국왕이 여러 경(京)에 순주하는 것을 표방했던 고려 시기와 궁궐 밖 행행(行幸)조차도 제한되었던 조선의 왕권은 그 성격에서 분명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왕권의 성격과 그것이 행사되는 장소의 성격이 다른 만큼 조선의 수도는 고려의 수도와는 다른 성격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정을 확인하고자, 언어 사용에 대한 상호주관적 인정과 관습적 사용의 확산은 어떠한 실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장지연은 당대에 사용된 수도를 지칭하는 단어들 –경도(京都), 국도(國都), 경성(京城), 도성(都城), 도읍(都邑), 경사(京師), 수선(首善), 왕도(王都), 왕경(王京), 제경(帝京), 제도(帝都), 황도(皇都), 황성(皇城)등-을 추출하여 그 용례를 분석하여 제한적이나마 당대 수도의 ‘성격’을 확인하고 있다.
이 논고에서 지역에 대한 특징적 인식을 볼 수 있는 자료로써 주목하고 있는 것은 『세종실록』 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이다. 여기에서는 전국을 8도로 구분하면서 한성과 개성을 별도의 항목으로 설정하고 ‘경도’와 ‘구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개성부 외에도 역대 수도들과 경쟁적인 시각에서 경도가 부각되어 서술되고 있다. 이는 경도가 국가 그 자체를 상징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역대 수도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경도는 구체적인 지리적 실체라기보다는 추상적 실체라는 점을 읽을 수 있다.


구체적·지리적 실체로서의 한양

반면 한성부편에서는 한양 일대의 행정적 변화에 대한 연혁이 매우 상세한데 이는 역사로서 추상적인 경도와는 다른, 구체적인 지리적 실체를 지칭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봉경(封境)’이라는 용어의 등장이 주목되는데 이는 ‘봉해진 경계’라는 뜻으로 제후국의 영토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책봉-조공질서의 차등적 공간 속에서 제후국의 중심인 수도에서 그 영역을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지지(地志)에 담긴 인식을 살펴보면, 수도를 국가의 운명이나 역사와 같이 하는 공간으로서, 추상적인 실체로서 보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왕권의 소재지이자 전 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추상적 실체인 수도와 구체적인 지리적 장소의 구별은 조선의 창안이 아니었으며 『대명일통지』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확인되는 것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곽과 관련한 단어들이 수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 둘째, 책봉=조공 체제를 반영하는 용례가 확인된다는 점, 셋째, 윤리와 왕화(王化)의 중심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 등이다. 넷째, 왕경(王京)은 조선인의 자기 인식 속에서 사용한 단어라기보다는 타자와 교섭하면서 형성된 용어였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컨대 성곽은 수도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경계로 역할하고 또 인식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윤리와 왕화의 중심지라는 의미는 이전 시기에서는 찾기 어려운 맥락으로서 성리학적 사회를 지향하였던 조선의 특징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조선의 수도는 도덕적으로 왕화(王化)가 된 국왕이 거주함으로써 왕화가 펼쳐지는 도덕적 중심지였으며, 당대 문명 질서로 인식된 책봉-조공 체제의 질서를 반영하는 장소였고, 성곽은 그러한 수도의 위엄을 수호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이러한 지점들은 조선의 수도가 이전처럼 왕실 자출지(自出地)의 신성성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와 철학 체계에 근거하여 대내적으로 우월적 위상을 점하고, 대외질서 속에 스스로를 자리매김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정리된다.


상업화에 발맞춘, 도시의 기능적 분화 현상

『우포청등록』에 등장하는 죄인의 말 중에 “서울은 지방과 달라서 돈이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는 곳”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서울이 돈으로 움직이는 상업도시로 변모했음을 시사한다. 고동환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분위기의 조선후기 서울은 중간계층인 여항인들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들은 양반사대부층과 기질이 달라 유교적 강상(綱常)명분보다는 경제활동과 인간본성을 긍정함으로써 새로운 도시문화를 형성하였다. 여항인들에 의해 주도된 도시문화는 문화예술적 요구의 증대와 유흥문화의 발달로 집약되며 이는 인구 밀집과 유동이라는 도시적 특성과 도시민의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졌다. 고동환 교수는 그의 연구에서, 앞서 살펴본 배경들이 새로운 도시공간을 창출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여 서울이 기능적으로 분화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있다.

종루 주변의 시전상가는 서울 공간의 중심이었다. 이 지역은 사람과 물자가 가장 많이 모이는 상업중심지였고, 다양한 공연이나 투계와 같은 도박이 행해지는 장소였으며, 결혼식, 장례식 등을 대행하는 영업까지도 행해지는 공간이었다. 종루 시전상가지역이 도성안의 중심공간이었음은 19세기에 쓰여진 각종 세시기(歲時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종각 네거리에서 흙을 파다가 집 네 귀퉁이에 뿌려 묻거나 부뚜막에 바르는 풍속, 운종가의 종각에서 종소리를 들은 후 여러 다리를 찾아다니는 다리밟기 풍속, 정월 보름 전에 한 이틀 동안 수표교 주변에서 연싸움을 구경하는 풍속 등에서 시전이 밀집한 종로 거리가 서울 주민들의 문화행사의 중심장소였음을 말해준다. 18세기 후반 서울 인구는 30만명을 상회하였고, 이중에서 80% 이상이 상업 관련인구였다. 그 이전에 비해 관리와 종실, 사대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었다. 상업발달과 인구 구성의 변화는 도시공간의 중심을 궁궐과 관청에서 상업 중심지인 종루로 변모시킨 것이다.


상업중심지 서울

도시공간의 분화는 상업과 도시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졌다. 상업 발달에 따라 상업중심지도 종루 시전상가 1곳에서 칠패와 이현, 그리고 경강지역으로 확대되었다. 도시민들에게 경제적 부와 여가가 생기면서 유흥문화가 발흥하였고, 예능의 상업화도 촉진되었다. 유흥문화의 발흥은 18세기 후반 술집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에서 짐작할 수 있다. 6만호를 헤아리는 서울의 가호중에 1만호가 술집이었고, 그 중에 대형 주점이 수천 호에 달하였다. 술집만이 아니라 음식점 영업과 색주가, 기방도 크게 번성하였으며 행락문화도 또한 성행하였다. 이 시기 유흥과 행락은 조선전기와 달리 도시주민 누구나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이 상업도시화 되면서 도시 교외에 상업적 농업지대가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농업으로는 채소·과수농업과 약초재배업이었다. 19세기 정약용의 언급에 따르면 이러한 상업적 농업은 상지상답(上之上沓)의 벼농사에 비해 10배 이상의 수익을 내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공업단지도 대부분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시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주로 상업중심지인 종루 주변에 집단적으로 형성되었다. 예컨대 은방의 도가(都家)는 백목전 도가의 남쪽과 내어물전 북쪽의 향도정동 두 곳에 있었으며, 두석방의 도가는 월내전 남쪽에 자리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영환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8세기 후반 이후 서울 도시공간의 중심은 종루 주변의 상업지대였다. 이 지역은 유흥과 상업적 예능이 펼쳐지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수공업 생산이 행해지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도성 밖 지역은 상업적 농업지대와 행락지대로 특화되어 갔다. 이처럼 상업발달과 도시문화의 형성에 따라 서울의 도시공간도 기능적으로 분화하였다. 전통적인 왕도의 중심공간이었던 궁궐, 관청, 종묘와 사직 등의 제사공간도 여전히 중요한 지위를 유지했지만, 서울의 주민들은 상업공간을 중심으로 도시적 생활을 영위해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2:53:01: